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여행 ] 이스탄불 성 소피아 대성당[ 7일째, 5-2편 ]
< 2015. 3. 21.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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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5.부터 3. 23.까지
터키를 여행하였습니다.
벌써 7일 째이며
내일 출국을 앞두고 앙카라를 출발해
이스탄불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5편 이야기중 둘째 편,
아야 소피아로 가면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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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아침 6시에 앙카라를 출발해
방금 전 이스탄불에 도착했고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점심식사하러 가는 길...
트램열차와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였습니다.
건물 벽에 수도꼭지가 있어서 그 앞에 앉아
저 처럼 미리 몸을 씻고 모스크에 들어 가는 것이
무슬림의 전통이라 합니다.
사우디에서도 저 처럼 깨끗히 할텐데...
어떻게 한국인에게 메르스를 전염시켰는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ㅜㅜ
가이드 강범구 선생은 바닷쪽을 응시하며
평시와 다르게 영국군함이 보인다고 말을 합니다.
아마도 IS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합동작전)의 일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사이 우리 버스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구 시가지에 진입한 것 같습니다.
구 시가지는 주요 문화재들이 집중해 있고
식당들도 그 곳에 많다네요.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
그리고 오스만시대 동안 황제들이 사는 궁전이 있던
이 도시의 심장부는
항상 이곳(구도시) 이었다니 당연한 것 같습니다.
암튼, 식당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자리를 잡았고
케밥이 배달되었으며 음식이 차려졌습니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으나
제 경우는 음식들이 유럽 다른나라들 보다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옛날 칼국수 반죽 같은 것을 얇게 저며
흡사 삽 처럼 생긴 나무판 위에 깔고
화덕 안으로 밀어 넣어져
열기에 부풀어 오르며 익혀진 빵은...
마치 공갈빵과 비슷한 모양으로
꺼내 지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 누구나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먹고플
정도로 말이죠. ㅎ
더구나 그 빵은 무한 리필해 준다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따끔 고추가루 같은 것을 비치하기도 했지만...
예상밖에도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입이 깔깔할 땐
준비해간 고추장을 깨내도 잘 어울렸습니다.
우리 일행들은 대부분 국외여행 경험이 있었는지
김이나 깻잎 같은 것을 늘 준비하드라고요...
초기엔 아끼느라 꺼내지 않더니
나중엔 남아서 인지 서로 권하곤 했습니다. ㅎ
그렇게 맛있는 점식식사를 마치고
오후 일정이 시작됐습니다.
아껴둔 라면이 몇개 남았는데...
아내는 가이드 강선생을 주면 좋아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2층 창살 틈으로 얼굴을 내밀며 핀 수선화가
'빙고' 하고 맞장구 치는 것 같아요. ㅎ
커피믹스도 제법 남았으니 내일 인계하려 합니다.
언젠가 어느 한인 식당 주인이...
라면이나 커피 남는 것을 구걸하다시피 하더군요.
그 맛이 그립다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는 배낭에 몇개씩 넣어 다니기에 문제가 없으나
트렁크 안의 라면은 꺼낼수 없어 안타깝더군요.
사실은 라면의 경우는 나눠 줄려고
일부러 넉넉히 가져 갔거든요.
이런 저런 말을 하는 사이
성 소피아 대성당 근처에 접근했나 봅니다.
성소피아 대성당 (검색)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
(-그리스어: Αγία Σοφία, 고대: 하기아 소피아, -현대: 아야 소피아,
라틴어: Sancta Sophia 상크타 소피아,
터키어: Ayasofya 아야소프야,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동방 정교회 대성당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펌)
잠시후 히포드럼 광장에서 성당으로 들어가 관람을 하겠지요.
광장엔 오벨리스크와 콘스탄틴 기둥이 보입니다.
참고로 히포드럼(Hippodrome) 광장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뒤편에는 로마시대에 전차경주를 하던
원형경기장인 '히포드럼 '이 있던 곳이며
영화 '벤허'에 나오는 그 경기장이라 합니다.
