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 사천 진주 ] 백제보~창선교~진주성 1박2일

재넘어아재 2015. 6. 9. 05:15

 

 

 

 

백제보 창선교 진주성

< 2015. 5. 28.~5. 29.>

  

그날 아침 버스는 일산회사에서 8시 정각에 출발을 하고

한시간 후인 아침 9시에

 

양재역 9번출구 서초구민회관 앞에

정차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양재역에서 타기로 했고

계획대로 그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을 했고 얼마가 지났을까

창밖으로 모를 심기 위해 정리해진 논이 보였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는 버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으니

양해 하며 봐 주시길요. ㅎ

 

 

 

1차 목적지에 얼추 도착한 것 같습니다.

 

 

 

 얼핏 스치는 이정표를 보니 계속 64.5Km를 진행하면

금강하구둑이 나오는 가 봅니다.

 

 

그러는 사이 첫번째 목표 지점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름하여 백제보,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금강에 만들어진 세종보, 공주보와 더불어

그 다음 하류에 만들어진 부여 '백제보'에 도착했습니다.

 

관계자의 안내 속에 전망대에 올랐더니

의외로 여성 안내원이 우리를 맞더니 설명을 시작합니다.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백제보 현황을 줄줄이 설명을 해 나갔습니다.

 

 

'보'가 대체 정확히 무엇일까요?

그래서 검색 해 봐야 하겠습니다.

 

MB가 그토록 고대했던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민심으로

 

4대강사업이라는 축소된 사업 중의 하나인

부여의 백제보에 와 있습니다.

 

 

그 곳엔 금강에 대한 역사가 있었네요.

 

 

암튼 '보'에 대해 검색을 해 봤습니다.

주요뜻은 ①나루

한자로는 '洑' 라 쓰고 나루 복, 스며흐를 복, 보 보로 읽으며

획수 9, 부는 삼수변()이랍니다. 그 뜻은....

 

1. 나루. 대는 . <吳船錄> 노가보

2. 돌아 흐르다. 복류

3. 스며 흐르다. 복류


아마도 보'洑'는 <한국식 한자>라 설명하는 것 같으며..

논밭 물을 대기 위하여 자그마하게 쌓고 흘러가는 물을

잡아 .이라합니다.


요약하면, 하천에서 관개용수를 수로에 끌어 들이려고

둑을 쌓아 만든 저수시설이라 표현돼 있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하여, 더 검색해 봤으니 소개하지요.

[내용]

조선시대 전통적인 농업용수원의 주류는 보에 의한 것이었으며, 1935년까지만 해도 남북한을 통틀어 9만 514개 소의 보가 있었고 여기에서 관개되는 몽리면적은 전 관계면적의 약 50%인 51만 2000㏊에 이르렀다. 따라서 제언(堤堰)에 의한 23만 4000㏊나 양수기 및 기타에 의한 34만 7000㏊보다도 컸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산미증산운동(産米增産運動) 그리고 광복 후의 연이은 미곡증산 시책이 추진됨에 따라 하천상류의 많은 부분이 저수지로 바뀌고 또 기존의 소규모 보도 대형화됨에 따라 그 수는 1995년 말 현재 1만 8425개 소로 줄어들고 몽리면적도 10만 9000㏊에 불과하였다.

수위를 높이고 필요한 수량(水量)을 확보하기 위해 하천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로막아 만드는 것인데 이를 보통 취입보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재래 보는 대부분 하천에 가로로 적당한 간격마다 말목을 박고 물이 고이는 쪽에 긴 통나무들을 가로질러 이에 기대어 돌을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물을 흐르게 하면서 수심을 높이는 게 보통이었으며.

이러한 보들은 홍수가 날 때마다 유실되어 매년 다시 구축하는 것이 통례였으나 최근의 개량보는 대체로 취수문·취입보·토사토(土沙吐)·호안공(護岸工)의 네 가지 구조물로 구성된다. 이 밖에 특수한 경우에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내왕할 수 있는 어제(魚梯), 뗏목이 통과할 수 있는 뗏목길, 배가 내왕할 수 있는 배통로를 설치하기도 하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다. 보의 위치는 관개기간중의 갈수기(渴水期)에도 계획된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보통 하천이 산간부에서 평야부로 넘어가는 중류부가 가장 알맞다. 이런 곳은 대체로 바닥이 견고하고 퇴적층이 적으며 폭이 좁아 공사비가 싸게 든다. 또 보의 위치는 유심(流心)이 취입하고자 하는 하천변에 가깝고 보의 상하류에 영향이 작은 곳이어야 한다. 취수문은 수로에 물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자연취입식과 양안취입식의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자연취입식은 유심부가 하천의 기슭에 접하여 웅덩이와 같이 수심이 충분이 유지되는 곳에 유심과 직각의 방향으로 설치하는 것이며 양안취입식은 유심의 안정이 확실할 경우 취수문을 유심과 직각의 방향으로 양안에 설치하는 것이다.


