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 가족 ] 장인어른 생신행사 이야기

재넘어아재 2017. 2. 23. 06:06




[ 가족 ] 장인어른 93회 생신

< 2017. 2. 18. ~ 2. 19. >


- 2017. 2. 18. 토요일 -


매년 장인어른과 장모님 생신 때이면

장인과 장모님 두 분이 살고 계신 처가로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생신상을 차렸었다.


그러다 7년 전부터 두 분만이 사는 처가에서 행사를 치루기 보다는

주변의 음식점 찾아 다니며 행사를 치뤘다.


그리고, 연로하신 두 어른은 몇 해 전부터

작은 처남이 운영하는 계룡시의 요양원으로 모시게 된 관계로

처가를 떠나 타향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두 분이 평소 고향을 보고 싶어하는 것을 감안하여

생신 때 만이라도 고향으로 모셔서


주변 음식점을 정해 행사를 치르는 것이 연례행사였고,

그 때마다 평생 살아 온 처가를 들러 보곤 했었다.


그런데 작년,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의 갑작스런 뇌졸증으로

이젠 거동조차 불가능한 실정에 놓였고,


부득이 이번 생신부터는 요양원 근처의 음식점을 정한 뒤,

그곳에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행사를 대신하기로 했단다.


한편, 오래 전부터 우리와 두 처제네 하여 세 자매 부부는

장인 어른이나 장모님 생신 때이면 미리 만나기도 하고


이따끔 모여 여행도 다니고 했는데..

아마 나이도 비슷하고 마음도 맞아서 그렇게 된 듯하다.


오늘도 아내는 동생네들과 함께 모여 회포를 풀고서

내일 장인어른 생신행사가 있을 공주의 미성식당으로 가자며

미리 조율된 듯 싶다.


암튼, 그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가는 길,

설 명절에는 나 혼자 백조를 보았던 고향 땅이 가까울 무렵


아내에게 넌즈시 말했다.

설 때 본 백조가 지금도 있는지 한 번 가볼까? 하고...


그랬더니 아내는 시간여유가 있다며 당연히 좋겠다는 반응이다.

하여 국도에서 고당리 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아내에게 보여 주고도 싶었지만 솔직히

나도 녀석들이 보고 싶었다. ㅎ


잠시후 고당리 강 저쪽에서 놀고 있는 백조가족이 보였다.

볕이 좋아서인지 몸매가 유난히 환하게 보였다.



설 때에 비해 마릿수는 절반도 되지 않을 듯 하다.

그렇지만 푸른 물결에 떠 있는 하얀 백조는 눈이 부실 정도다.



갑자기 강변 뚝방 앞에서 장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나는 쪽을 조심스레 살피게 되었고,


결국 수풀사이를 숨어 걷는 녀석이 뷰파인더에 포착되었으며,

나는 녀석이 완전한 모습이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성급히 셧터를 작동 시키면

자칫 녀석이 듣고 도망갈 수 있어서 숨 죽이고 있었다.


멋진 장끼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녀석이 눈치를 챘는지 갑자기 날개를 푸득거리면서 강물 위로 치솟았다.


아이고 안타까워라,

이럴 줄 알았으면 셧터를 진즉에 누르는 것인데...ㅜㅜ


아무래도 아까운 찬스를 놓쳤으나,

꿩 대신 백조는 실컷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 여겨야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둘 사이는

언제나 사이좋게 한 곳을 향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이따끔, 아주 이따금이라도 전혀 반대인 경우가 있다.

부부는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말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자연적으로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것을 경험 하면서도 그런 것 같다.


우매한 사람들은 이럴 때 강한 반감을 가지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결행함으로서


결국 둘은 후회 속의 삶을 살기도 한다는 것을

교훈삼아야 하겠다.



경변의 나무사이로 백조를 보고 있는데...

그 나뭇가지에 멧비둘기가 앉아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다.



비둘기를 당겨 볼까나, 크게 클로즈업 시키면서 보니

녀석이 가만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실제는 끝없이 움직이고 있어서

초망원으로 담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고니들은 2백 미터 쯤 떨어져 있기에

우리를 크게 경계하진 않는 것 같다.


머리를 물 속을 넣고 먹이 활동을 하는데 집중하느라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자기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얼핏보면 경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모두가 한꺼번에 잠수하는 경우가 없는 것을 보면

약간은 경계활동을 하는 것 같다.



고당리 강면을 떠나 영동읍내로 가는 길,

심천면 소재지를 지난다.



처제네에 들렀고 함께 식사를 한 다음 야영을 하려고 했으나

만류하는 바람에 읍내에서 자야만 했다.


그날 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 가운데...

여러가지 간식이 나왔는데...처제는 특별히 건조사과를 내 놓으면서


얼마전 읍내에서 어떤 아짐을 만났고

대화를 하다보니 아주 어릴적 처가 마을에 살던

몇 살 아래 아이였더란다.


그리고 그의 농원에서 사과를 재배한다 했고

나중에 찾아와 선물이라며 건사과를 건내 주더란다.


처제는 나 보고 그를 아는지 물었다.

나는, 그의 부모 및 오빠와 언니는 내가 몇 번 보았으나


내가 그들을 마지막으로 볼 때(중학교)는

그녀(홍선)는 아주 어렸을 것이어서 당최 기억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처제의 말을 들으며

홍선 위로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고,


그들의 엄마가 우리 어머니를 이모라 부렀기에

나와는 이종사촌 관계여서 어머님이 살아 계실적에

이따끔 찾아 오곤 했었다.