그 곳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를 검색해 보았더니
원래 고대 이집트의 사원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뾰족 기둥 이래요.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건축?)이라고 하며
BC15세기(즉, 3,500년 전) 이집트에서 만들어 졌고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둥처럼 수직으로 세운 것이랍니다.
BC 390년 비잔틴황제가 이집트의 어느 신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현재의 장소에 세웠다고 합니다.
빛나는 고대 이집트인의 오벨리스크 조각품은
이집트의 아스완 채석장에서 캔 붉은 화강암 덩어리를
깎아서 만들어지는데
몸체의 사면에는 주로 태양신에게 바치는
종교적 헌사나 왕의 생애를 기리는 내용을 담은
상형문자로 장식되었답니다.(펌)
저 '오벨리스크'를 자세히 보면 아랫부분
상형문자가 정상이 아닌 것은 이집트에서 이곳으로 옮기는 도중에...
몸체 일부가 잘려 나갔음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암튼 저 오벨리스크도
채석장에서 거석(巨石)으로 잘라냈을 것입니다.
어느 문헌에는 채석장에서 저런 거석으로 자르고 깎아내는 데
7개월이 걸렸다고 새겨져 있다고 하며
한편 어느 고서에는 나일강을 통해 나룻배로
오벨리스크를 실어 나르는 장면의 그림이 있다고도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인부들은 흙으로 경사로를 다지고
따로 떨어진 발판 위로 오벨리스크의 몸체를 들어 올리며
그것을 좌우로 움직여 자리를 잡아주는 과정을 거쳐
로마 제국 시대에 이집트에서 지금의 이탈리아로
여러 개의 오벨리스크가 옮겨졌는데....
적어도 12개 정도가 로마 시에 옮겨 졌으며,
그중 하나가 투트모세 3세(BC 1504~1450 재위)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큰 고대 오벨리스크랍니다.
높이는 32m, 밑바닥 4면체 길이는 2.7m이며
올라갈수록 조금씩 가늘어져
꼭대기의 4면체 길이는 1.88m이고
그 무게는 약 230t에 이른다고 합니다.
19세기말 이집트 정부는 1쌍의 오벨리스크를 둘로 나누어
미국과 영국에 각각 하나씩 주었고,
그중 하나는 지금 뉴욕시 센트럴파크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런던 템스강변에 서 있답니다.
BC 1500년경 전형적인 붉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21.2m이고
밑바닥은 직4각형으로 가로 2.36m, 세로 2.33m이고
무게는 180t에 이른다고 하네요.
물론 원래 부러지기 전 것은 300톤이나 됐었고
32.5미터였다고 합니다.
한편 이지역이 100년에 한번씩
6.5강도의 지진이 강타했었는데도
저 오벨리스크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보다시피 건재 합니다.
이런 돌기둥들을 채석해 세웠다는 사실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역학적 천재성과
무한한 인력 동원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가 아니겠냐는 글도 보였네요.
오늘날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로서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워싱턴 기념비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1884년 워싱턴 D. C.에 세워졌으며,
높이는 169m로서 전망대와 내부계단 및 엘리베이터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고 검색되었습니다.(발췌 편집)
이런 말 저런 생각에 젖어
술탄아흐멧광장(히포드럼)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세계각국에서 온
여행인들과 뒤섞여서 말이죠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생각하는가운데
성 소피아 대성당 앞까지 왔습니다.
사용된 돌 색깔이 그럴까요?
아야소피아는 약간 붉은 기운의 홍조를 띱니다.
성스런 지혜의 빛깔?..
카메라 렌즈에 빗방울이 튀기도 해서
사진 품질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날씨지만...
말로만 듣던 아야소피아 앞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습니다.
거추장스럽다며 우산도 없이
카메라를 든 나,
그런 내가 안쓰러운지
이따끔 우산을 받혀주는 옆지기가 고마웠습니다.
붉은 빛이 도는 성 소피아와
그 부근에 있는 블루모스크는 아래 사진처럼 얼핏 비슷합니다.
