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여행

[백두산 1] 인천-연길-이도백하

재넘어아재 2013. 8. 23. 14:50

 

 

 

백두산을 여행하며 야생화 찾아보기(1)

2013. 8. 9.

 

2013. 8. 9.부터 8. 14일까지 여행한 백두산,

그 중 첫 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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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5박 6일에 걸쳐 방문코자 합니다.


마치 미지의 밀림 아프리카를 탐험하려 가는듯

오래 전부터 각오를 다져왔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상식만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민족으로서 큰 결례가 아닐까 싶다.


하여 미리 한번 쯤 읽어 공부를 한 다음

방문을 하기로 하자


그러한 정성이 있어야 하늘이 열리고

천지가 드러나 우리게 보여 주리라 믿기에... ^^


< 아래사진은 울컥하며 처음 만난 천지>



백두산 [白頭山]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 성[吉林省]에 걸쳐있는 높이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


중국 지린 성 안투 현[安圖縣] 얼다오바이허 진[二道白河鎭]과의 국경을 이룬다. 해방 당시까지 최고봉은 병사봉(2,744m)으로 측량되었으나, 현재는 장군봉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발고도도 2,750m로 다시 측량되었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의 창바이 산맥[長白山脈]과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화산이다. 화산폭발에 의해서 덮인 부석(경석이라고도 함)이 회백색을 나타내며,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창바이 산[長白山]이라고 하며, 만주어로는 '귀러민산예아린'이라고 부르는데 '귀러민'은 길다(長), '산예'는 희다(白), '아린'은 산을 의미한다.

문헌에 나타난 백두산 최초의 이름은〈산해경 山海經〉에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개마대산(蓋馬大山)·태백산(太白山)·장백산(長白山)·백산(白山)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문헌에서 백두산에 관한 기록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三國遺事〉 기이편에 태백산(太伯山)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나며, 〈고려사〉에도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하여 '백두산'의 명칭이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었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본격적으로 숭상한 것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추정된다. 백두(白頭)라는 이름은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 東國名山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 林下筆記〉 등의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산정이 눈이나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4계절 희게 보여서 희다는 뜻의 '백'(白)자를 취하여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의 범위는 천지 중심의 마그마 활동에 따른 화산암의 분포지로 한정해보면 현재 북한측의 면적은 8,000㎢로 전라북도의 면적(8,052㎢)과 비슷하고 개마고원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중국측의 백두산 화산암의 분포지까지 합하면 3만㎢에 이른다. 또한 해발고도 1,800m까지는 완만한 경사(8~12°)를 나타내어 방패 모양의 순상화산이나, 1,800~2,500m는 급경사로 종 모양의 화산을 이룬다.


백두산의 중앙부에는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2중화산의 외륜산에 해당하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회백색의 부석으로 덮여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에 속하며(최고봉 2,750m의 장군봉), 7개는 중국에 속하고(최고봉 2,741m의 백암봉), 3개의 봉우리는 국경에 걸쳐 있다. 따라서 천지 수면에서 장군봉 꼭대기까지는 600m의 비고로, 백두산 중앙부는 넓고 파란 호수 주변에 비고 약 500m의 회백색 산봉우리들이 둥그렇게 둘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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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웬만큼 예습을 하였으니

본론에 들어 가도록 하자.


백두산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존재하지만..

잘 알다시피 북한은 폐쇄된 국가여서 갈 수가 없다.


따라서, 국교가 수립된 중국을 통해서 가야하는데...

비행기나 선박으로 중국으로 간 다음 육상 교통로를 이용한다.


검색 결과, 여태 주로 인천에서 장춘까지 비행기를 간 다음

육상교통을 이용해 백두산을 갔었나 보다. (적색루트)


그렇지만 근래엔 군용 비행장인 연길공항을 전세기편으로 이용하는

인천공항~ 백두산루트가 개척됐단다. (청색루트)


하여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인천공항~연길간 운행하는 전세기편을 이용키로 하였다.


연길에서부터 백두산까지는 기존의

연길-용정-이도백하-백두산 루트와 동일하다.




더불어 아래 지도를 보면서

다시 설명해 보면


연길에서 붉은색으로 표시한 방향으로

이도백하까지 접근하고


그 곳에서 1박을 한 다음

둘째 날 아침 서파(백두산 서쪽봉우리)를 가고

셋째 날부터 북파(백두산의 북쪽봉우리)를 여행키로 한다.


