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 옥천, 영동 ] 고향의 봄 그리고 가족

재넘어아재 2016. 3. 12. 03:36


 


[ 영동, 옥천 ] 고향다녀 오는 길

< 2016. 2. 27.~ 2. 28. >


경부고속도로 옥천IC를 나설 때 시각이 오후 3시경,

도로에서 보내느라 점심식사를 하지 못했다.


고향을 찾을 때 종종 옥천이나 영동 읍내에서

미리 식사를 한 후 볼 일을 보는데

이날 따라 올뱅이 해장국보다 다른 것을 맛 보고 싶었다.


고민하며 결국 찾아 간 곳은 대박집,

충북 옥천읍 성왕로 1250,(전화 043-733-5788)



때 마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부부를 만났고,

그들에게 무엇이 맛있는지 넌즈시 물어 보게 되었다.


그들은 생선국밥과 도리뱅뱅이를 맛있게 먹었단다.

우리도 그들처럼 도리뱅뱅이에 생선국밥으로 정했으나


생선국수까지 주문을 했다.

같은 값이면 양쪽 맛을 보는게 더 낫잖오.ㅎ



식당 안의 화분들은 녹색의 식물원을 연상시켰고...

예전에 본 '녹색의 장원'이란 제목의 영화가 떠올랐다.


흑백TV시절 '주말의 명화'를 밤 깊은 시간에 보았는데

출연한 오드리 햅번도 이뻤지만 어울어진 밀림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녹색은 희망의 색이며 청춘의 빛깔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연록의 봄이 어느덧 다가섰다.


봄의 연록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움 날들을 꿈꾸게 만든다.

인생에 있어서 짦은 봄을 거쳐 접어드는 녹색의 시절은...


아름다운 날들을 펼치고 쌓아가며

추억의 시절이 어찌보면 짧은 기간 같지만

인생 중에 가장 빛나지 않을까 싶다.




메뉴엔 매운탕도 있었고, 빙어튀김도 있었다.




꼬불꼬불한 것이 등나무일까 다래넝쿨일까?

다음엔 서율이랑 재율이와 함께 치즈뱅뱅이 맛을 봤으면 좋겠다.



저기 젊은이들은 가운데 도리뱅뱅이를 놓고

생선국수를 먹는 듯..



룸이 있었으나 비어 있었다.

그 옆에 이 지역 출신 정지용 님의 시 '향수'가 걸려 있고..



그러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차려졌다.



도리뱅뱅이는 영동 양산의 '선희네'나 금산의 '원골식당'

그리고 동이 '금강나루터식당'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무엇인가 달랐다.


지금까지 도리뱅뱅이에 얹어지는 것은 정구지였던 것 같은데

이곳은 그들과 다른 들깻잎에 청약고추와 마늘이다.



그런데 생선국수는 건데기에 비해 많은 듯한 국물 위에

정구지 몇가닥이 빈약하게 떠 있었다.



생선국밥은 그나마 나은 편..ㅎ



도리뱅뱅이를 들깻잎에 올려 놓은 뒤

거기에 마늘 한쪽과 청양고추 한조각을 놓고는

한 입에 쏘~옥 넣으면...


들깻 잎의 상큼하고 은은한 향이 입 안에 번진다.

노릿노릿 고소하게 튀겨진 알배기 빙어의 모습은 어떠한가


고추장의 고유한 맛을 품고 있으면서

그 위에 놓은 알싸한 마늘편과 톡쏘는 청양고추의 매큰한 맛은

혀를 유혹하며 침을 솟게 했다.



서울이와 재율이도

잘 먹을 것 같지만...매워서 틀렸다.


그러나 너무나 맛이 있어.. 포장을 해주는 물었더니

당근이고 데우지 않아도 그맛이 일품이란다.


음식을 말끔히 비울 때쯤 포장된 것을 받았고...

나오면서 대박집을 찰칵~



아내를 처가에 내려주고서 금강나루터를 거쳐

탑선리농원을 들렀었다.


포장된 도리뱅뱅이는

저녁상 반주의 안주감으로도 매우 훌륭했다.