예전에 검둥이나 흰둥이를 처음 보면
그놈이 그놈같이 생긴 것으로 기억되듯이
서양의 성당들이 어찌나 비슷해 보이는지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두 건축물이 히포드럼 광장에 있더라 하더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보면 소피아 성당과 이슬람사원은 조금다른데..
이슬람 사원인 블루모스크는 푸른빛이 나고 첨탑도 6개나 되며
그 층수가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 소피아, 성(聖)은 터키어로 '아야'라 한데요
그래서 '아야 소피아'라고 불리는 저 곳
사람이나 교회이름 앞에 붙이는 성(聖)의 의미는
"성스러운"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경우는
성인(Saint)이라는 뜻이라고 하구요.
성인(聖人)이란 기독교에서 순교자나 교황 등
종교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교황청으로부터 인정을 방아야 하는 것으로
기독교 신자들에겐 최고의 명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엔 신유박해 등으로 순교하신 조상 중
103위가 성인으로 시성돼 있습니다.
세례명도 성인의 이름을 따고요
특히 서구권에서는 한 때 종교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성당이나 예술작품을 짓고, 만들어 완성시키면
그 이름을 딴 성인에게 봉헌한 거죠.
그래서 성인 중에 소피아를 따 온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런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성스러운 지혜의 성당이란 의미로
그냥 불려지는 것 같은데 물론 개인적 생각입니다.
아래 사진은 우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역시 정확하진 않습니다.
버스에서의 설명은 가능한 메모를 했으나
현장에서의 설명은 많이 놓쳤지요. ㅜㅜ
세계7대 불가사이 중의 하나인
아야 소피아 성당에 들어 온 것 같습니다.
높다란 건축물 현란한 금색 무늬의 벽과 천정
한국에서 보는 건축과 다른 것 같아요.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대표적인 건축물
성 소피아 성당은 외랑에서 내랑을 거쳐 들어가는데
무척 아름답습니다.
금색 모자이크와 테세래라 부르는
대리석 조각으로 벽을 장식했다고 여행지에서 구입한 책자엔
설명돼 있습니다.
금으로된 모자이크와
색깔있는 작은 대리석 조각들의 모자이크임을 알수 있습니다.
사용된 재료들은 여러나라에서
가져와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래 모자이크는 9세기에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며
가운데 의자에 예수님이 앉아 있고
좌측 원 안에 성모님이 우측 원에는 가브리엘 대천사랍니다.
비잔틴제국의 황제였던 레오6세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라네요.
전 높은 천정에 사람들이 서서
일일이 한 조각씩을 붙혔다는 것도 대단하고
그렇게 오래된 것이서 더 놀랍습니다.
내랑을 거쳐 본당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돔이 보이고 그곳에 비계들이 놓여 있습니다.
참고로 비계(飛階)는 건설, 건축 등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가설 발판이나 작업용 임시 시설물을 말합니다.
저 비계는 성당 안을 보수하거나
문화재 복원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예전엔 나무를 썼으나 요즘엔 튼튼한
철제프레임을 사용하므로 설치와 철거가 보다 쉬울 것 같아요.
저렇게 큰 돔은 처음봅니다.
보자마자 단번에 압도되는 크기였습니다.
비잔틴시대에 건축된 이래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800여년 동안 새롭고 많은 건축기술이 개발되었음에도
이 소피아성당을 능가하는 어떤 건축물도
건축되지 못했다고 하는 명소에 와 있는 겁니다.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기지는 성 소피아는
오늘날 이스탄불 여행자들로부터 건축물 중 가장 칭송받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된답니다.
건설된후 916년간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그후 481년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러다 터키 공화국을 창시한 아타튀르크의 명령으로
대규모 복구사업을 거친후 1935년부터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합니다.
성 소피아(하기아 소피아, 아야소피아)란 이름은
기독교에서 신에게 봉헌된 3가지 중의 하나로서
하기아 소피아(성스러운 지혜), 하기아 이레인(성스러운 평화)와
하기아 디나미스(성스러운 힘)라 합니다.