북파, 서파, 남파해서 뭔소리인가 했더니 한자로 언덕파 자를 써서

중국인들이 그렇게 붙여 놓았나보다

서쪽언덕 북쪽언덕이라 부르자니 뭔가 좀 어색했었다.


그렇지만 위에서 처럼 봉우리 하니까

훨씬 이해가 쉽고 익숙한 용어 같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봉우리로 이해하도록 하자.




다시 한번 설명하면, 적색 실선루트를 통해

백두산 일대(서쪽과 북쪽 봉우리)를 며칠 탐사한 후


파란색 점선 루트를 통해

두만강변을 따라 용정에 도착할 것이고...


마지막 밤은 그곳에서 1박한 다음

엿새 째 되는 날 연길을 거쳐 귀국할 예정이다.



한편, 연길공항의 중국측의 요구로 이용료가 비싸

항공기 비용은 더 든다고 하나


기존까지 장춘을 이용하던 것 보다 이동 시간이 단축되어

백두산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단다.



아래 그림은 백두산 천지 주변이며 앞으로 여행할 곳을

대략 표기한 것이다.


백두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며

옛날 처럼 함부로 다닐수 없게 철저한 통제와 관리가 된단다.


워낙 광활한 곳이고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제한적이며

그 길에는 산문(山門)을 두어 일반차량은 모두 그곳에 주차를 하여야 하고


정부에서 운행하는 전용차량을 이용하여야만 한다.

따라고 주차료와 입장료 그리고 차량이용료를 지불하여야 하는데.


한사람마다 입장료 125위안(한화 25,000원 정도)과

차량비 85위안(한화 17,000원)을 지불하여야 한다.


그런데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백두산에

입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명절 때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듯이 한참동안 줄을 서서

차표를 사야하고 표가 확보되어도 줄지어 기다리다 입장하여야 하며


스키장 곤돌라 기다리는 길 보다 10배는 더 길다란

지그제그 루트를 인내하여야 버스나 승합차에 오를 수 있단다.


그런 백두산을 서파 부근 1일

북파 부근 3일을 계획대로 얼추 여행하였다.



이런 과정에 대하여

첫 날부터 귀국할 때까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지난 밤까지 싸놓은 여행용 가방과

카메라를 비롯해 준비한 등짐(배낭)을 메고 공항행 리무진을 탔다.


한시간 후에 도착한 인천공항,

함께 여행할 야생화클럽 회원님들을 만났다.


함께 여행할 분들은 이번여행을 추진한 산악인님을 비롯해

나를 포함하여 11명이다.

 

함께 신청하였던 옆지기를 비롯해 몇명이 중도하차하고

막판까지 포기자가 늘어났지만...

여행이 계획대로 진행돼 다행스럽다.

 

당초 예정시기 보다 다소 늦어지긴 했으나

오히려 날씨가 좋은 시기를 택했다는 후문이다.

 

인원이 계획보다 줄어

각자의 부담은 더 될 것으로예상됐지만...

 

날씨가 좋아 천지를 볼수 있기를

모두 간절히 기원하였다.

 

그렇게 간절한 사람들을 뵈었는데 모두 초면,

클럽엔 햇병아리였기에 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인지라

인사를 나눈 뒤 급작하고 자연스럽게... 친근한 한 가족 처럼 되었다.

 

그런후, 연길행 여객기를 타기위해 3층 출국장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를 맞으려고 준비하는 멋진 항공기...ㅎ

저 때의 시각이 아침 아홉시

 

 

그곳에는 우리 클럽회원을 비롯한

많은 여행객들이 백두산을 가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 특별한 것은

존경하는 고건 전 국무총리님께서

 

연변대학에 강의를 하기 위해

우리와 한 비행기로 함께 출국하는 바람에

 

예정에 있었던 것 처럼

우리 클럽회원들을 격려해 주시게 되었고...


클럽을 대표하여

회원님과 기념촬영까지 흔쾌히 응해 주셨다.^^

 

아무래도 천지를 오르려는 우리 횐님들은

운이 좋을 것 같았다.

 

대체적으로 유명한 고산 정상의 경우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든지 하는 속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융플라우나 황산 등을 가 보았지만

모두 날씨가 좋았는지 모두 잘 보았던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번의 경우에도

천지를 못 본다고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

 

일기가 불순하여 안보이면

그 나름 대로...괜찮을 것 같았다.ㅎ

 

옆지기는 날씨는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에

10분 정도만 기다리면 하늘이 반드시 열릴 거란다.

