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여행기

[ 중국 ] 운남성 샹그릴라 송찬림사

재넘어아재 2012. 3. 30. 13:46

 

 

샹그릴라 송찬림사(松贊林寺)

 

2012년 3월 20일 화요일,

곤명 사쿠라호텔을 나서 곤명공항으로 출발을 했다.

 

윤기환선생이 준 장미와

헤어지기 앞서 새 물로 갈아주고 숙소에 잘 모셔 두었다.

 

 

어젯밤 운남영상가무쇼를 보고서

오늘 곤명을 떠나야 하기에 짐을 싸느라 잠을 설쳤는지

공항가는 버스에서 내내 졸았나 보다.


공명공항출발 중전(中甸, 샹그릴라)행 MU5931편의 출발시각은 오전10시 40분

그렇지만 수속을 위해 일찍 도착해야만 했다.


인구 4,700만 명의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

 400여만 명이 사는 도시의 공항으로 오래돼 낡았지만 아기자기했다.


공항엔 여러가지 식품이나 기념품이 전시돼 있었는데

관심이 갈 정도의 물품은 없었다.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품과 공산품 들



그래도 둘러보는 재미를 느껴보자

우리나라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정겨운 기분..ㅎㅎ


우리를 비롯한 여행객들은 대부분 큰 가방을 사쿠라 호텔에 보관하고

간소한 짐만 휴대하였기에 화물은 적었다.


어차피 관광후엔 곤명으로 다시 돌아와

사쿠라호텔에 다시 투숙하고, 구향동굴과 석립을 관광할 예정이기에

거추장스런 것은 모두 보관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중국간도 중국내 국내선도 모두

동방항공 편이 예약돼 있었다.


우리나라 국적기라면 더 편리하고 서비스 받기도 쉬웠겠지만...

중국의 항공편이라 믿음이 덜 갔다.


여행사인 하나투어에서

항공편 예약에 원할치 않았었나 보다.

늦게 여행을 신청하였기 때문이었는지


아내는 항공기의 좌석이 비지니스 석으로 예약 됐으니

편리한 방법으로 이용하라는 예행사의 주문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좌석은

팀내 다른 어른 분께 양보해서 마음이 편했다.



공항 내에는

운남지역에서 나는 보석류(비취)와



과일 들이 많았다

어느 자매님이 그러신다.

이상하게 생긴, 가운데 과일을 구입하여 먹어봤는데....


영~ 꽝이더라 하시며... 먹는게 아니라 보는 용도 같다고 하셨다.

한자로 불수(부처님 손)이라고...



운남성의 특산품인 보이차

보이차 종류는 진품과 명품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함부로 살게 아니라고 귀뜸하는 가이드



기다리다 탑승하기 시작했다.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완행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기분이 잠시 들었다...ㅎ



아담한 곤명공항



공항 한편엔 커다란 헬리콥터도 보였다.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것인지 화물기 인지 모를 일이다.



탑승하는 동안 다른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이륙했다.

표식을 보니 동방항공은 아니다.



중국엔 항공사가 다양한 듯 했는데.

동방항공 말고도 남방항공과 그밖의 여러항공사가 보였다.



정시에 이륙을 하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항권권 구입시 창쪽 좌석을 부탁하였는데

다행히 항공사가 들어 주었다. ^^


그렇지만 유리창이 깨끗하지 못해 조금은 아쉽다. ㅎ



또한 날개 위였기에 전망이 썩 좋지는 않았고

날씨가 황사낀 것 처럼 연무에 싸여 있는 상태여서 비가 오지 않는데도

쾌청하진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륙후, 저 아래 쪽 산하를 내다 보면서 간다.

옥룡설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밖을 주시하였다.

산을 개간했는지 붉은 흙이 드러나 보였다.



20여분 갔을 때 큰 호수도 보였다.

그때의 현지 시각이 11시 5분



설산이 나타난 것은

이륙후 35분 정도 지난.. 11시 15분경였다.


아마 샹그릴라 공항은 서울-제주보다 더 먼거리에 있나 보다.

흰 눈 보다 바위의 색깔이 왜 회색인지 신기하였다.



