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여행기

[ 터키 15. ] 앙카라 가는 길

재넘어아재 2015. 5. 17. 22:23



 

[ 터키여행 ] 끝없는 초원과 미루나무 풍경 [ 6일째-4/4 ]

< 2015. 3. 20. 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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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5.부터 3. 23.까지

터키를 여행하였습니다.


오늘은 여정 중의 6일 째이며

네 부분 중 마지막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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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린쿠유 여정을 마치고 수도 앙카라를 향해 가는 길

터키를 여행하는 한국인으로써

 

그 곳에 있는 한국공원은 들러 가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처럼 여겨지는 그런 기분으로 말이죠.

 

앞쪽에 나타난 산너머 고갯길이

꽤나 가파른 것 같습니다.

 

 

 

 

푸른 밀밭 저편에 큰 나무 무리들이 서 있고

왕릉처럼 둥그런 언덕이 보이네요.

 

 

 

버스가 더 진행하자 산 허리에 마을이 보입니다.

어찌 저토록 나무도 없는 벌판에 집을 짓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저기는 집 가에 나무를 좀 심었군요.

폐타이어 일까요

 

 

 

 

터키는 산림녹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중간 쯤에 보이는 나무들을 봐서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닌데...왜 나무를 심지 않을까요.

 

 

 

 

예전 우리나라 처럼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산에 나무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초원의 푸른 것들이 다 밀이고

그 밀들이 익어 갈 무렵의 드넓은 황금벌판은

정말 볼만 할 것 같습니다.

 

 

 

구수한 밀 향기 또한 대단할 것 같습니다.

 

 

 

드넓은 밀밭을 보면 분명히 트랙터 종류의

차량 발자국들이 나 있지만...

 

 

 

이상하리 만큼 트랙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길 가에 세워 두는 것이 다반사인데 말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 강범구 선생이

터키와 한국에 대해 많은 얘기를 우리에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참고를 하고자 검색도 해 보았지요.

강선생의 얘기와 검색된 다른 얘기를 섞어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는 보통....

이스탄불, 지중해의 나라, 형제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워지는가?"

"그 이유를 아느냐?" 라고 물으면,

대다수는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한다는 군요.


6.25때 미국.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

우리를 도왔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

파병된 15,000명이 넘는 터키군은 이슬람교도이고

또 대부분이 '자원병'이었으며,


그 중 3,500명이 사망(미국다음 많은 사상자) 할 정도로

그들이 열심히 싸웠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나라에 파병된 터키 군인들이

미루나무 가득한 조국의 봄 풍경을 떠올리며


반드시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겠노라고

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했으며,

'왜' 그렇게 고귀한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



그당시 터키는 비행기도 변변치 않아서

배를 동원해 우리나라에 파병하였다고 했습니다.



검색된 글에... 터키에 가면,

관공서나 호텔의 국기계양대에


터키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써 있던데...



저는 여행 중에 태극기를 여러번 보긴 하였지만

호텔 등지에 여러 국기와 함께 있는 것이었지


터키 국기인 월성기와 나란하게 우리 태극기라 휘날리는 것은

여행하면서 전혀 보지 못했다는 진실을 고백합니다.



대부분의 터키인들 역시

우리 한국인에게 대단히 우호적이며,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대한민국 '코리아'를

Brother's country 라 부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실제 우호적인 것 같기는 했습니다.)


또한, 한국말과 비슷한 단어가 많은 헝가리 사람들 역시

'한국이랑 헝가리랑 sister다' 라는 얘기를 한다고

하는 글도 있었지요.


저 때 시각이 오후 4시를 넘어섰습니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갑니다.



버스에서 내리며 보니

현지 여성가이드 날란이 보는 책이 놓여있네요.

겉과 다르게 알찬 여성으로 보였습니다.


GUVEN을 검색해 보았더니

터키어로 ①신뢰신용신임 의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가이드 날란은 혼자 차 마시기를 좋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슬림이 아닌지 히잡을 쓰지 않더군요.



암튼, 아까 그 소리가 대체 무슨 연유일까? 궁금했는데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 처럼요.


역사를 상기한다면,

과거 고구려와 그 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했답니다.


(앙카라까지는 아직 220Km를 더 가야하네요)



하여튼,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당시 중국(당나라)을 견지하는 차원 등으로 계속 우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부르곤 했나봅니다.

(휴게소엔 차나 음료를 저렴하게 팝니다.)


암튼,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 합니다.



즉, 우리 나라는 아주 오랫동안 그들에게

형제의 관계였던 것이지,

6.25 때부터가 아니란 주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점이 남게 됩니다.

어찌 우리는 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는 것일까?



답은 간단한데... 식민사관의 잔재인 역사 교과서와

교육의 차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고 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맞는지 틀린지 저는 알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하니,

책과 교육의 탓도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 비해 터키는 다르다는 겁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매우 상세하게 가르킨다는 겁니다.


1500년전부터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답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릅답지 않습니까?



전생에 살던 고향같은 느낌이 들 정도인

미루나무가 서있는 터키의 아름다운 어느 마을 풍경 입니다.



암튼, 설령 우리 한국이

그들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말이죠


실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해 줄 것이라고 믿었었나 봅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네요.


실제 1988년 서울올림픽축구경기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답니다.


그건 그렇고 잠시 한번 더 미루나무 풍경을 좀 보시죠.

기가 막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선가 내가 터키를 다시 간다면

저 미루나무 풍경이 보고 싶어서 일 거라 했었지요.


나중에까지 그런 마음이라면 잎이 웬만큼 피어난

5월쯤도 좋고 밀이 누렇게 익는 그런 시기가 어떨지 싶습니다.