돔의 높이 55.5m 였는데...
553년 지진으로 파괸된후 4년에 걸쳐 복구하면서
6.5m 더 높게 만들어 졌다고 하며.
그리고 돔은 원형처럼 보이지만
타원형으로 만들어져서 동서 31m, 남북으로 33m인데
다른 돔과 연결돼 전체길이가 100m랍니다.
직경 7.5미터나 되는 검은 빛 동그란 원판들이 보이는데
그 안에 그려진 것이 이슬람 문자라 합니다.
알라신, 예언자 무하마드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으며
당대 최고 달필의 작품이라 합니다.
가이드 강범구 선생의 설명에 야타튀르크의 명령에 따라
이 성당이 이슬람 사원에서 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했다는데...
제 생각에 터키의 국부란 칭호를 받는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참 지혜로운 사람 같습니다.
기독교의 성지처럼 여기는 소피아 성당을
계속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게 하면
많은 기독교계 나라들로부터 미움을 살 것이고..
그렇다고 기독교계 성당으로 존치하자니
무슬림들로부터 원성이 뻔해서
차라리 박물관으로 쓰도록 한 것이 아닐까요?
얼마전 터키내 정치권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고쳐 사용할 것을 추진을 했으나
행정부로부터 거부를 당한 것 같은데
아마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기사 터키사람들의 민심은 하기아 소피아를
오스만제국 때 처럼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가
도시로 입성하자마자
이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으로 향했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고 외치면서
영토 확장 목적의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의 흙을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이 대성당을 몰수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였다네요.
그로인해 대성당의 일부는 파괴(훼손)되고
내부의 십자가가 떼어졌으며
성화(이콘)는 석회칠로 덮어지고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메라브가 더해졌으며
그 후, 네 개의 미나렛(첨탑)이 증축되어
교회 내에는 민발로 불리는 설교 단상도 장착되었답니다.
아야 소피아 자미로 불리게 된 이 정교회 대성당은
톱카스 궁전 쪽에 위치해 있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마다 방문하는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스크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답니다. (백과사전, 편집)
암튼, 높이 55.6m의 돔은 세계 5대 돔 중 하나이며
놀라운 것은 건물을 지탱하는 것이 기둥이 아니라 15층 높이의
거대한 돔이 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애초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건축가에게 맡겨졌으나 미처 고려치 못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건물이 무거워 하부 구조가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말이죠.
점차 붕괴 우려가 있어 나중에 보수보강을 많이 했답니다.
밖에 나가면 그 증거를 볼수 있다고 했었지요.
사진 중앙의 새 모양의 형상은
원래 천사의 모습이었으나 오스만시절에 훼손되었는데
기독교의 흔적을 가능한 없애려
회반죽으로 덮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의자에 앉은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 입니다.
곳곳에 자연채광을 위한 창이
많이 설치되어 있으나 초기에는 전구가 발명되지
않은 시기여서 조명에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전구가 발명된 이래 근래에 설치한 샹드리에 같은데..
제 눈엔 의외로 소박해 보입니다.
박물관의 전시품은 자외선 등에 의해
훼손될 수 있어서 보통 후레쉬를 터트리지 못하게 히지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성당 내부는 침침한 곳이 많았는데
현대화된 조명시스템이 갖춰 졌으면 좋을 듯 했습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OLED 조명은
자외선과 적외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술작품에 대해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있습니다.
성당내 이곳 저곳을 봅니다.
성마리아와 예수, 창문부위와 대리석 바닥, 스테인드글라스
성당 안에는 40개의 큰 창문이 있으며
아랫 것이 더 크고 위에 것일수록 작은 것 같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돼 있는 창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이슬람 문자가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창문역시 오스만시대 때 훼손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예수님과 성모님과 바라보고 있는 곳에서
기념사진은 남겨야죠~~^^
돔의 천정 가장 윗부분의 중심 주위로도
이슬람 문자가 겹쳐 디자인 된 것 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오스만제국 시절 성당에서 기독교 흔적을 없앨 때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당 안이 워낙 넓어서 광각 렌즈를 써도
사진 한장에 담을 수 없지만
가능한 한장에 많이 담으려고
파노라마사진을 여러번 시도 했습니다.