샹그릴라와 여강고성은

TV방송을 시청하였던 게 기화가 돼 관심을 가졌었으며

이번 여행 신청 전에도 검색을 하였는데....


그때 항공기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보았고

나도 그런 광경을 직접 보고 싶어 창가를 주문한 것이다.


먼거리의 설산을 망원으로 당겨보니

사진이 그럴 듯 했다.


저 산들 중에 제일 높은 산이 옥룡설산이라 하던데...

정확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설산 지역도 광활하여 한참 동안 비행했기에

어떤 봉우리가 제일 높은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도토리 키재는 기분..ㅎ



투박하고 거친 회색 암석에

만년설이 있다는 것과 실제 히말라야 산맥의 하나라는 것을...


그리고 적도와 가깝지만 높아서 흰눈이 쌓여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설산을 내려다 볼 뿐이다.



우리가 여행할 곳은 워낙 높은 곳 이기에

고작 몇백미터의 고도에서 사는 한국사람들은

처음에 걱정을 많이 하기 마련일 거다.


그래서 산소통을 구입한다거나

고산병 예방약을 먹는 등 부산을 떨지만...



일반적으로 인체가 적응하므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불필요하게 약을 먹거나

산소통을 휴대까지 할 필요가 없단다.


다만 건강치 못한 환자 등은 예외, ^^


적응하는 방법은 가능하면 천천히 걷고

숨이 차고 지친다 싶으면 잠시 서서 쉬면

이내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 설산은 가까이 보이지만

망원렌즈로 당겨 찍은 것이다.


비행기에서 뵈는 저 건너 설산은

실제론 더 멀고 몇십키로까지 이르는 곳일 것이다.


어쩌면 중국이 아닌 다른나라(네팔 뭐 그런나라?)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보았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은

여강을 거쳐 옥룡설산에 다녀 온 이후 한참만이다.


하늘에서 보이는 저 설산들은

옥룡설산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곳이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실제 갔던 옥룡설산은

저렇게 광활해 보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중전공항 가까이 접근을 했는지 비행기가 고도를 점차 낮추었다.

작은 도시의 집들과 호수가 보일 쯤, 시각은 11시 25분



작은 도시를 지나고



마을을 건넜다.



고도가 더 낮아 지는 상태다

가옥들이 점차 크게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지 틀이 세워 진 것을 보고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곡식을 널어 말리기 위한 건조대라고 들었다.



방목되는 가축들도 보이고....



공항에 착륙한 것은 이륙한지 한 시간만이다.



공항의 높이는 해발 3.400미터,

그래서 그런지 빨리 움직이면 금세 숨이차다.



중전공항을 나선 것은

오전 11시 50분을 막 지나서 였다.



과거엔 중전공항이라 불렀지만

요즘은 샹그릴라 공항이라고 고쳐 부른단다.



샹그릴라를 여행할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곤명에서의 버스는 출입문이 가운데 하나 더 있어서 편리했는데....

이번 버스는 출입이 불편했다.



새로운 가이드 최정운 선생이다.

처음 본 인상은 이제 갓 가이드 세계에 입문하여

떼가 묻지 않은 것 같고...


조선족의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같은 민족으로써 믿음이 갔으며...진득한 맛을 풍겼다. 


암튼 인사를 하며

샹그릴라와 여강여행 중의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첫째, 자외선에 주의하라는 당부다.

챙모자와 선그라스..선크림을 사용하라는...


둘째,  고산병에 주의하라는 당부,

방법은 지치면 잠시 쉬라는 요령을 가르친다.


셋째, 감기에 주의하라는 얘기였다.


그때 시각이 11시 59분 이었고

점심식사를 위해 예약된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납골당 같은 것이 산 아래 쪽에 설치된 것이 보였다.

하지만 물어 본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까먹고 말았다.


곤명이나 샹그릴라에서

우리나라의 산소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같은 동양이지만 매장문화가 확연히 다른듯 하다.



바람이 심해서 인지

지붕에 돌을 얹어 놓았다.



공항에서 몇분을 운행해 식당에 도착했다.



차가 나오고



윤기환 가이드가 보내준 김치도 동원됐다.