취입보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취입보에 가깝고 취입보와 직각방향 또는 직각에 가깝게 설치하되 언제나 취수문 앞의 수심이 깊게 되도록하여 계획량을 취수하면서도 취수문으로 토사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취입보는 고정보·가동보·자동보의 세 가지가 있다. 고정보는 콘크리트나 석재로 하천바닥에 고정시켜 보 전체가 움직이지 못하게 축조된 것이고, 가동보는 수문을 위로 올리거나 뉘어서 수위나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자동보는 수위의 변화로 생기는 수압의 작용으로 개폐하게 되어 있는 것인데 대개의 취입보에는 이들의 두 가지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 많다. 즉, 고정보와 가동보 또는 고정보와 자동보의 두 가지를 합쳐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 취입보는 하천과 직각의 일직선방향으로 얽거나 끊는 것이 원칙이나 때로 일부만을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취입보의 구조는 자체의 무게로 수압에 견딜 수 있게 설계하고 홍수 때 보를 넘쳐 흐르는 물의 충격으로 하류측의 바닥이 패여서 보가 파손되는 원인이 되지 않도록 하류측에 사석공(捨石工)이나 목공침상(木工沈床) 또는 콘크리트 블럭 같은 것으로 바닥을 보호해야 한다.

보마루의 표고는 계획취수위보다 10∼15㎝의 여유를 두어야 하는 데 산정공식은 다음과 같다. 보마루표고=계획취수위-{(갈수량-취수량)의 월류수심}+여유고. 토사토(土沙吐)는 수문앞에 퇴적하는 토사를 배제하는 동시에 홍수량의 일부를 방류하기 위한 수문으로 취입구쪽으로 설치하여 유심을 유지하면서 수로 안에 토사가 유입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설이다.


호안공(護岸工)은 보를 축조할 경우 홍수나 격류에 따라 보의 양안이 패이는 것이 보통이므로 필요에 따라 보의 상하류 양안(兩岸)에 사석(捨石) 또는 콘크리트 블럭 등으로 호안공을 구축한다.

현재 남아 있는 보는 대부분 이상과 같은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있으나 과거의 전통적인 보는 위에서 풀이한 것과 같은 구조를 갖추지 않아 대부분 홍수 때 유실되고 다음해 다시 축조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여간 '보'란 것을 이제 이해 할만합니다.



벌써 식사 시간이 다돼 식당으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저는 과거 한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말썽 많은 4대강사업 보다 훨씬 건설적인 생각을 말이죠 )


수계 전체를 잇되 거창하게 운하로 하기 보다는

파이프 라인으로 하류와 상류(저수지 등)를 이어서

네트워크화 시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코 앞에 금강이 흐르는데도

말라 비틀어지는 저 마늘 밭을 보십시오.


수돗물이 각 가정에 공급 되듯이

하류의 물 일부를 상류로 다시 보내는 겁니다.


이 큰 강에서 저쪽 지방 작은 계곡으로 말이죠.

뭐 나중에는 산등성이까지 확대하면 더 좋겠지요.


편상시는 남는 기저전력을 이용하여

물을 순환시켜 주는 작용을 시키는 겁니다.


작은 분수나 스프링쿨러 처럼

공중으로 물을 품게 하면 마치 비기 내리는 것 처럼


공기중의 나쁜 물질을 씻어 내려주고

생명체에 필요한 물과 산소를 공급해 줌과 아울러 산불을 예방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호흡하는 것처럼 아주 조용하게

물이 부족해지는 계곡 등지로 물을 미리 흘려 주는 겁니다.


기상이변으로 가뭄이 심할 때에는

본격적으로 수량을 증가시켜야 겠지요.


거대한 4대강에 물줄기를 관리하는 것보다

작은 계곡이나 저수지의 물을 일정이상으로


유지지켜 주는 것이 제 생각에는 적은 돈이 들 것이고

자연과 국민들에겐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음식점으로 도착했습니다.


이곳 지역의 분의 소개를 받아 예약이 된 것 같은데...

초행인 버스기사님이 좁은 길을 찾느라 힘들어 했네요. ㅎ


백강나루 식당이라는데...

백마강을 이곳에서 백강이라 부른답니다.