(백두산 경험자여서...ㅎ)

 

 

두 시간을 날아갔다.

물론 비행기에서 기내식 조반을 먹으며....

 

연길 공항은 활주로가 작아

대형여객기가 투입되지 않고 737기종이 투입된다고 한다.

 

국외여행을 하다보면 보통 비행기의 좌석은

좌측3열 우측3열 그리고 가운데 좌석이 배치되던데...

 

우리가 탄 비행기는

중간에 배치된 좌석이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탄 배행기는

사뿐히 날아 연길 공항에 안전히 도착하였다.

 

그런데 틈틈이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는 나,

비행기에서 내려 검색대까지 가면서 몇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공안요원이 그 장면을 보았는지

카메라를 점검하자하면서 사진을 지울것을 요구하였다.

별거 없었는데...

 

그러면서 손가락을 가르키는 곳을 보니...

촬영금지 표지판이 있었다...ㅜㅜ

현지에 갈 때는 미리 참고해야 할 듯.

 

연길 공항에 도착한 현지 시각은 11시 10분경

한국 시각 보다 한 시간 늦다.

 

 

약속된 현지 가이드님이 나와 주셨다.

물론 버스와 운전기사도 함께...

 

수고했다면서 방금 딴듯한 싱싱한 오이가

가득한 박스를 풀어 나누어 주시며 인사 나누는 동안

버스는 연길 시내를 지난다.

 

 

우리 동포(조선족)가 많이 모여 살기 때문에

한글 간판이 많음을 알수 있었다.

 

 

우리 동포들은 2개국어가 능통할거 아녀?

음 고거 쪼께 괜찮네...ㅎ

 

 

가이드 선생은 우리와 비슷한 나이대였는데...

말소리와 억양으로 보아

그 조상의 고향이 이북이었나 싶었다.

 

 

그의 말을 빌면...

지금 동포들이 중국인들에게 꿀리지 않고 당당한 것은

 

순전히 남한이 발전하여 잘 살기 때문으로...

만일 남한이 북한과 같다면 괄시를 받을게 뻔하단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80년대를 연상시키는 그곳...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벌써 용정시내를 지난다.

가이드가 사는 도시라 했고 마지막 전날 밤

 

이 도시에 도착해

만찬후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될 것이며

 

 

마지막날 일송정에 올라

혜란강을 내려다 보며 과거 한반도에서 살다가

만주로 이주한 한민족들의 터전을 살피고

 

용정의 야생화를 탐사한 다음

다시 연길로 향해 귀국할 예정이란다.

 

 

암튼 가이드는 이북 사람들 특유의 딱딱함이 베어 있으나

솔직하고 진솔함이 가득차 보였다.

 

용정을 벗어나자 다시 초원이었고

마을가까이 옥수수밭, 콩밭, 간혹 과수원이 보였다.

마을의 지붕은 빨간색...ㅎ

 

 

도롯가 언덕을 깍아낸 구간,

무너지지 않게 정리한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화룡까지 100리정도 남았다는 이정표

도로의 이정표는 아주 이따끔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정표를 세우는 장소가

일정한 거리 등으로 정해져 있을성 싶다.

 

 

가끔 보이는 시골마을이다.

기와나 스레트 같은 종류인데 새로 칠하였는지

깨끗하였다.

 

 

이따끔 흙벽이 보이긴 하였으나

대부분 시멘트로 지은 것 같았으며 의외로 빈집들이 제법 보였다.

 

 

두도 수금소,

아마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비슷한 것 같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용정과 화룡사이의 적색도로 옆 마을을 지나고 있다.

 

 

도로 요금소를 나와 계속 화룡시를 향해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벼가 심겨진 논이 보인다.

 

그 논에 세워진 목제 전봇대가

먼 향수를 부른다.

 

 

벼논이 많은가 싶더니 옥수수밭이 전개된다.

우리나라가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주택을 개량하는 것과 같이

 

이곳에서도 개량이 많다고 한다.

화룡까지 19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또다른 마을을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느마을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까 마을의 지붕과는 색깔이 다르게

잿빛 기와집 일색, 아까와 다른 민족이 사는 마을일까?

 

 

주유소에 또 들렀다.