금빛 금속 창살 처럼 보이는 저 곳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인들의 기도처라 했던 것 같습니다.
본당 안에는 황제의 부인이라 하더라도
계율상 여인으로 들어 올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가까이 지체높은 여인들의 기도처가 있었을 테고
것두 서열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설명중에 얼핏 황후의 기도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황후의 기도처 부근에는
2층에 오르는 계단을 두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거든요
우리 여행팀 24명 모두가 수신기 이어폰을 작동시키고
가이드 감범구 선생의 안내를 경청합니다.
저 역시 그들과 떨어져 있을 때가 있지만...
경청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지요. ㅎ
다시 외랑 같은데요
이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본당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곳의 바닥은 품격이 맞지 않게
울퉁불퉁한 돌들로 돼 있었으며
외져 보이고 침침했는데
아마도 공사로 인한 임시통행로 일 것으로 짐작 합니다.
2층에 들어서면 1층 복도의 외랑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여행객들이 운집해 있어서
다니기가 불편하기도 했지요.
일반인들에게는 개방되지 않은 구역도 있는듯 했지만
볼 수 있는 곳만 해도 다 보지 못할 규모입니다.
여정상 일정을 소화하려면
성당내 채류기간이 2시간 도 못되는가 봅니다.
이층에서 내려다 보는 본당 모습입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벽은
회반죽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슬람 사원으로 고치면서
애초의 십자가 등 기독교 흔적을 모두 없애는데는
한계가 있었나 봅니다.
그나마 나중에라도 원래의 것을
일부라도 볼 수 있게 복구된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2층 갤러리 천국의 문을 거치면
성 소피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이 모자이크에는 예수님을 두고
양편에 성모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있는데
'디시즈' 라 부른다는데요.
참고로 성경에 등장하는 요한은 여럿이 있는데
존, 얀, 이반, 장 등의 이름으로 불리운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이고
성모님의 친척 엘리사벳의 아들이라 합니다.
앞서 에페소 이야기에서 성모님 노후를 모신 사도요한은
예수님 12제자 중 한 분이자
사도 야고보의 동생으로
세례자 요한과는 다른 요한이라네요.(편집)
암튼, 모자이크는 과거 심자군에 정복했을 때 많이 파손됐지만
상당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모자이크로 볼그스레한 뺨의 볼터치도 표현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기억은 흐릿하지만...)
중학교 미술책에 저 사진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역사책 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성모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예수께 죄인을 구원해 달라며 간청하는 모습이라 하는데....
남아 있는 흔적을 가지고
원래 것을 유추한 것이 좌측상단의 모습이라 합니다.
좀 더 디테일 하게 보려고 확대를 해 보았습니다.
금과 색깔있는 돌 조각들이 선명합니다.
성당 안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나 같이 자세히 보고 싶지만...한계가 있습니다.
이스탄불에 있는 많은 유적들은
계속 유지보수를 해야 하겠지요.
알핏 보이는 창밖의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보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운 시간에 잠시 밖을 봤었네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청색 대리석 기둥, 성당 안에는 107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저 것은 레바논에서 가졌왔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사진들은 벽에 감춰진 역사를 알려 준답니다.
이곳을 점령한 오스만제국에서는
이 성당을 헐어 내려고 했으나
술탄(통치자, 왕)이 아름다움에 반해 사원으로 고쳐졌답니다.
그렇다 보니 사진에서 처럼
벽 속의 원래 그림(모자이크 등)이 회반죽으로 덮이거나
다른 것으로 입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옛날 천장에 붙이는
벽지 비슷한 별표 무늬 안보이시나요?
어디서 많이 봐온 무늬 였는데
우리 가이드는 명품 루이xx 핸드백에서 많이 보인다네요.
