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여행 ] 톱카프 궁전과 지하수조[ 7일째, 5-3편 ]
< 2015. 3. 21.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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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5.부터 3. 23.까지
터키를 여행하였습니다.
벌써 7일 째이며
출국을 하루 앞두고 이스탄불에 있습니다.
다섯 편으로 나눠진 오늘 여정 중,
세번째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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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를 출발해 6시간을 달려 이스탄불에 도착했고
구시가지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하였으며
방금 전 아야 소피아를 살핀후
톱카프(Topkahi) 궁전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야소피아 대성당과 거의 붙어 있어서
몇분거리에 불과한 궁전의 여러개 성문 중에서
'예절의 문'이란 곳에 당도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산을 쓰지 않으면 제법 젖을 정도...
관광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줄지어 있었으며
우리도 그들 뒷편에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풀밭엔 클로버 보다 작은 흰꽃들이 점점히 일어나
그런 비를 촉촉히 맞고 있었지요.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가 건설을 시작하였고
1467년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됐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평지에 위치해서
주변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톱카프는 '대포 문'을 뜻하는데
과거 해협 쪽에 대포가 놓여 있던 것에서 유래됐고,
오스만제국 때 세워진 톱카프 궁전은
단순하게 왕족들이 머물며 사는 거처인 동시에
술탄과 중신들이 회의 장소이자
국가 정치를 논하던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런 궁전에 거주하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는
당시 5만 명이 넘을 정도였고,
궁전 내부는 정원 4개와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400여 년 동안 계속된 오스만 건축 양식의 변화를 살펴 볼 수 있다네요.
그런 궁전을 관람하기 위해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제1정원이 가장 넓고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차 규모가 작아진다고 하며.
각 정원에는 회의실, 알현실, 교회,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고
술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다네요.
암튼 볼거리가 많아 전부를 천천히 둘러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북동쪽에 자리한
황제의 문으로 입장하면 제1정원이 나오고...
중문을 지나 제2정원에 자리한 하렘(Harem)은
남성의 출입이 금지된 여성들만의 공간이었는데....
이곳은 술탄과 거세한 환관들만 출입할 수 있었으며.,
미로처럼 복잡한 내부 통로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하렘만 해도 약 400개의 방이 있었다네요.
하렘의 모든 창에는 철창이 달려 있는데,
이는 외부의 침입과 여성 노예의 탈출을 막기 위합이었답니다.
그런 하렘 입장권은 별도이며 우린 패쑤 한답니다.
빡빡한 일정에 비까지 내리는데다
별 호감을 두지 않던 곳이 었고
아야소피아와 비교하면 솔직히 관심도가 낮았습니다.
현지 주민이 아이와 함께 소풍을 나왔는지...
관람보다는 아이가 노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근에 구내 매점이 있나봅니다. ㅎ
제2정원내 수백 명의 요리사가 음식을 준비하던 주방이었으며
현재 도자기 전시실로 사용되는데
전시된 도자기 수가 무려 1만 2천여 점이지만
역시 우리는 패쑤한다고 합니다.
제3정원에 위치한 '보물관'은 톱카프 궁전 관람의 하이라이트랍니다.
술탄이 사용하던 왕좌, 갑옷과 투구, 무기 등
호화로운 보석으로 장식된 물건들이 가득하다는데....
너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일행들의 취향도 서로 다름을 감안하여
각자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옆지기와 나는 비교적 한가한
이슬람종교전시실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 쓰던 지팡이류도
전시돼 있다는 얘기를 가이드 강선생으로부터 들었거든요.
암튼 각자 임의로 선택한 전시실을 관람하고
제4정원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때 만날 장소를 설명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정확한 명칭은 가물가물 합니다. ㅜㅜ
이슬람종교관을 들어가기 위해 줄서 있으면서
주변 이쪽 저쪽 사람들을 구경했지요.
특히나 모하메드의 유품 등이 전시돼 있는 곳은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었지만...
가슴이 쿵당거리면서도 어쩔수 없이
몰래 몰래 몇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공개하는 것이니 용서하시길...^^
당연히 가이드의 안내도 없으나
여렴풋이 안내글과 전시품을 보면서 이건 누구의 칼이고...
무슨 유품 인가 보다 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보석류도 일부 보였던 것 같았는데.....
자세한 것을 알수 없습니다.
돔 내부의 대리석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전시된 유물의 진실성에는
다소 의문이 가는 것도 제법됐습니다.