디젤 1리터에 7위안 이고, 85리터를 넣어 전체 금액이 600위안

 

우리나라 보다 석유값이

20% 정도 저렴하다는 계산이다.

 

 

잠시후 정차하더니

그곳에서 생산된 참외(개구리참외)를 전달해 온다.

 

옛적 어릴때를 상기하며

우적우적 씹어 먹었는데 맛은 별루 없었지만...

약간의 허기는 달랠 수 있었다.

 

화룡이 10키로 남짓남았다는 이정표기 보이고

주변을 흐르는 시내가 보였다.

 

 

가도가도 비슷한 광경이다.

도롯가의 시골풍경과 싱그러운 농촌의 들녘들....

 

 

그렇게 한동안 또 달렸다.

운전기사 한분이 계속 운전하셨고,

 

그 분은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보아

아마 한족이었던 것 같다.

냇가도 지나고 기찻길을 넘기도 했다.

 

 

길 가의 신호등엔 태양전지가 설치돼 있는듯..

먼 산 위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풍경을 본다.

 

현지시간 오후 두시 10분을 지나고 있어

점심을 먹고 가겠느냐 하는 가이드 질문이 있었으나

 

기내식을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오이와 참외를 먹었으니 가능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산문가까이 가서 식사를 하자는 의견이었다.

 

 

가이드와 회원 간의 대화 중에

"산문"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였다.

 

그 경우 산문을 다른 분들은 다 아는 느낌이었으며

나는 산문이라는 지명이 있는 줄 알았었다.

 

그렇지만 한참 후에나

지명이 아니라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문은 앞서 예습을 하며 잠시 설명을 하였지만...

다시 반복해 설명해 보기로 한다.

 

백두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아무나 함부로 다닐수 있게 하면 훼손할 우려가 있다.


워낙 광활한 곳이기에

철저한 통제가 더옥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백두산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제한하게 됐는데 그 길에는 산문(山門)이란 대형주차장과


출입시설(매표소, 승차장, 매정, 화장실 등)을 마련하고

관광객이 타고 온 일반차량은 모두 그곳에 주차를 하여야 하며


정부에서 운행하는 전용차량 만을

이용하게 하고 있는 터미널 성격의 장소이다.


이와 같은 산문은 서파입구와 북파인근,

두 군데에 있는 것으로 기억하며, 관공서 운용시간이 있듯이

상시 운영되는 것이 아닌 듯 했다.



한편 입장을 허락하는 시각은 형편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되는 듯하며


이제 맞춰 관광객을 접근시키고 출입시키느냐에 따라

가이드의 능력이 구별된다는 설명도 있었다.


오늘은 산문 근처까지 접근해 가는 것이

목표 일정이다.


그 산문 가까이에 숙소를 정하고

산문이 열리는 시각에 우선하여 출입해야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거다.



가도가도 옥수수밭과 콩밭 일색이다.

어디가나 비슷한 풍경으로 진력이 날만도 하지만...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없는듯



이따끔 밭 둑 같은 곳에 하얀 탑 같은게 보였는데...

일종의 우리나라의 충혼탑 같은 거란다.



차도 쉬고 우리도 다리운동이 필요한 상황이며

민생고를 해결하여야 할 판이다.


그런 곳에 정차했다.

가이드는 20분 시간을 주겠다고....


모두들 카메라들 든채 내렸고

일부는 화장실로...일부는 저기 계단으로 올라갔다.



말로만 듣던 전통적인 중국식 화장실을 본다.

중국인들은 화장실을 위생간이라 쓰는 듯. ㅎ



계단을 따라 오르며

남들 하는데로 따라해 본다.


나는 꽃보다 풍경이 더 익숙해서

조금은 성미에 맞지 않지만...어쩌랴...ㅜㅜ



호기심을 유발하는 곳으로 가보려 한다.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간 저쪽으로....


그곳을 따라 갔더니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가 하면

그 윗 길을 잠시 오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푯말이 보였고

그 곳에는 산삼인지 장뇌삼인지가 제배되고 있는듯 했다.



장사꾼인지 가이드인지 삼을 잡고

무슨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이드는 절대 사지 말라고 미리 귀뜸을 했다.

현혹되면 속는 것이라고....


일반 여행객은 가이드를 한번 보면 끝이지만....

우리 가이드는 우리 회원이고 계속 연을 맺어야 하는 인연이어서

불미스런 일은 방지할 책무가 있겠다.