암튼, 아까 얘기에서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데 대해 실망한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는 겁니다.


( 버스 좌측에 나타난 아래 모습은 소금호수라 합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 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답니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축구경기대회 때 였다고 합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답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경기대회를 치루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었지요.

아래사진은 터키와 중국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터키 국기를 동원하고

응원하던 장면을 펌한 것입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자국에서 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경기는 터키승리- 한국선수들과 터키선수들의

정겨운 어깨동무로 끝났었지요.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 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 졌다는 겁니다.



우리는 터키가 형제의 나라이며 우방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며


설명이 이어지는 사이에

사진처럼 소금호수 위로 노을이 시작됐네요.



오른쪽에는 사진과 같이

과일나무 인듯, 연분홍 꽃이 멋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살구꽃인지도 모르지만요...



하여튼, 19세기초 유럽으로 남진하려는 러시아의 힘을 얻어,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가 독립을 하게 되고,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하는 결과를 낳게 되자,


이에 분노한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와 붙은 아르메인들을 표적으로

인종청소라는 대학살을 감행 (1차 대학살)하였답니다.



20년후 또, 다시 오스만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은,

투르크 이슬람교도들은

 

아르메니아인 5만명에 대한

대학살을 자행(2차 대학살)했답니다.



잠시 형제애와 관련된 예기를 잠시 멈추고

소금호숫가의 휴게소를 들러 갑니다.



그렇지만 화장실을 가려면 반드시 매장을 거쳐야 하고

얼떨결에 물기 가득한 소금을 받아야 했으며



손에 물질러야 해서 그 장면은 사진찍지 못했습니다만

자수정 비슷한 것으로 진열돼 있습니다.



잠시 소금호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소금호수의 물 깊이는 매우낮아서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정도라고 하는군요.


장삿꾼들이 아토피도 여드름도 감쪽같이 치료된다기에...

인솔자 방정은 선생에게 확인을 했더니

그럴리가 있겠냐면서 미소를 주네요. ^^


바닦이 돌소금 층으로 되어 있어

염도가 매우 높으며 터키 수요의 60%를 생산한답니다.

소금은 터키어로 'TUZ' 라고 부른답니다.



아까 얘기를 계속하기로 하죠.


아무튼, 투르크정부는 위 2차 대학살 이외에도

아르메니아인 175만 명을 추가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추방하는 과정에 60만명이 사막에서

목숨을 잃게 됐는데....



그런 결과로 1894년~1915년까지

2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은

겨우 30만 명만이 살아 남게 됐다고 합니다.



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를

터키가 그리스를 싫어 하는 것 보다 수십곱절 만큼이나

더 싫어하고 원수로 여기는 사이랍니다.



한편, 그후 1912년 발칸전쟁 때와

몬테니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오스만터키에서 독립할 때도,


알게 모르게 러시아가 개입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을 도와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터키는 러시아를 싫어 한답니다.


저녁 일곱시 30분경, 앙카라 시내에 접근했으나

교통체증이 심한 모습입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터키는, 그 반대 쪽인 남한에만 병력을 파견했던 것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혹자는 당시 터키가

미국과의 우방적 연계로 말미암은


국제적 이득을 노린 선택일 뿐이였다고

말하기도 하는 이도 있는 것 같고요.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범주에서 바라본다면,

터키가 2차 세계대전 때, 우리의 동맹국 중의 하나였던 이유가


필연적으로 러시아와 적대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과거사 때문이였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시 터키가 주변국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실정이었고


6.25 전쟁 발발시 세계를 움직이던

미국에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어서 파병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만...


피를 흘리며 우리를 도와준 우방에 틀림이 없고

양국간의 우정을 위해 서로 상대국가에


공원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는 앙카라에 '한국공원"을 만들고

터키는 서울(여의도)에 '앙카라공원'을 만들었답니다.


그 한국공원까지 부라부랴 왔으나

공교로운 교통체증으로 공원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울타리 밖에서....



우린 마음속으로 조국을 생각하고

우리를 위해 피흘린 참전용사들을 위해 묵념했습니다.

참전기념탑과 그 앞의 태극기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게 아쉬움은 안고 한국공원을 떠나

호텔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암튼, 다시 형제의 나라 얘기를 잇습니다.


형제의 나라 한국-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 터키,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 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답니다.

(사진은 고층아파트의 야경입니다)

 

 

 

이런 관계를 지닌, 자기 나라로부터

수백만리 떨어진 곳에 보내는 의리와 애정을 주는 나라가

세상에 몇 이나 되겠습니까?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위인들은

평생 독서를 즐겼으며,

 

그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분야는 역사라고 합니다.

우린 세계사를 떠나 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관심이나 있었을까요.. 아니, 우리의 국사나

근현대 세계사를 과연 제대로 배운 적이나 있었나요..

 

내 나라 역사조차 바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역사를 논했던 우리의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어느 서울대학교 역사학 교수의

기고문을 가지고 쓴 글을 발췌 각색 했습니다.

 

 

 

터키와 우리나라간의 얘기를 하는 사이

벌써 숙소(ESENBOGA AIRPORT HOTEL)에 도착했네요.

그 시각이 오후 8시 20분

 

 

 

룸배정을 받는 가방을 모아놓고

동안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후 배정된 방으로 올랐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수리를 기다리며 로비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삼각형태로 지어진 호텔...

중앙에 하얀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6시에 호텔을 떠날 예정이고

이스탄불까지 6시간 30분이나 버스로 이동하므로

 

푹 주무시라는 인솔자의 얘기를 상기하면서

기술자의 도어록 수리하는 모습도

훗날 기억될 추억거리라 여기며 지켜 보았습니다.

 

 

다음 편에서 또 뵙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