사진은 못찍었으나
누가 쓰던 지팡이라고 전시를 해 놓은 것 같았는데...
과연 진실인지 의문입니다.
그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유물의 진위를 따지거나 하는 분란을 피하기 위해
사진촬영을 막는 것일지도 모르겠구요.
다른 전시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어둠 속에 카메라 감도를 잔득 올리고서
목에 걸어 아랫배에 놓인 카메라 방향을 움직여 찍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어서
촬영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관람실 안에는 스피커를 통해서 코란외는 소리(아잔)가 들렸는데
마이크를 통한 생방송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잔 [adhan]은 무아진(mu'adhdhin)이 행하는 것으로..
무아진은 성품이 좋은 무슬립 중에 선택되어 모스크에서 일하게 된 사람으로
작은 모스크에서는 문이나 주변에 서서 아잔을 외치고
큰 모스크에서는 첨탑에 올라가서 한다고 했습니다.
아잔은 원래 '기도하러 오라'는 단순한 내용을
외치는 사람을 통해 신자들을 불러들이는 의식이라 했는데....
박물관인 이곳에서도 그 같은 내용을 외치는 것인지
알수는 없습니다만... 경건하긴 했습니다.
암튼 검(칼)을 비롯한 모하메드의 망토라는
오래된 옷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종교관 관람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역시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지요.
하여튼, 가장 빼어난 경관의 장소,
골든 혼과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로 갔습니다.
궁전에서 가장 좋은 포토존으로 향했고
옆지기는 피곤하니 관람은 그만하고 쉬고 싶답니다.
그곳 테이블에는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담소하는 여행객들이 많았는데...
나 처럼 시간에 메어있는 여행인에겐
좀 과분하고 호사스런 사치같이 느껴지더군요.
그냥 무언가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은
저의 편협한 생각일 겁니다.
옆지기가 차를 마시면서 해협 풍경을 보는 동안
저는 이러저리 분주히 담았습니다.
그때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그때의 풍경과 한순간 느꼈던 감정을 많이 잃어버렸을 겁니다.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보는 풍경과
스치듯 언듯언듯 보는 풍광이 조금씩은 다르겠지요?
마음으로 가슴으로 보는 현실이 좋기는 하지만
기억이 희미할 때쯤 사진으로 보면 다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글을 쓰며 옆지기 앞의 찻잔을 보니 아직 절반이나 남았네요.
아마 홍차 맛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바닷가의 성벽이 보이네요.
두께가 5미터에 달하는 성벽은 21만 평의 궁전 둘레에
축조돼 있다고 합니다.
그런 성벽 안쪽에 시다나무가 서 있고
나무 가지 아래로 펼쳐진 보루포루스 해협이 시원히 내려다 보입니다.
그 해협을 가로지른 아타튀르크 다리가 보이네요.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여서 인지
목단(모란) 꽃이 며칠 후 피어날 것 같았습니다.
키 큰 침엽수에는 까치 크기의 조류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녀석들은 참 시끄럽고 사납게 싸우는 듯 보였는데...
아마 짝짓기 철이래서 그럴거라 생각했습니다.
모이기로 약속한 장소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해도 은근한 구경거리였지요. ㅎ
비가 잠시 그친듯 한 정원에
노란 팬지 꽃이 가득 피어 있었네요.
썬다이얼이라고 써 있던데
1700~1800년 경에 쓰던 해시계였나 봅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제위가 1400년대였으니
우리나라 보다 늦게 제작됐던 것 같습니다.
암튼, 그 주변의 풍경들입니다.
그렇게 톱카프 궁전을 나왔습니다.
짧지만 긴시간있네요.
나오면서 보니 톱카프 궁전 내부 시설이 나열돼 있네요.
무슨 실이나 무슨 방 무슨 홀 이런 식이 였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가 실제 둘러 본 것은
손톱만큼에 불과 한 것 같습니다.
빨간우산을 든 가이드 강범구 선생을
우리는 따라갑니다. ㅋ
글을 쓰면서 톱카프 궁전에 대한 검색 중에
중국의 자금성과 비교가 된다는 내용이 있어 이를 간략히 소개합니다.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톱카프 궁전은 중국의 자금성과 비슷하다.
현재의 규모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지어질 당시에는 자금성과 규모도 비슷했다고 한다.