그래서 우리 회원님들은 사진에만

열중이다.



그 곳은 여객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휴게소 였으며


화장실을 비롯해 부근의 특산품이라는 산삼 등 기념품 매장이 있었다.

물론 우리가 살만 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20분이 되어 다시 버스에 승차 하였고

역시 다시 창밖을 내다 본다.



그곳은 온통 밀림 같이 산림이 우거져 있다.

그렇지만 백두산 탐사를 마치고 용정으로 향하면서 보겠지만...


두만강 건너 이북 측을 보면 벌거숭이 산이라 한다.

땔감이 없어 나무를 베기도 하였겠지만...


인민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 냈다는 얘기를 듣는 사이


버스가 정차했다.

가이드는 꽃이 보인다며 잠시 찍고 가잡신다.



내가 보기에는 별 것 없어 보이는뎅 ㅎㅎ



그렇지만 우리 일행 들 열심히 찍는다.



이거 한국에도 흔한 종류 같은데...ㅎ



몇번을 가다가 서고...가다가 서고...



저 장소가 어디인지 기록하고 싶지만....

솔직히 알 수가 없어 장소를 남기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높은 백두산 북쪽이 이리 더운데...

한국은 더 더울것 같다.



공직자인 딸아이의 얘기를 빌면

에어콘을 전혀 가동치 않아 찜질방 수준이라 한다.


얘야~ 내가 공무원하던 초기 시절엔 선풍기조차 없었다.

그래도 지금 너는 선풍기 앞에 있지 않느냐고...


위안삼아 얘기를 해 줬는데...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생각을 하며 더위를 느꼈다. ㅎ



다시 버스에 올라 한참 진행한다.

자그마한 도시에 접어 들었다.


우리나라의 철물점이나 건재상 같은 상점이 보였으며

상점 앞에 탁자 위에 진열된 물건을 보니


옛적 우리나라 연탄가스 배출기 같은 것이였다.

유심히 살폈더니 주변 굴뚝 위에 동일한 것이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그렇지만 길 가에 연탄재가 보이지 않는게 이상했으나

어느마을인가 지날 때 보니


글뚝에서 저녁을 준비하는지 아니면 군불을 피우는지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아

나무를 땔감으로 이용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천에서 연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백두산 입구에서 폭포식당을 운영했다는 동포와 얘기를 한적이 있다.


그분 얘기 중에 한국사람들은 매우 순진하며

중국인들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건이나 돈도 뺏기고, 겁을 주거나 사기를 치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에 분개한단다.


사리에 어긋나면 중국인들과 당당히 맞서라는 주문이 있었다.

잘못이 있다면 두두려 패도 괜찮단다.


다양한 얘기 중에... 조선족이 대부분이던 연변지역이

한족들이 점차 늘어나 걱정이란다.


조선족이 힘들여 일궈놓은 옥토들이

중국인들에 의해 점차 잠식을 당한단다.


그런 연변 등의 지역에서 주택을 보고 조선족의 집인지

아니면 다른 한족의 집인지 구별하는 방법이 있단다.


그분의 말을 빌면 아래 사진에서 처럼

용마루 양쪽에 환기구(구멍)이 뚤려있으면 우리 조선족이 사는집이고

환기구가 없으면 한족의 집으로 보면 틀림이 없단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저 환기구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물어 보았더니 알지못한다고 답변하였다.

어? 우리가이드가 한족인가? ㅎㅎㅎ



암튼 그렇다는 얘기...ㅎㅎ

아마도 저 환기구는 난방방식이 온돌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 지는 듯이 폭포식당 주인의 뉘앙스였다.


소도시 송강시내 간판은 한자와 한글이 혼재해 있었다.

거리에 앉아있는 이들도 조선족과 한족이 섞여 있겠지?



지난번 중국을 여행하면서

중국에는 56개 이던가? 암튼 여러 소수민족이 있으며

한족이 제일 많은 가운데


조선족은 아주 적은인구에 속한다는 얘기와,

그렇지만 조선족은 우수하고 능력이 많은 것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우리의 혈육이 이리 춥고 먼 곳에까지

진출하여 뿌리를 내린 덕분에...별 어려움 없이 여행하는게 아닐까


차를 세워지고 가이드와 산악인님이 내리더니

시원한 음료수가 배달되었다.

빙홍차라고 써 있는 것 같다. 땡큐~~^^



그러고, 한참 또 갔다.

