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여행 ] 카파도키아 (6일째, 4-2편)
< 2015. 3. 20. 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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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5.부터 3. 23.까지
터키를 여행하였습니다.
오늘은 여정 중의 6일 째이며
네 부분 중 둘째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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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안탈리아에서 출발해 콘야를 거쳐
가파도키아에 도착하였고
박해자들의 피난처인 으흘라라를 방문한 후
동굴호텔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카파도키아 지역을 여행한 뒤
앙카라까지 이동하는 여정인데..
먼저 1편에서 사륜구동차인 랜드로버에 올라
카파도키아 괴레메 야외박물관 등지의 오프로드 체험을 했습니다.
방금 동굴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집을 챙겨서 버스를 탔으며 호텔을 나서고 있습니다.
저 때 시각이 오전 9시 30분이고.
외부기온은 섭시 3도 였으며 밖엔 눈이 쌓여 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바위에 굴을 뚫고
수십개의 교회가 세워진 괴레메 골짜기를 비롯한
파샤바계곡 등을 다닐 예정이라 합니다.
지금 현재 터키가 이슬람 국가 이긴 하지만
지금 이 지역 카파도키아의 토굴에 기독교회를 만든
현 터키인들의 조상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
중국의 한자식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천주교와 개신교가 포함되죠.
암튼 이슬람의 뿌리가 기독교인 것이고
그 지역에 태어나면 운명적으로 또는 여건에 따라
어느 한 쪽에 서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이런 것은 운명적으로 옭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이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역사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같은 땅에 살면서 어떤이들은
똑같은 사람인 반대편의 인간들을 적으로 핍박하는가 하면
그런 반대편의 강한 집단들의
박해을 피해 어둔 굴속에서 개미들처럼 살았던 거죠
그 때의 굴들을 여행객인
우리가 지금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죠
인종간, 대륙간, 지역간, 세대간 할것 없이요
물리적인 것을 뛰어 넘는 정신적 차원인 종교사회에서도
갈등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지금 중동의 IS 문제를 비롯해
수많은 분쟁들이 거의 종교분쟁인 것 같습니다.
3대종교인 불교, 기독교, 이슬람 사이의 갈등이
끊임 없이계속되고 있습니다.
종교에는 3대 요소가 있다고 하지요
숭배대상, 경전, 신도 이 세 가지
불교와 기독교는 국내에 신자가 많아
말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이슬람과 어떻게 틀린 것인지
이슬람국을 여행하면서 들었습니다.
불교의 불경이나 기독교의 성서는
여러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을 모은 것이지만.
이슬람은 마호메트 혼자 집필하였다고 하며
이를 코란이라 하고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으므로
어떻게 보면 이슬람은 뿌리가 기독교인 셈이죠.
그건 그렇고....
쫀득쫀득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얘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괴레메 야외박물관에서 박해자들이 살던 흔적을 보며
맛보는 아이스크림은 별미였습니다. ㅎ
암튼, 성서나 불경은 여러 사람의 썼기에
어떤 곳은 서로의 표현 방법이 틀려 해석까지 분분하고
이로인해 또다른 종파를 낳기 때문에
한국개신교의 경우만 하더라도 무려 45개나 된답니다.
이슬람의 코란은 한사람이 썼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다른종교에 비해 분란이 적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슬람에 대해 알아 보고자
검색한 것을 소개해 봅니다.
사진들을 보면서 시간이 되면 읽어 보시길요.
저는 여행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 하지만,
간혹 일행 분들의 모습도 찍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터키는 우리나라 보다 크고 여행지가 분산돼 있어서
이동거리가 멀며 버스에서 보는 풍경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화장실을 주기적으로 다녀야 하고
운전기사의 안전운행을 위해서도 수시로 휴식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곳에는 매점과 기념품가게가 있으며
아래 사진도 그런 곳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곳에서는 차를 마시기도 하고
기념품을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사지 않고 구경만 합니다. ㅎ
그러면서 사진을 꼭 찍더라는....
사실 저는 사진 속의 난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땔감은 석탄이었고 모터로 송풍을 하던데
열량이 대단했습니다.
이슬람에 대해 검색했던 내용을
발췌하고 각색해서 아래에 실어 보았습니다.
편안하게 사진을 위주로 보십시오.
관심이 없으시면 재미 없으니까요. ㅎ
<이슬람교리의 기원>(펌, 편집)
이슬람교는 세계 인구의 20%가 믿는 종교로서
그 기원은 유대교에서 시작됩니다.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는 둘 다
<구약성경>을 모체로 탄생한 종교이지만,
두 종교는 구약성경에서 제시하는
예수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크리스트교는 예수를 예언자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며 삼위일체화로 신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예언자로만 인정할 뿐,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는 최후의 예언자가 아니며,
최후의 예언자는 마호메트라고 한답니다.