하여튼, 나에게는 이종 조카벌 되는 친척의 소식을

이제 와서라도 들으니 반가웠다.


그들의 소식을 알려면 연락할수 있는 전화번호가 생겼다.

건조 사과가 필요할 때 무조건 연락해야지..ㅎ



다음 날은 장인어른 생일을 기념한 가족모임이

있을 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 2017. 2. 19. 일요일 -



안양에 살고 있는 장인어른의

몇살아래 여동생(아내의 고모)께서 오빠를 보기 위해 오셨다기에

그분까지 모시셔 차량 두 대를 채워 출발했다.


도착한 곳은 계룡시의 어느 요양원

그곳에서 장인장모를 비롯한 수상한 천사들을 만났다.




장인어른과 장모는 서로 다른 요양원에 계시기에...

같이 있지않고 떨어져 있는 상태다.


얼마전 뇌졸증으로 쓰러졌던 90세의 장모님은

치료를 병행해야 하기에 그렇단다.


서로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형편이 그런것을 어쩌랴.

장인어른은 장모님과 같이 행사에 참석하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휠체어에 간신히 의지하고 있는

장모님은 어눌하지만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 하였다.


아마도 당신 자신은

남편의 생일날 온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자기가 참석하면 오히려 행사에 지장만 될 거라고

판단을 한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뜻을 무시하고 굳이 모시고 가면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고통일 수 있다는 게 그분의 판단 같다.



결국, 서로 눈시울을 붉히며 요양원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훌적거리는 아내와 처제들을 위로하고


요양원 입구 창가에 만들어 놓은 모형 장독대를 본다.

원장인 처남댁은 직원 중 한 분의 솜씨라고 넌즈시 내게 얘기 했다.



찾은 곳은 공주 미성식당

대전에 내려가 있을 때 몇번 찾았던 한정식 집이다.


중앙에 장인어른, 그 앞쪽에 처고모께서 앉으시고

다른 가족들이 양쪽에 펼쳐 앉았다.



장인어른의 건배 제의까지 이어지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매년 함께하던 부산처형네만 빠졌다.

사실 장인어른은 작년 가을 돌아가신 처형이 지금도

살아 있는 것으로 알고 계신 듯하다.



가족끼리는 장인장모에게

그 처형이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을 감추기로 했다.

모르는 게 약일성 싶었기에...


미성식당 안 여기 저기에는 옛 물건들이 걸려 있었다.

기둥 양쪽 것은 다식판 종류 같은데...


예전에 우리집에 있던 것은 암수가 있었으나

저 것처럼 숫놈이 없는 것도 있었나 보다.



옛 다리미와 인두,

긴 광목을 다릴 때 어머니와 형수와 누나? 하여

셋이 합세해야 저 다리미를 썼던 것 같다.


그땐 저 다리미를 윤두라고 그랬던 것 같다.

암튼, 윤두 아랫 것 작은 것을 인두라고 칭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보니 윤두와 인두는 같은 말이었다.




훑게, 빗처림 생긴 저기에 벼이삭을 꼽고

당기면 낱알이 떨어지는 구조다.

아랫집과 작은집에 저 기구가 있었던 기억이다.



다레끼 작은 종류인데..

고향에선 종두레끼라 불러서 언젠가 사전을 찾아 보았으나

표준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그 다레끼(바구니?) 옆에는

멍에에 붙는(아랫멍에?) 브이(V)형 물건이 걸려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목집게"라고 한다. )



가운데 기둥에 걸려 있는 솔

처 고모께 무엇으로 만드는지 물어보았더니

소나무 뿌리를 모아 만든단다.


요즘 같으면 쇠솔이나

억센 플라스틱 솔 용도로 사용하던 것이다.



호롱은 지금도 시골장에 나오는 물건이다.

면소재지 장터에 가서 이홉들이 대병에 등유를 받아다 썼다.

어릴 땐 저 등잔아래도 밝기만 했었던 기억...


선반에 걸린 것은 왕골 돗자리 만들때 쓰던

노끈감는 기구로 기억하는데 일종의 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이름을 알아보니 고드레 또는 고드렛돌이라 한단다.


가마니용은 더 큰 사이즈이고 돌을 깎아 만든 거였는데...

저 것은 쇠로 만들었는지 싶다.



창틀에 삼태기가 걸려있다.



베를 짤 때 쓰이는 도투마리가 오른편에 세워져 있다.

베틀의 부속품으로 가운데 홈에 날실을 감아두고 조금씩 풀어가며

베를 짜고 반대편에 짠 베가 감기는 구조 였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까지 어머니는

안방의 복쪽인 뒤안 편에 설치한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짰었다.

그 베로 옷을 만들었는지 팔았는지는 모르겠다.



일반 볏짚으로 만든 것 같지 않게 미끈하다.

확실치는 않지만 왕골로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렇게 장인어른과의 식사를 마쳤다.

생신 전에 죽향골 새 집이 준공될 것으로 보고

모시려 했었는데...여의치 못했다.



집이 크진 않지만 내년에는 꼭 모실게요.

장모님도 쾌차하셨으면 좋겠고, 처고모님도 계셨으면 좋겠다.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