그리고, 이 지역 맥주를 시켰다.

브라보~~~^^



한국 맥주의 일반적인 알콜함량은 5% 정도지만

중국의 맥주들은 10% 내외가 보통인 듯 했다.



식사를 마칠쯤의 시각이다.



오늘과 내일 여정에서

마실 생수를 충분히 싣고 출발이다.



샹그릴라 시내의 한 호텔이란다.

이곳 보다 여강이란 도시의 호텔들이 좋은데...

그 이유는 근래 여강지역의 지진으로 다시 지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의 호텔에 들지 않고

여강으로 가서 여장을 풀 계획이란다.


물론 여강까지 가기 전에

송찬림사와 호도협을 여행하면서 말이다.



샹그릴라 시내 풍경이다.



고산지대여서 대지가 매마르고

척박한 것으로 보였다.


산 중에 무슨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그 그림이 나시족의 상형문자로 샹그릴라 라고 표기해 놓은 것이란다.


샹그릴라는 마음속의 해와 달,

즉 지상낙원을 뜻하는 말이란다.



버스안의 작은 금빛 장식

운전기사가 경전을 읽지 못하는 대신

수시로 돌려주는지 모르겠다. ㅎ


나중에 발견한 사실이지만

버스를 오르내리면서 운전기사가 돌려주는 줄 예상했었는데...

건전지에 의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ㅜㅜ



곤명의 서산에서 처럼

우리 버스는 주차장에 세워 두고 입장권을 구입한다.



그런 다음 어떤 건물로 들어가

송찬림사를 관광하는 전용버스를 타야 한단다.



잠시 머물며 기다리다 도착한 전용버스에 올랐다.

좌석도 부족한데다 다른팀과 합석을 해야했기에

서서가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비포장 길을 흔들리며 달려서 도착한 곳은

송찬림사 앞 광장,


비포장에 울퉁불퉁하여, 갓 개교한 초등학교 운동장 같았다.

거기서 본 송찬림사가 있는 마을



광광지를 개발하는 것인지...

아님 문화재를 수리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의 여느 도시처럼

새로 짓거나 보수하는 건축물이 여기 저기에 보였다.



제일 높은 곳의 건물이 송찬림사

지붕이 금빛이다.



운남성의 28개 소수민족이 있으며

라마란 스님을 말하는 것이란다.


티벳에는 7가지의 불교 종류가 있는데...

백교, 흑교, 화고, 청교, 본교, 황교, 홍교이다.


이 중 황교가 달라이라마가 속한 불교이며,

티벳인 80%가 여기에 속한다는 설명이다.



저 사원 역시 황교라는 설명



옛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자전거를 보고 반가웠다.

아마 지금도 생산이 하지 않을까 짐작 되었다.



송찬림사 중심부



일시에 건축된 것이 아니다.

조금씩 차츰 확장이 됐기 때문에


건축양식이나 모습이 조금씩 다른 것도 같지만

비교적 조화롭게 관리가 되는 듯했다.



대부분의 예산은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따라 국비지원이 많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개인이 상업에도 눈을 떠 장사도 하고 그런다는...



부족들이 관광활성화를 위해

민속을 소개하고 알리는 노력도 병행하는 듯...



샹그릴라 지역에는 나시족이 많은데

 소수민족 중에서 나시족은 두번째 우수한 민족이라 한다.

가장 우수한 민족은 조선족이라는...^^


우수한 민족이란 여러 가지로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역사와 전통, 문화와 지능지수 등을 종합하는데..


그중에서 중요한 것이 언어와 문자라고 한다.

대부분의 민족들은 문자가 없이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지만


나시족과 조선족은 고유한 언어와 문자를 발전시켜 왔다는것,

그중에 한글이 최고아냐는 것

최정운 가이드...띵호와~~~^^


조선족 남자로써 나시족의 남자가 부러운 점은 무얼까?

여자들이 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저 처럼 책이나 보고 논다는 것...



이번 여행의 주된 관광지는 여강이라고 한다.

송찬림사는 여강까지 가는 길 도중에 있고

독특하기에 보는 것이라고...