암튼 이 식당에서 '우려회'와 '빠가매운탕'을 먹었습니다.

'우려'라는 말을 처음 들었기에 확인해 보았더니...


본래 '웅어'라 칭하는데

이곳 지자체(부여)에서 특화한다는 사유로 '우려'라 부른답니다.





요즘 지자체 단체장들이 선출직이란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고

이로인한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난다지요.


맛있는 식사도 좋지만...

백마강 분위기가 너무좋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방송에서 '웅어'란 말은 들어봤지만...

우려란 고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지난 번에 다녀 온 제천의 청풍호와 상당히

유사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충주호인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제천에선

'청풍호'라 부르잖아요.



강을 보고 있노라니

감자기 '스와니강'이란 미국민요가 생각나네요.

중학교 음악시간에 처음 들었던 곡...


암튼 스마트폰 파노라마 기능이 너무나 강력합니다.

1/2 로 좁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말이죠. ㅎ



다시 원래의 목적지인 진주방향으로 출발합니다.

산 중턱에 종교계의 무슨 대학 같았습니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에 올랐고

중간에 함양휴게소에 정차해 갑니다.



그리고 다시 도착한 곳은

경남 사천에서 남해(남해도)로 건너는 창선교

바닷가의 건물입니다.


창선교 등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관을 방문해

현황 설명과 현장 방문유의사항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안전장구를 갖추고 버스에 올라

현장으로 가는 중 입니다.



다리 위에 올랐습니다.



인도가 있었으며 인도의 포장면이 부스러져 있어

교량 비틀림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닌지 우려했는데...

다행하게도 포장이 불량시공된 것이라 합니다.



언젠가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주변에서도

저런 현상이 발생했었습니다.



차선이 이상히 보였는데...

역시나 가변차선 구간이라 합니다.


신호등으로 차선을 표시하는데...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창선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멋진 사천 앞바다....



보기에도 시원했습니다.



다른 한쪽의 풍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리의 이곳 저곳을 다니느라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지요.



그래서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항구의 어느 식당앞.

잠시 바닷가를 염탑합니다.


충렁이는 바닷가 작은 어선들 옆,

간추려진 주낙을 봅니다.



그 곳 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모습이

그저 정겹습니다.



부부인지 친구인지

아님 서로 모르는 사이인지 모르겠네요. ㅎ



암튼 사천 해변의 일몰이 있었고



풍어를 꿈꾸는 낚시 뭉치들이 사려져 있습니다.



얼추 음식 준비가 됐는가 봅니다. ㅎ



돋나물인가 돌나물인가요? ㅎ


 

바닷바람이 점차 쌀쌀해 집니다.

 

 

 그렇게 사천 바다는 어두워 갔습니다.

 

 

 항구 위의 고깃배는 출렁이는 물결과 함께

 

 

 춤을 췄구요...^^

 

 

 식사후 호텔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내다 본 야경입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밝았지요.

활짝 피어났을 땐 수국의 색상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창선교의 위용이 근사합니다.

창선교는 연속해서 건설된 여러다리가 이어지지요.

몰론 이름도 각기 다르다네요. ^^

 

 

 일행들과 아침 식사후 호텔앞을 거닐었습니다.

 

 

 오늘일정은 부지 탐방과 더물어

서울(분당)에서 진주로 내려온 LH 공사를 방문하는 겁니다.

 

수도권 과밀을 억제하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많은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지요

 

 

  LH공사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한 것인데요

암튼 그 곳의 박물관 중 주택관의 일부를 관람했습니다.

 

기와 한 장이 20Kg을 넘는 것도 있었답니다.

그에 따른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기둥이 굵기도 했었지만...

 

 

벽체도 1미터가 보통이라고 하더이다.

그래야 무게압력을 견딜수 있었겠지요.

 

암튼 저 기와는 남한산성에서 출토된 것이라 합니다.

남한 산성이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데

저런 기와도 한 몫을 했다는군요.

 

 

 아름다운 한옥....

 

 

 LH공사의 박물관에 전신된 옛 포스터 중에는

전국에서 단 두개 뿐만 존재하는 포스터도 있다고 하네요.

 

 

 옛부터 쓰였던

오래된 목공구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콘크리트의 재료인 시멘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궁이에 대한 설명도 있었어요.

 

 

 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전망하고

 

 

 대강당도 구경했습니다.

 

 

 황금느릅나무도 구경하구 진주로 이동합니다.

한국인이 봐야할 50선인가 거기에 포함된다잖아요. ㅎ

 

 

 진주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를 비롯해

몇번 왔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 한 곳 중에 하나입니다.