수입되는 중국의 4대 명주 중 하나인

밀실 속의 오량액을 서슴없이 내 놓은 아랫동서가 고마웠고...

백주의 술맛을 배가시킨 도리뱅뱅이도 고맙더라는..



그 기분에 한잔만 더 받으라는 동서에게 넘어가

그날 한뎃잠은 포기하고 말았다.


다음 날 장인어른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부용리 아리랑가든에 처가 식구들이 거의 모였다.


손녀들이 마련한 케익에 불이 켜지고

오래 사시길 기원하면서 박수도 치며 축가도 이엇다.





1979년에 뵈었으니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다시 가족들과 합께 뵙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귀경하는 길,

아내는 두 분의 모습이 에전과 달리 밝지 않은 것 같다면서

안타깝다는 말을 감추지 못했다.


폭설경보가 내렸다는 예보에 내 마음이 급해 졌다.

옥천을 지날 땐 비가 내리더니



대전에 진입하면서 눈으로 바뀌었으나

바닦에 닿자마자 녹았다.


면천 죽향골을 거쳐 귀가하려 했던 계획은

옆지기가 만류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신탄진을 앞두고 더 심하게 내리더니..



청원을 지나 남이분기점부터는

앞이 잘 보이지 않으려 했고 제법 쌓이기 시작했다.



와이퍼 단속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



천안휴게소 부근을 지날 무렵...



잠시 방심하는 사이 바퀴는 쌓인 눈을 밟았고

미끌어지면서 차량은 뒤뚱거리는가 싶더니...어이구...


앞 좌측 모서리가 중앙분리대에 살짝 접촉되었고

그와 동시에 기억은 나지 않지만 브레이크를 밟았을까


이젠 차량 자체가 틀어져 앞쪽이 중앙분리대를 긁는다.

잠시후 겨우 정상으로 방향을 잡았고


뒷차량과의 충돌을 가까스로 면한 뒤,

옆차선의 차들을 피해 갓길에 겨우 정차할 수 있었다.


아내는 미끌어지며 중앙분리대와 충돌할 때

이렇게 사고가 나서 죽는구나~ 싶더라며 그 순간을 되뇌이면서도..


차량만 부셔졌을 뿐 무탈하게 살아난 것에 안도하였고,

천만 다행이라며 웃음을 띠기도 하였다.


긴장이 풀렸는지 화장실을 가고 싶다했고

휴게소를 들러 가잔다.



휴게소에 차량이 아주 많았다.

사고차량을 휴게소 앞에 세우두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주유소로 직행했다.


주유소에서 살펴보니 차량 외관이 많이 상한 상태이나

운행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잠시 차에 앉은 채 옛적 얘기를 떠 올렸다.

직장동료가 어찌하여 한탄강인가 대성리인가를 찾았단다.


어쩌다가 단선철도길을 걷게 돼 교량을 만났는데

다리 중앙쯤을 건넜을 때 갑자기 달려오는 열차를 만났으며

앞으로 가지도 후퇴하지도 못할 처지~,


부닥치거나 뛰어 내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순간 뛰어 내려야 살겠더란다.


철길에서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태어날 때부터 방금 전까지의 모든 기억이 순서대로 차곡차곡

정리되며 주마등 처럼 지나더란다.


사람이 죽어 옥황상제를 만나면

정리된 기억을 꺼내 따져 보고 천당으로 보낼지


아니면 지옥으로 보낼지를 판단할 용도로 사용하려고

기억이 정리되도록 인간을 창조했을까?


나는 옆지기에게 사고전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더냐며 물었더니

그렇지 않았다고 하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우린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고 한바탕 웃으며

주유소를 떠났고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암튼, 그후 무사히 귀가는 하였지만

나의 무모함과 부주의로 인해 차량은 정비공장에 들어 가야 했으며,

수리비 견적은 보험상 차량가액을 훨씬 넘는단다.


차에게 사죄하는 뜻에서라도

상당금액을 추가 부담하여 수리를 맞길 수밖에 없었다.

제왕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