그 회사에서 적당히 디자인 한 것인 줄 알았는데
역사적 무늬였습니다. ㅎ
아까 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모자이크
훼손됐지만 상태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가운데가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
그 옆은 황제와 그의 부인이 모습이라 합니다.
아무리봐도 1500년이나 된 성당은
크고 아름답습니다.
디시즈 모자이크 건너편에
또다른 모자이크가 있는데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다.
명소는 항상 북적거리는 것 같습니다.
본당 돔 내부에 그려진 예수님을 앞에 안고
의자에 앉은 성모의 모습을 다른방향에서 봅니다.
중앙 정면으로 이동하여 다시 한장 담습니다.
대리석에 그려진 기독교의 흔적을 없애려
석회 몰타르을 발라 감췄으나
여러가지 한계료 가운데 심자가의 형상이
보이는 것이랍니다.
저절로 내 마음 속엔 짧은 구원의 손짓으로
성호가 그어졌습니다. +
방문 기념사진은 남겨야죠. ㅎ
박물관이래서 여러가지 전시품이 있으나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기념품 판매소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곳도 있었습니다.
소소한 것은 가이드의 안내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봐요.
대리석 바닥이 균열이 심한 곳도 있었습니다.
지진으로 그런 것인지 중량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천사의 모습인데 역시
훼손이 돼 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고 건축들에 그려진 그림들은
프레스코 기법이 적용되었을 겁니다.
참고로, 프레스코 (Fresco)는
a fresco (방금 회를 칠한 위에) 라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낱말로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를 일컫는다.
회벽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물에 안료가루를 개어서 그 벽에 그리는데,
물감이 마르면서 회반죽과 함께 굳어
영원히 벽의 일부가 된다.
이 습식 프레스코 기법은 내구성이 가장 좋은 정석기법이지만,
건식 프레스코 등 다른 기법들은 비교적 표면적이다.
프레스코는 기념비적인 양식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벽화 제작에 이상적이며 내구성이 좋고 표면 광택이 없다.(펌, 발췌)
푸른 빛이 감도는 대리석과
그 기둥 위의 정교한 조각과 아치의 모습을 보십시오.
어느 누가 파괴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오스만 제국의 술탄조차 파괴를 피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 장엄한 역사를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음을 감사해 합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말이죠.
이따끔 출입을 제한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런 장소를 지나 아랫층으로 내려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래됐다는데도...
잘 보전이 돼이는 성당의 각종 구조체들....
그리고 박물관 방문기념품?들....
국내 성물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황금빛이 가득한 성 소피아 성당...
어느 푸른색 대리석 기둥입니다.
기이하게도 기둥의 돌무늬가 신부 형상으로 보여
많은이가 만져서 손떼가 묻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리석판을 오려낸듯이 조각돼 있습니다.
아까 들어 올 때 지나 온 외랑을 통하고 있습니다.
부디 보존이 잘돼서 더 오랫동안 찬란한 빛으로
인류에 남기를 바래봅니다.
한참만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내부에 비하면 밖은 비교적 소박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벽들이 수직이 아니고
연못의 제방처럼 경사지게 쌓아진 것으로 보이는데...
거대한 건축물을 보강하기 위해 나중에
쌓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시대별로 쌓은 석재의 색상도
다른 것 같게 보였습니다.
흰 비둘기와 다른 색깔의 조류...
비를 촉촉히 맞고 있는 아야 소피아 를 바라보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서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풍자하는 것 같습니다.
근래에 복구 된듯한 첨탑(미너렛)위로
갈매기가 날아 오르는 듯 합니다.
이제 성 소피아 성당 관람을 마쳤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한답니다.
톱카스 궁전으로 간다네요.
톱카스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머물던 곳으로
세계 곳곳에서 거둬들인 보물과 헌상품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아름답게 꾸며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흐린 날씨이지만...
이 곳에도 관광객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이 곳 내부에도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있는 곳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너무 훌륭한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본 직후여서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암튼...두 세시간 동안의
짧은 여행얘기를 기록하는데 열흘이나 걸렸습니다.
다음편에서 뵙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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