몇발자국 걸으면 호흡이 가빠오는 고도에 있는 송찬림사

몇백개의 계단과 길을 걸어야 한다.


잠시 급히 걸으면 약간 어지러워지고 숨이 차오른다.

고산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데...


그렇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잠시 몇초 쉬면 금세 괜찮아 지기에...^^



벽의 색깔은 아마 저 곳 흙의 색에 의한 것 같다.

어떤 것은 흙 벽돌이지만, 어떤 것은 마치 시멘트로 만든 블럭이었으며

어떤 것은 거기에다 흙칠을 한 것 처럼 보였다.



찬란한 송찬림사

가을날씨 같은 하늘에 흰구름이 살짝 지난다.

저 위로 올라가자.



제임스 힐턴의 소설"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에 나오는

이상향의 지역이 샹그릴라-중전 지역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샹그릴라 라고 이름을 고쳐부르고 있는데...

인도 어느지역에서도 그리 해서 관광객을 유치에 도움이 된단다.


소설 속에서 이상향의 지역에서는 사람이 늙지 않고

갈등고 싸움이 없는 곳으로 히말라야 산맥 어디쯤일거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1997년 중국정부에서 이를 발견했다고

공식발표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돼 운남성 서북부 중전을

샹그릴라로 개명을 하여 불리우게 된 것이라고...



송찬림사는 1697년 지어졌으며,

운남 티벳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이다.


송찬림사의 松은 티벳어로 숫자 "3"을

贊은 부처를, 林은 낙원을 뜻한다고 한다.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이 이 사원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며

휘황찬란한 금빛 지붕이 인상적이다.


사원의 면적은 약 10만 평에 이르고,

불전(佛殿) 내에는 5세와 7세 달라이라마 동상이 있으며,

그밖에도 수많은 불상과 영탑 등이 있다.



송찬림사 오르는 길가 어느 건축 대문입구의 모습

나무를 조각하고 색상을 칠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단조로은 우리나라에 여느 대문들에 비해

정성을 많이 들였다고 볼수 있다.



가이드 최정운 선생은

우리의 속도를 안배하며 여러 설명을 계속하고 있다.



급한 계단 옆에 흙별돌 집을 짓고 있었다.

건장한 남자들은 꼭대기 층에서 대기하며

 여인들이 날라온 흙을 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는 힘이 별루 들지 않는 일을 맡고

여자는 흙을 등짐에 지고 난간의 계단을 힘들게 걸어 올라 간다.


그런 여자가 가까이 와도 도와주지 않는 듯..에고

편하게 앉아서 연신 담배나 피우고 있으면서리.

갱상도 남자들은 저리가라다..ㅋ



그런 가운데

내색하지 않고 잠시 쉬고 있는 여인들.



품삯을 받으면서 일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저들은 사원 일을 도와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으며

사후에 그 보은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단다.



우리도 잠시 쉬는데

저 멀리 설산이 보였다.



일하는 어떤 여인들은

아이를 업고 나왔나 보다.


일도 하고 아이까지 보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노 ㅉㅉ



아이는 엄마의 고통을 모르고

사진찍는 나를 처다 보는 듯...방가방가~~^^



하늘 위를 나는 저 새가

까마귀인지 독수리인지 모르겠다.

혹시 천장에서 인육을 먹은 독수리는 아닐까?



가능한 빨리 보고 호도협을 가기로 했다.

송찬림사 계단을 올라본 일행의 어른들께서


가능한 적게 걷는 루트로... 일정을 변경하지는 의견이 있었기에...

주최측은 당초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했나보다.



사원 내부는 벌브 촬영금지라는 표식이 있어

후레쉬를 쓰지 않으면 촬영을 할 수 있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는 감광감도가 높아

굳이 플레시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



혹시나 싶어 감도를 높였다



헝겁을 걸어 놓은 것을 찍었는데

비단일 것으로 짐작하고 자세히 보았지만..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합성섬유가 아닐지...



피워 논 숯불 앞에서

스님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듯하다.



촬영 제지를 당할까 싶어

조심스래 셔터를 눌렀다.