왕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증축과 개축이 진행되고
네 번의 대화재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은
반듯하게 계획된 자금성과는 달리 무질서해 보이지만,
자금성과 비교해 보면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자금성의 천안문에 해당하는 문은‘바브 휘마윤’이다.
신성한 문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문은
황제의 문 또는 술탄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바브 웃 셀람’, 즉 경건한 문이라 불리는 제2의 문은
자금성의‘오문(午門)’에 해당한다.
세 번째 문, ‘바쉬스 싸데’는 지복의 문으로,
군주와 군주의 측근만이 통과할 수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 제3정원과 알현실이 나오는데,
자금성으로 치자면 ‘건청문(乾淸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금성의 후궁에 해당하는 것이 톱카프의 하렘이다.
250개의 방이 있는 이곳은 수많은 방문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펌)
암튼 톱카프 궁전을 나왔는데...
갑자기 배구선수 같이 훤칠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해맑은 미소바이러스를 풍겨셔리.. 찰칵~~^^.
지하도시(지하수조)로 가는 길입니다.
지하도시 혹은 지하수조로 불리는 예레바탄 사라이로 가는 길...
그 길가에 노란색 3층짜리 건물을 찰칵~,
궁전 안의 석조건축과 달리 목조로 보였거든요.
이내 예레바탄 사라이에 도착하였지요.
거대한 지하수조에 도착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애초 이스탄불은 그리스의 식민도시에서 출발했으며
기원전 7세기경 지중해와 흑해에서
활발한 해상무역을 하던 그리스인이 처음 도시를 세웠는데...
그들이 세웠던 아크로폴리스의 흔적이
현재 지하 물 저수지인 이 예레바탄 사라이에 남아 있답니다.
532년 콘스탄티누스 1세 때 만들어지기 시작한 예레바탄 사라이는
길이 141m, 폭 73m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으로
(물 속에 반짝이는 것은 여행객들이 던진 동전들)
원래 '예레바탄 사룬치(지하 저수장)’라 불리었으나,
그 규모로 인해‘예레바탄 사라이(지하궁전)’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예레바탄(yere batan) '이란 ‘땅에 빠진’이라는 의미라고 하며.
이곳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8m 높이의 돌기둥 336개로써,
건축자재가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 때문에
그리스 식민지 여러 지역으로부터 기둥들이 동원되었단다.
다 다른 모양의 기둥들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것은
거대한 메두사 얼굴이 초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둥.
옆으로 뉘어 있거나 거꾸로 놓여 있는 메두사의 얼굴은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으며
메두사라는 괴물자체가 마주보면 돌이 되는 저주에 걸려 있기에
서로 눈길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을 뒤집어 놓은 거라는 얘기도 있고,
건설하던 기독교도들이 이교도를 멸시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놓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암튼 19km 떨어진 숲에서 끌어 온 물을
최대한 8만 톤을 채울 수 있는 이 저장고에서 메두사의 얼굴은
가장 낮고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나
현재는 가장 각광받는 전시물이 되어 있다네요.
그래서 크게 한장 남깁니다. ㅎ
실제 내부에는 물이 바닥에 조금 깔린 정도로
얕은 상태로 보존 되고 있었습니다.
실제 활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는 거죠.
실제 사용되면 저 다리까지 잡길 뿐만 아니라
잠시 전에 본 메두사의 얼굴도 볼 수 없었겠지요.
한편, 야트막한 물 속에
커다른 잉어떼들을 풀어놓았기에...
호기심을 주기 충분하였고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피서지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일찌기 먼 숲에서 이곳까지 긴 수로를 건설하고
그 수로를 통해 흘러 온 물을 지하 저장고에 보관하였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하고
지상으로 나왔습니다.
다음 여행지는 이스탄불에서 가장유명한
전통시장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뭐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과 같다는....
공중목욕탕 앞을 지나고
좁은 골목길을 가는데 히잡을 두른 여인이
어린 아이 둘과 함께 웅크리고 구걸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남편은 전쟁에 나가 죽었고
살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피난해 살기가 얼마나 힘들까요.
모성애가 대단합니다.
강선생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들이
터키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며 이들 때문에
터키가 골머리를 앓는다고 합니다.
커피 향이 그리운 시점이었을까요
스타벅스 커피점 사진을 왜 찍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카페 테라스의 풍경이 괜찮아 보이긴 합니다.
저들도 시장에 갈까요
가이드는 얼추 다 왔다고 말합니다.
화장실은 유료화장실밖에 없다면서리...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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