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 경주 ] 서라벌 천년의 향기

재넘어아재 2016. 1. 6. 08:42



 

 

[ 경주 ] 신라 천년역사의 경주, 대릉원 

< 2015. 12. 13.~12. 14. >


- 겨울여행 2박 3일, 아홉째 편 - 


영덕에서 출발해 경주 숙소에 들어 왔을 때

창밖 보문호엔 황혼이 드리우고 있었다.



세 자매의 만찬준비가 무르익을 무렵

호수는 금빛으로 물 들었고...



죽변항에서 공수한 도루묵과 오징어는 냄새를 풍기면서...

노릿노릿 익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남겨야 할 만찬 사진은 까맣게 잊고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도 한참 후에야 알았다.


부른 배를 꺼트리려

가족 모두가 보문호를 산보하러 나섰을 때..


호수의 야경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치면서

겨우 카메라가 생각났던 것,


별수없이 핸드폰으로 야경을 찍으며,

내가 건망증을 넘어 중증치매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ㅜㅜ



세 가족 의견이 구구했다.

호수 둘레를 끝까지 일주하자는 파,


이제 들어가 연속극을 보자는 의견과...

저기 다리처럼 보이는 불빛까지는 돌아와야 한다는 주장


아내와 나는 저기까지만 가자는 주장에 동조했다.

만일 일주하자는 주장을 받아 들였다면,


둘레 8Km나 되는 호숫길을

아마 두 시간은 족히 걸었을 거다.ㅎ



뭐 운동하러 온 것도 아니므로

건강에 좋다고 운동을 무리하게 할 필요까진 없다.


운동선수도 아니고 경기에 참여해

등수 안에 들어야 하는 입장도 아니지 않은가?



주기적으로 헬스장 가서 농땡이를 치지만

요가도 하면서 간혹 땀이 젖도록 걷기도 하잖아~


쉬엄쉬엄 텃밭 일도 수시로 해왔고

이따끔 이지만 여행 다니는 것도 다 운동이 아니던 감?


이렇게 동기끼리 산보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암튼 우리 밤실댁 생일 축하햐~



다음날 새벽, 도루묵찌개를 끓이려니

다른 재료는 있지만 무우와 청양고추 고추냉이가 빠졌다.


할수없이 지하 마트에 가서 구입했고,

없는 솜씨 있는 소질을 동원해서 얼큰하게 끓인 도루묵찌개

모두가 감탄하면서 잘도 먹어줬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사진을 또 찍지 못했다.

이거 정말 치매가 아닐까? ㅜㅜ.


남은 도루묵과 오징어를 얼음과 함께

처제들과 나눔을 하고 경주 시내 여행 준비를 마쳤다.


첨성대 등지와 불국사를 거쳐

맛집을 찾아 점심식사를 한 뒤 귀가하는 순서다.


그중 첫 여행지는 첨성대...

막내네가 첨성대를 못봤다며 보고 싶단다.

대체적으로 불국사는 보자는 의견이고...


지리를 잘 알지 못하지만 티맵에 첨성대를 찍었더니

보문호를 떠난 잠시후 도로 좌측에 분황사가 보였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는 않았다.

닥치는 대로 보자는 뜻에서 그냥 주차장에 들어 갔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지 걍 첨성대로 가자하는 처제,

아마도 주어진 시간 동안에 더 나은 곳은 다니려는 마음일 거다.


분황사는 역사책에 나왔던 분황사탑이

있는 곳이긴 하나 외관상 그저 그런데다 입장료까지

끊어야 하니 시간이 아까울 법도 하다.


하여 다음 도착한 곳이 첨성대 주차장?

첨성대는 길옆에 있어서 무료에다 싱겁다는 것을 깨달은 막네는

다른 곳이나 보자했다.


그래서 별수없이 처음 들어보는 대릉원 앞에 섰고

총무인 처제가 입장권을 구입했다.



대릉원, 처음들어 보는 곳이다.



별수 없이 기행문을 쓰면서 검색해 봤다.



대릉원(大陵苑) 경주시 중심가있는 옛 신라의 왕, 왕비 등

귀족 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 밀집지역,


이름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미추 이사금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부분에서 따와

대릉원이라고 지었단다.




대릉원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황남동 고분군 쪽과

바깥 쪽의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등을 포함한단다.

( 위 황남동은 유명한 경주빵(황남빵)으로도 알려진 곳, ㅎ)


암튼 고분 지역의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데다

경주 시가지 중심지에 있어 교통 접근성이 좋을 뿐아니라


천마총 처럼 내부를 관람할 수 있어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거의 필수로 찾는 곳 중 하나로


입장료는 2015년 성인 기준 2천 원이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5개 지구 중 하나란다.(펌, 각색)


대릉원에 입장하자 아직 남아있는 단풍이 먼저 보였고

사진을 찍으며 관광하는 일본인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처럼 보이는 중국인 들이 있었고

그들은 단풍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에게까지 전염이 됐나?

서울엔 진작에 다 떨어진 단풍이 여긴 많이 남았네..

어떤 가지는 절정기 같이 성했다.



그나 저나 우리 일행들은 다 어디간겨?