보지를 못한체 각도를 대충 조정할 수밖에 없어

수평이 맞지 않았지만...

기록을 남기려 힘들인 것인만큼 아량을....^^



저기 금빛 부처들도

이 사람에게 부디 자비를...^^



사원에 있는 승려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복잡하고 문맹자가 많아 경전 읽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저 것(마니차)을 돌려주면 경전을 읽은 효과를 낸단다.

이러한 마니차는 시계방향으로 돌리는데...


마니차 원통안에는

경전의 쓴 두르마리 형태의 경문이 들어 있단다.



끈이라 할까? 총채 비슷하게 생긴 섬유편조를

수 많은 사람들이 붙잡기에 떼가 꼬질꼬질하게 끼었다.

나는 차마 돌려보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ㅜㅜ



그 틀 위에는 한바퀴 돌 때마다

종소리가 나도록 장치가 돼 있더라는...ㅎ



웬만큼 사원내부를 둘러보고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건축현장 부근을 지난다.

위에서 내려가면서 보니 더 잘 보였다.


거푸짐에 젖은 흙을 붓고 다짐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쉬운 일이다.


그들에게 머리에 붉은 천을 두른 두 여인이

흙짐을 지고 오르고 있다.



나시족이 조선족 보다 못한 것은

저런 점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조선족, 아니 우리민족은 최소한

쉬운 것을 여인에게 맏기고 힘든 일을 남자 몫으로 둔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듯이

나시족 남자는 그늘에 앉아 담배나 피면서


여인들이 힘든 일하는 것이 당연한 양

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흙을 파고 물을 뿌리고 섞어 갠다.

그리고 등짐에 지고 남자들이 있는 곳까지 옮겨야 한다.



또한 그것이 당연한듯

서로 웃어가며 즐겁게 일하는 나시족 여인들.



벽이 무너지지 않게 세운 버팀목



암튼 불가사이다.

그들의 행동은 원래의 옛 나시족 풍습이 이어지는 듯하다.


옛부터 남자들은 민족을 침입자로부터 보호하는 임무

즉 목숨을 다해 전쟁에서 이겨내야 하기에...


평소엔 여자들이 남자들의 권익을 위해

집안 일을 하고 남자들은 큰 일을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이 없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여자들이 돈을 벌고 집안살림을 하며

다른 가정 또는 사람과의 관계 일도 맡는다고 한다.


남자들은 평소에 술이나 마시고 놀며

아이의 공부를 시키는 일을 맏으며

밤에 여인을 즐겁게 해주는 의무가 주어진다고 한다. ㅋ



그런 나시족 남자들을 연신 부러워하며

내려가는 우리팀 남자들...


그 뒤로 한국에 테어났음을 안도하고 행복해 하면서

남자 뒤를 살피며 뒷짐진 우리네 여인들...



멀리 산꼭대기는 천장터라 한다.

언젠가 TV에서 천장(天葬, 조장鳥葬이라고도 부름)의식에 대하여

방송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땅에 매장을 하는 문화인데 비하여

티벳 지역은. 매마르고 건조하여...묻어도 잘썩지 않고


나무도 귀하여 화장도 어렵기에

죽은후 시체를 돌무더기 같은데 놓아

새(독수리)에게 육신을 맡기는 방법으로 장사를 치룬다는 것이다.



뼈로 싸인 뇌마저 해골을 잘게 부수는 등 과정을 거쳐서...

날짐승과 땅에다 모든 것을 되돌려 주는것?



육신을 가린 저고리나 바지 같은

옷을 모두 벗고 오롯이 자원으로 순회하는 의미일 것이다.



승려는 일반인과 구분이 되는 듯하다.



아까 얘기했듯 여자들이

돈을 번다고 했다.



그런 꿈 같은 송찬림사를

다시한번 둘러보고 우리 버스가 있는 곳으로 다시가려한다.



역시 다른 팀과 섞이고 여러대의 차로 흩어져

나누어 타고 우리 버스를 세워 둔 곳으로 갔다.

차가 많이 흔들려 사진이 흐릿하다.



우리 저 버스를 타고

다음여정 속에 푹 빠져 보자..


샹그릴라 호도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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