이젠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어서 그런지...


가도가도 비슷한 풍경이어서 인지

한동안 졸았나 보다.


버스가 정차하여 눈을 떴다.

정차하면 카메라를 들고 내리는 게 훈련이 되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떨어져 조금 으슥한데로 이동하여

배출을 하는거다...ㅋㅋ


배스가 정차한 곳은 벌꿀을 치는 농부가 있었다.

아니 관광객을 상대로 꿀파는 노점이 있었다.


왠지 불결해 보였는데 품질이 좋고 저렴해서인지

어떤 분은 상당량의 꿀을 구입하였다.


2리터 들이 플라스틱 용기로

5~6개쯤 구입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박스 포장해

한국으로 가져갈 예정이란다.


어릴 떼 우리집에서 꿀벌을 쳤었다.

20여통 가까이 됐었기에 꿀은 웬만큼 알기도 하고 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꿀에 영 관심이 가지 않지만...

관심 가는 이가 제법 되는 듯 했다.



잠시후 다시 이동을 했다.

가는 길의 하늘은 파랗고... 흰구름이 아름다워 찰칵...



여태까지는 비교적 백두산과 떨어진 곳을 여행하였고

이도백하가 가까워 지면서 고도가 높아진 것 같다.


농사가 잘 안되는지 농토와 작물이 보이지 않고

우거진 수풀이 보인다.


커다란 자작나무들,

멋지고 키큰 적송(나중에 가이드는 장백송이라 부른다고 했다)들...

그 아래 야트막한 집들과 기찻길이 보였다.



이도백하란 곳이

백두산과 가장 근접한 도시 인듯...


이곳을 거점으로

서파도 가고 북파로도 가는 갑다.



그렇지만 앞서 설명한 산문까지는

몇십키로미터를 더 가야 하는 가 보다.


백두산이 관광지로 각광을 받아 교통량이

급증하고 있으나 도로를 넓히지 못한단다.


가이드 얘기를 빌면 유네스코 자연구역의 훼손 우려로

도로 건설도 엄격히 통제된다고 한다.



지도를 확인 했더니 직진을 했나보다

로수라는 곳은 무송이란 도시방향인 듯하다.


저런 이정표를 중간중간 찍는 것은

지금처럼 여행기를 쓸때 참고할까하여 촬영을 했지만...


나조차 잘 알지 못하는 이국땅이기에

그냥 올리니 이해하시기를....ㅎ



암튼 저 지점에서 좌회전을 하진 않고

직진을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ㅜㅜ


그렇지만 커다란 자작나무숲이 어스름 속에

보기 좋았으며....



곧 석양이 질 것 같은

저녁 하늘 빛과 도시근교 농지의 모습이 이채로왔다.



영화 닥터지비고가 생각났다.

라라와 머물던 집 그리고 단풍 든 자작나무 들


그러면서 창밖의 하늘을 보면서

구름사이와 산너머 비추는 빛줄기가 멋지게 생각했다.


그럴즈음 앞 좌석에서 "멧돼지다"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을 보라는 뜻에서 운전자는 서행을 했지만


옆에 두었던 카메라의 전원을 켜서

간신히 한장을 찍었지만 별로 선명치 않다.


그리고 잠시후...

높고 긴 고가를 지나고 있을 무렵



아랫편 마을 위로 노을이 시작되었고.

몇번의 촬영 끝에 중국에서의 첫 날 황혼을 흔들림 없이 담았다.

좌측의 빛나는 것은 강물인듯...



저녁노을이 지면...그 다음 날

날씨가 좋기 마련이라 애기하는 가이드...


내일 백두산 천지가 열릴 가능성이 많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넌즈시 선사하였다.


그렇게 산문가까이 예약된 호텔앞에 도착하였고

첫 만찬을 맛있게 들었다.


그날 술꾼이 몇 명있었던 기억...

중국에 가면 중국술을 먹어야지 왜 소주를 찾는지...ㅎㅎㅎ



그리고 천사호텔(天賜)을 배정받아 입실했는데

나는 에스맨님과 한방을 쓰기로 했으며 인자하신 분이었다.


조용한 성품에 술을 드시지 않는것이

나와 비슷했는데


그러한 면에서 짝지워 준 것이

아닌가 싶다. 감사~^^



그렇게 백두산 여행의

첫 밤을 맞았다.


<밀린 숙제로 후기가 늦는 아쉬움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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