문패없는 언덕처럼 큰 묘지들

저렇게 큰 묘들이 주인을 대체 누군지 모른단다.

왜 묘비를 세우지 않았을까?


후손이 선대의 묘를 만든다는 것은

나중에까지 찾아오겠으며 잘 살피겠다는


죽은자와 산자의 약속 같은 깊은 뜻이 담긴 것인데...

신라 천년의 문화가 뭔가 이상하다.



그나마 봉분들이 파헤쳐 지지 않는 것은 다행인듯...

누구 것인지 알면 훼손(도굴?)될 수 있으므로


이를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로 그렇게 했다는 추측도 있는 것 같지만...



하여간 이상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역사 시간에 왜 그런 것을 못 배웠는지도 모르겠네.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암튼 묘마다 누구의 것인지

표시를 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지라도



최소한 이 지역에 누구들이 묻혀 있다는

기록 쯤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평민이라면 모를까 대릉원으로 이름 붙힐 정도의

귀족의 신분의 무덤이라면 ....



이 지역에는 누구누구가 묻혀 있다는

기록 쯤은 있어야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를 몇번 와 보았으나

단체로 건성건성 다녀서 그런지 위에서와 같은

의심은 전혀 해 보질 못했었다.



아니 그런데 관심이 없었나 보다.



경주를 여행하다 보면 길가에도

논 옆으로도 언덕처럼 생긴 릉이 보이는데 그런 묘지 역시

누구 것인지 아는 것은 많지 않은가 보다.


이 황남대총으로 불리는 묘지도

왕릉으로 추정할 뿐이라 해서 애석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외형이라도 이처럼 보존 된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 아닐까 싶다.



묘지를 만들려고 모은 흙이 어마어마한데..

어디서 어떻게 옮겼을 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천마총(天馬塚), 제155호 고분이었다가

1973년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 되었다.


무덤의 축조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덧널무덤으로서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한다.


무덤의 축조방법은 먼저 지면을 고른 뒤 바깥둘레돌을 돌리고

그 안에 점토와 자갈을 다져쌓기해서 올린 후


여기에 덧널을 동서방향으로 설치하고

덧널 주위에 돌무지를 쌓은 뒤 봉토를 씌웠다.


덧널 내부에는 강돌과 잔자갈로 석단을 돌리고

그 위에 유물을 배열했으며

석단 내부에 널을 동서방향으로 안치했다.


석단 바깥쪽에는 널과 직교하여 남북방향으로 껴묻거리 상자를 놓았다.

마구류로 추정되는 금동판·미늘쇠·쇠낫·쇠투겁창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펌)



아래 사진은 천마총 내부구조를 볼수 있도록

유물을 복제하여 전시하고 있단다.



유물은 사실을 증명하여 신뢰를 높이고

조상에 대한 생각을 양념처럼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6세기 이전부터

청동기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정교한 무늬의 토기 및 철기를 사용하였으며



이미 금을 정교하게 세공할 줄 알았고,



마구에까지 금을 사용한 것을 보면

당시 재력도 풍성했나 보다.



여인은 귀걸이와 팔찌를 사용하였고



남자(귀족?)은 금 복대를 사용하였나 보다.



저승으로 가면서도 금관을 머리에 쓰거나

몸에 걸쳐 장사 지냈나 보다,



지금의 황금보다 엣 서라벌 시대에는

훨씬 귀한 보물로 여겼기에 훼손을 막기 위해 무덤을 크게 만들었고


누구 것인지도 모르게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본 것은 모조품이며

진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발굴 때의 내부를 설명하기 위한 만들어진

복제 천마총을 나와보니


그곳은 대능원의 후문 쪽이었다.

차를 정문쪽 주차장에 두었으므로 되돌아 가려할 때


휴게실 처럼 생긴 곳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대릉원을 포함해 신라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미리 보았더라면 관람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테고

신라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그랬다.



정문으로 가는 길...

수십그루의 백일홍(배롱나무)이 심어져 있었고

가지에 혹 같은 것이 많은 나무였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왕릉을 봤으나

나 같은 일반인은 외국의 왕릉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질 못했다.

(영화로 이집트 무덤(피라미드)만 보았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느끼는 경주 왕릉에 대한 감정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



어떻든 우리는... 아니 내가...

어릴 때 봐 온 고향산천의 산소(묘)와 왕릉을 비교해 보면


둘 다 거부감이 생기기 보다는

온유한 친근함이 더 묻어나는 것 같다.



어두운 밤에 오면 두려울런지 모르지만...ㅎ



목련나무에 앉은 새가 이쁜 소리를 낸다.



수북한 대나무 무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들어간 길이 있어 나도 따라 들어 가 본다.



가운데로 들어가 파노라마 시도..

한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경주에 와서 그런 기회를 얻었다. ㅎ



주렁주렁 달린 산수유도 보고...



릉에 소나무가 자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선 묘에 나무뿌리가 접근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수목장을 바라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을 보면

요즘은 제법 변화하는 분위기 같다.



 

끝으로 담장 밖에서 미추왕릉을 보았다.



정문을 나서자 다른 명소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있었으며

안내인께 봐야할 우선순위를 부탁했더니



'동궁과 월지'가 1번이었다.

그럼 얼른 들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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