이러한 이슬람교의 논리는
중세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악마의 종교요,
이단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위와 아래 사진은 보석매장의 모습)
잠시 보석매장에 왔으니
이슬람 얘기는 잠시후에 하기로 합니다.
각종 터키석이 즐비한 이 매장에선
몇분이 구입을 했는데...한국보다 저렴한 가 봅니다.
저 역시 옆지기에 사 주고 싶은 것이 있어 권했더니...
싫다고 하면서 자긴 그돈 있으면 다른 것을 하고 싶답니다.
뭐 사 주고 좋은 소리 듣지 못한 나여서
강요할 수는 없었지요.
35년전 결혼을 하면서
약혼 반지 등 예물 값을 제가 집에서 받고서는
금방에 가서 제가 설득을 하더랍니다.
신혼여행 쓸 카메라를 사자면서..
달랑 가짜 반지를 사주고는 결혼후 더 좋은 것
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옆지기는 싫다는 소릴하지 못하고
그러자고 한 것을 내가 진짜 그렇게 했다며
저는 두고두고 핀잔을 듣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 것 이상의 것으로 맞추긴 하였으나
그런 것은 소용이 없는 것인가 봅니다.
하여 사죄도 좀 할까 하여 거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주려 했으나
싫다고 하니 어쩔수 없이 그냥 나오고 말았습니다.
다시 이슬람 얘기를 잇습니다.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이슬람의 교리가
이단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문제에 봉착한 유럽은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중세유럽의 팽창기에 이슬람으로 진출한 것이
바로 십자군 원정이라는 겁니다.
< 무하마드의 등장 >
아라비아 반도에 살던 셈계의 아랍인들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메카, 메디나 등에서 대상 무역을 전개했습니다.
이들 아라비아 민족은 정치적 통일도,
종교적 통일도 없는 다신교의 유목사회였다고 합니다.
(보석매장 부근 어느 나무에 앉은 새들)
그런데 6세기 후반 유스티니아누스가 죽은 뒤
비잔틴 제국이 약해지고,
중앙아시아에서는 파르티아를 대신하여
사산조 페르시아가 등장하면서 양 국가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동방, 서방의 상인들은
사막길을 이용할 수 없었고,
그래서 모든 상인들이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무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교역로의 중심지가 바로 <메카>입니다.
메카에는 수많은 국가의 상인과 수많은 종교들이 난립하였고,
무하마드는 장사를 하면서
이러한 수많은 종교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는 유대교, 크리스트교의 영향으로
610년경 이슬람교를 창시하였습니다.
6세기 후반의 마호메트는 대상에 참가하는 상인이였습니다.
그는 유대교와 크리스트교를 모체로
새 종교를 전파하려고 했지만
당시 아라비아의 지배층에게 박해를 당합니다.
그 이유는 먼저 모든 인간이
알라앞에 평등하다는 평등주의 사상때문입니다.
(평등주의 사상은 당시 기독교가 대세였던 서유럽,
비잔틴 제국의 유행과 맞물려 있었답니다.)
그는 구약성경의 사상을 받아들여
많은 신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비판하고
모세의 10계율을 적극 활용합니다.
그리고, 상인들이 부를 독점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나다는 기독교적인 금욕관까지
염두에 두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메카의 상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사상이였습니다.
상인들은 무하마드 알리를 죽이려고 했고,
무하마드는 622년 70여인의 신자들과 메디나로 이주하는데,
이를 <헤지라>라고 하며 이슬람교의 원년이 됩니다.
무하마드는 630년 무슬림 전사들을 이끌고
다시 메카를 점령한 뒤 다신교 사회였던 우상들을 모조리 부셔버렸습니다.
그리고 무하마드의 입으로부터
신의 계시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다른 표현을 빌면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무하마드가 계시를 들을 바를 기록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랍어로 적힌
이슬람의 경전 <코란>의 기원입니다.
코란은 이슬람신인 알라에 대한 절대 복종을
최고의 교의로 합니다.
구약성경의 하느님이 "나 외의 신을 인정하지 않는 질투의 신"
이라는 점과 상통합니다.
알라신은 단순히 신앙의 신이 아닙니다.
알라는 세속의 모든 정치, 사회, 문화, 전쟁방식에 걸친 신자의
생활체계로 자리잡게 됩니다.
< 이슬람의 교리 >
이슬람교는 보통 동방에서 <회교>라고 부릅니다.