 

몇년 전에 벚꽃이 필 무렵 왔었으나

진주성은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진주성의 정문이라 하며

복구 된지 얼마 안됐다고 설명합니다.

 

진주시민은 무료이지만 우리같은 관광객은

입장료 2천 원씩을 내야한다네요.

 

암튼, 정문의 천장 문양입니다.

 해설사 선생이 뭐라 설명을 해서리

 

 

한장 다시 찍었는데...설명이 생각나지 않아

쓸수 없음을 서운해 합니다. ㅜㅜ

 

 

 평일(금요일)이래서 그런지

진주성이 아주 평온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손님이 적었습니다.

스마트폰 파노라마 시도...ㅎ

 

성내 동상이 이순신장군이 아니라

충무공 김시민장군이라 합니다.

 

 

임진왜란시 우리나라의 3대첩 중이 하나인 진주대첩이

이곳 진주성에서 이룩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권율장군의 행주대첩이

임란 3대대첩이라 한답니다.

 

 

 고대하던 촉석루입니다.

솔직히 여태 촉성루인줄 알았네요...ㅜㅜ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촉석루가 무슨 뜻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행 중에 들었다면 해설사 선생에게

물어 봤을 텐데요...

 

암튼 이리저리 시간만 빼앗깁니다.

할수 없이 검색해 보았으나 탐탁치 않습니다.

 

 

 한자 중에 '촉'자를 흔하지 않는 글씨였지요.

하여 할수 없이 찾아봅니다.

 

결론적으로 바위가 우거진 곳에 세우진

누각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고 했네요.

 

矗 우거질 촉, [본음] 우거질 축

'① 우거지다 ② 가지런하다 ③ 곧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깐요.



촉석루는 6.25 전쟁때 불탔지만...

역사와 문화재를 사랑하는 진주 시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복원됐다 합니다.



촉성루에서 보는 풍경이 시원했습니다.



강위의 보이는 것은 축제 때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거라더군요.



파노라마를 남겨야지요.



복구에 쓰여진 나무는 소나무이고



 설악산 등지에서 가져온 금강송이라 합니다.



촉석루란 현판이외 다른 글씨들도

이곳 저곳에 걸려 있어 의문이 들었는데......



다 뜻이 있는 것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명사가 촉석루에 올라 쓴 시 같은 것이라네요.



가뭄의 영향으로 강물이 탁한 것 같습니다.

고깃 떼가 모여있네요.



가까운 물은 탁해 보이지만...



멀리 보이는 풍경은 그만인 것 같습니다.



저 바위가 의암이라 합니다.

임진왜란 시기였던 1594년 진주성이 왜군에 함락된후


많은 군사들과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논개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 안고 강물에 투신한 바위....


논개(신안 주씨)가 투신한 후 32년 뒤

그의 의로운 사실이 알려저 바위엔 의암(義巖)이란

글씨가 새겨졌답니다.



그 의로운 바위 주위를 큰 잉어들이

맴돌고 있는 듯 보입니다.



진주성에는 진주박물관을 미롯해

돌아볼 곳이 많으나 없는 시간을 이용해

영정을 만이라도 보기로 합니다.


잘못된 과거의 영정을 버리고 철저한 고증과

논개의 생가지역인 전라도 장수지역의 신안주씨의


생김새를 비롯한 유전자를 연구 분석하여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충남대 교수가 그렸다고 합니다.



그 영정이 바라보고 있는 뜰 앞의 오죽(烏竹)

그 오죽이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대나무는 60~100년에 한번 꽃을 피우는데

꽃이 피고나면 죽는다고 한답니다.


그렇지만 저렇게 꽃이 아직 남아 있고

파릇한 기운이 돋고 있어 신비스럽습니다.



대나무 전체가 죽은 것 같지는 않고

일부는 멀쩡해 보여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대나무 꽃을 다시한번 보세요.

저도 처음 봤습니다. ^^



촉석문을 통해 진주성을 나왔습니다.



얼마전 행사때 쓰였던 조형물이지만...

역동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때가 되어 이동한 곳은

'하연옥'이라는 진주냉면 전문점입니다.



번호표를 받아 20분 넘겨 기다리다

겨우 입실을 할수 있었습니다.


일행들은 6 : 4의 비율로

비빔냉면과 물냉변으로 나뉘어 주분됐는데

저는 물냉면이었습니다.


다음에 가면 비빔냉면도

꼭 먹어 봐야 겠습니다.



그렇게 부여를 경유한 진주까지의

1막 2일 여행을 기록합니다.


^*^

Old Folks at Home (Swanee River)
Mantov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