[ 당진 ] 죽향골에 내린 눈
< 2017. 11. 24. >
며칠전 합덕읍사무소 현관을 나서며
꼭 눈이 올 것 만 같은 날씨여서 첫 눈을 떠올렸었다.
또한, 국향회에서 가꾸었다는 흰 국화 화분을 보면서
만년설이 쌓인 설산이 연상되었다.
아침 일기예보에선 어디엔가 눈 소식이 있던데
여기도 첫 눈이 내릴 때가 됐지 하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틀후 새벽부터 비인 듯 눈이 내리는 듯 하는 날씨,
내겐 그다지 반갑지 않게 첫눈이 내리는 것이다.
공사업체에서 와서는 작업은 않고 집 주위를 서성인다.
그가 왜 그러는지 나는 밖으로 나간다.
커피를 나누며 무슨 일인지 대화를 했는데...
그는 오늘 작업을 진행 할 수 없어 어이가 없다는 게 아닌가
지금처럼 많은 눈 비로 땅이 젖게 되면
그 흙은 포크레인 삽에 찰떡 처럼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단다.
그래서 작업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불가피하게 공사가 지연될 거라 하며 그는 떠났다.
나는 별 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난로에 넣을 장작이 충분치 않다.
공사 끝나는 대로 장작을 배달키로 했건만 이역시 순연되었다.
겨우 온기만 유지하기에 고구마는 익지 않는디.
그가 떠난 뒤 하루가 지났고,
날이 세자 밖은 온통 하얀 눈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다락에 올라 집 뒷편 노송들을 살핀다.
재작년 폭설로 노송은 가지가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번 눈은 그보다 적게 와 다행스럽다.
안방으로 이동해 창 밖을 본다.
도로가 보이 않는 것을 보면 차량이 다니지 않나 보다.
마늘 밭에 비닐도 못 덮어 줬는데....
애처롭기만 하구먼...
옆지기가 내려오면 함께 펼치려고
면천 농협에서 구입해 보일러실에 넣어 두기만 한 비닐,
못 덮어줘서 마늘들아 너무 미안타.
잠시만 기다려~ 내가 나가보마
방한복에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비와 눈이 섞여 내리다 새벽녘에 추워지면서
눈으로 바뀌었지 싶다.
눈이 밟히긴 하지만 어떤 곳은 미끈덕 거린다.
땅이 얼지는 않았지만 눈은 7센티가량 쯤 쌓여 있다.
강수량으로 치면 몇 미리에 불과 한 듯...
그렇지만 장관이다.
지붕설계 때 경사각을 적게 주는 대신,
폭설 등에 대비하여 지붕 구조목을 촘촘하게 했고,
당초 기와에서 가벼운 징크로 변경하였다.
그나저나 아직 메주콩을 다 수확하지 못했고,
대파도 뿌리채 뽑아 토굴에 옮겨 심지 못했는데 벌써 눈이 내렸다.ㅜㅜ
눈 녹으면 콩을 수확해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기고
파의 일부는 토굴로 이동시며 움파용으로 쓰게 해야 한다.
움파, 겨울철 햇빛을 못보고 노랗게 자라는 대파,
그 여린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깨소금에 기름 동동 뜬 간장을 기억하는가.
배추 전이나 무전을 찍어 먹어도 좋고
싱거운 떡국에 꾸미 대신 넣어도 그만인데... 그 향이 나는 좋았다.
어릴 때 파를 싫어 했지만 간장 위에 뜬 노란 파만은 좋아 했었다.
날 풀리면 몇 포기 뽑아 토굴에 심어둬야지~,
옹기종기 달렸던 감이 다 떨어지고 몇개 남지 않았다.
하나도 따지 못했지만 보기는 좋네...
그야말로 까치밥이 될 것 같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 갔다.
타이머를 사용해 히타를 틀어주기 때문에 훈훈하다.
그렇지만 고추는 추웠는지 일부는 시들하네...
히타의 영향일까 비닐 위의 흰 눈이 녹아
미끌어져 내리는 모습이다.
넓쭉 업드려 절하는 듯한 대나무들
어디선가 읽은 글(들은 말?)이 떠오른다.
담양인가 함양인가 대나무를 기르는 농가의 얘기,
물론 대나무 제품이 각광 받던 예전의 상황이었지 싶다.
그 남쪽 지방에도 이따끔 큰 눈이 내렸나 보다.
암튼 할아버지인지 아버지가 눈내리는 한 밤 중에 일어나
대나무 밭으로 나간다는...
대나무를 하나하나 흔들며(땅땅치며?) 다녔다는 얘기,....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 쉽게 부러지지 않지만
눈의 무게로 활 같이 휘게 되며 심한 경우 굵은 줄기가 터지는데.
그러면 대나무의 상품가치를 잃어 손해가 크다는 거다.
그 말을 한(글을쓴) 사람이 어릴 적 겨울의 추억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꺼낸 아리고 아름다운 옛 얘기지 싶다.
그렇지만 나는 저 나무들은 정겹기만 하다.
얼른 공사가 끝나야 할텐데...
저 눈들이 조금은 공사를 훼방하지만 그래도 보기는 좋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고립이 됐다.
저 내리막 길을 차량이 미끌어지지 않고 내려갈 수 있을까
눈을 치워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눈가래를 준비하지 못했다.
아침밥 지어 먹은 뒤 장화신고 철물점에 가서
눈가래부터 사오는 게 순서지 싶다.
젊어 현직에 있을때 주말이면 가던 캠핑이 기억난다.
단양이나 영월 포천 부근도 자주 갔는데
산수가 퍽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한 때 부러워 했었고,
나도 따라 해 보고 싶어서 매물을 보고다닌 적 있었으나
나중에 경험자의 솔직한 말을 듣고 포기했다.
그 중하나가 겨울철에 눈내리면
봄이 될 때까지 오도가도 못하는 고립무원이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나중에 조금 더 따뜻하고
눈이 와도 고립되지 않는 죽향골을 선택했다는....
그나저나 상수도 계량기 출구에 설치한 가압펌부 부분과
새로판 지하수 출구 쪽 배관이 아직 매설되지 않았다.
공사용 장비의 엔진이 언제 가동될까나
양쪽 수도꼭지를 조금씩 열어두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급수 배관을 매설해야 하고,
마늘밭에 동해방지용 비닐을 덮어 줘야 할텐데...
몽산자락은 속 없이 강추위가 계속돼
죽향골의 지금 기온은 영하10도이고, 더 내려갈 기세다.
12월13일 새벽 5시,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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