이 종교는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의 모세 5서, 시편의 내용을 주축으로
종교 교리의 체계를 잡았으며,
신약의 복음서도 신의 계시로서
일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의 불완전한 신의 기록이므로
완전한 신의 기록으로서 <코란>을 제시합니다.
코란에서는 구약 성경의 예언자와 예수의
정통성도 인정하지만,
마지막 예언자로서 예수가 아닌
마호메트를 설정합니다.
무슬림(신자)들은 알라의 가르침 속에서 선한 행위와
가난한 자의 자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들은 승려계급도 없고,
예배 의식도 단순하나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하고,
일생에 한번 메카를 순례해야 합니다.
또 정복전쟁이 많아 남성이 부족한 사회 현시에서
일부 다처제를 인정합니다.
일부다처제는 남성중심의 사회관이라기보다는
당시 어린 여성이나 미혼모, 미망인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인구비율과 사회여건을 고려하여
초기에는 4명까지만 둘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교는 6신과 5행의 의무가 있습니다.
6신은 알라, 천사, 코란, 예언자(무하마드), 내세, 예정을
믿어야 함을 말합니다.
이 6신은 크리스트교의 교리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단, 최후의 예언자가 예수가 아닌 무하마드라는 점만 다릅니다.
무하마드를 통해 신이 지상에 내린 최후의 계시는
<복음서>,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코란>입니다.
5행은 신앙고백, 예배, 단식, 희사, 순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이란, 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말을 아랍어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는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아랍어로 드립니다.
단식은 이슬람력으로 라마단 1달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자기 재산 일부를 교단에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재산 기부를 희사라고 합니다.
순례는 경제적 여유가 있을 경우
일생에 한 번 메카를 순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6신과 5행의 의무를 열심히 하는 것을
<지하드>라고 합니다.
지하드는 우리말로 성전이라고 하는데,
<성전>이란 이슬람의 의무를 현실속에서
투쟁적으로 열심히 하는
자기와의 싸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슬람교도가 이슬람의 진리를 부정하는
이교도와 싸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펌)
그간 듣기만 하여 알지 못하는
이슬람에 대해 알아 보았지만...
종교 얘기가 몇페이지의 글로 다 설명될수 없는거죠
게다가 이슬람극단주의(IS)의 폭력성 등의 행위들을 보면
그들의 행동이 교리에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아래사진은 어는 기념품 판매가게에서의
사진 같습니다.
저런 등에 눈 길이 계속 가더군요.
외관만 봐서 어찌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카파도키아의 모습처럼 신비함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색유리를 정교히 끼워 맞춰
구를 형성하고 있어서
거기에 전구를 넣어 점등시키면
형형색색의 색깔들이 빛나는 거죠.
아마 버스 출발 예정시간이 다 돼어
자세히 보지 못한채 사진만 찍고 가게를 나왔던 것 같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것을 얘기하느라
여기까지 오면서 여행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카파도키아 대부분의 지형이
비슷비슷하고 가이드가 해당지점에 도착하면
그곳의 이름을 말하며 안내를 하지만...
보다시피 그곳이 그곳이어서
특별하지 않으면 기억도 잘 하지 못합니다.
이스탐불에서 버스로 12시간을 달려야 도착한다는
이곳 카파도키아, 퍄샤마 계곡을 보고 나면....
다른 곳도 그곳 같게만 보입니다.
그냥 버섯 계곡으로만 보입니다. ㅎ
시간이 많은 개인 여행자는
저런 곳을 걸어 다니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벽에 다녀 온 사륜구동차 오프로드 때도
이 언저리를 돌아다녔을 겁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지만...
풍화작용과 침식이란 자연 작용에 의해
저런 지형이
만들어 졌다니 놀랍습니다.
풍화작용과 침식은 세계 어는 곳이나
존재하는 것인데....
어찌 이곳만이 저 처럼 특별할까요?
중간중간에 피어난 꽃은 살구꽃이라고 했고
또 어떤 것은 야생 아몬드나무라 했습니다.
저런 꽃은 만난 것은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런 꽃이 없었더라면
여행이 얼마나 황량하겠습니까
여름에 기온이 섭시 38도까지
보통 오른다고 하던데...
그때도 달궈진 언덕을 저 처럼
산보할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드넓은 바위산 중간중간에
수없이 뚫려있는 굴집들...
커서 잘 보이는 곳도 있고 숨겨진 곳도
있을 겁니다.
그 곳을 찾는 박해자들도 힘들었겠지만...
그곳에 숨어 사는 은둔자들을 생각하면서
다른 여정을 이어야 겠습니다.
도자기 공방을 거쳐
데린쿠유로 간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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