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 파주 ] 문화유적지 탐방

재넘어아재 2011. 11. 30. 08:52

 


경기도 파주시 문화유적지 탐방

2011. 11. 25.

(제3땅굴, 황희정승유적지, 이율곡유적지)

  


여태 파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 지역 문화유적지를 돌아 보지 못해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

그러나 이번에 겨우 그 기회가 생겼다.

 

파주는 이북과 가까운 접적 지역이고

서울과 안양을 합친 면적만큼이나 매우 넓은 곳이며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문화재와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문화해설사 설명 중에서...)

 

먼저 임진각을 거쳐 제3땅굴을 관람하고

황희선생유적지와 율곡선생유적지 등을 둘러 볼 계획

 

그날 오후 식사 후 임진각을 향해 출발을 했다.

광탄면 소재지를 지나고...

 

 

 


 

광탄 농협도 지난다.

파주에서 지내며 시장 볼 때 자주 찾는 마트도 보이고...





어느 덧 1번 국도로 접어 든다...

저 도로를 이용해 판문점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도라산 전망대로 향하면 된단다.


도라산은 장단읍내 뒤편 사천 냇가 벌판에 우뚝 솟은 봉우리인데

해발 156m 이며, 이산 고지는 주위 우거진 수목에 경관이 아름답기에...

주민들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명산





제일 북쪽의 제3땅굴을 먼저 보기 위해 북으로 계속 전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접적 지역부터 보고

다시 아래 방향을 내려오는 방법으로 여행을 진행키로 한다.





파주시에 요청한 해설사 선생님이 중간에 승차했다.

핸드백을 목에 걸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스피커였다. ㅋ


자기 소개를 하시는 해설사 안미화 선생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다는 해설사...


자기 이름을 각인시키며

한바탕 웃음까지 선사하신다.





몇명 안되는데도 설명이 진지하였다.

파주의 지리적 여건, 역사와 유적, 그리고 특산품,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 등등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들으며 여행이 진행된다.



버스는 임진강 역을 지나고 있었다. 찰칵~

그 사이 설명은 계속된다.



도라산(都羅山)이란명칭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이 그 첫째


신라가 경순왕 10년(879)에 폐망하였고,

경순왕은 신라 도읍 경주에서 머나먼 천리길 송도를 찾아 항복하였다고 한다.


당시 고려의 태조는 경순왕으로 하여금

왕건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아내로 맞이하게 하고



유화관(柳花官)을 하사하였으며

정승을 봉하는 한편 경주를 식음으로 하여 사심관(事審官)을 파견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낙랑공주는

비운을 맞게 된 경순왕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저



도라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머물게 하였는데

영원히 이곳을 지키겠다는 뜻에서 영수암(永守菴)이라고 이름지었으며



경순왕이 조석으로 이 산마루에 올라 신라의 도읍을 사모하고 눈물을 흘리었다 하여

도라산(都羅山)이라고 호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진강 다리를 건너기 전에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

접적지역에 다가오니 인원을 체크하고... 무엇인가 다른 기분을 느꼈다.

민간인 통제선을 지날 때 거치는 과정이란다.


철교를 건너며 보이는 저 강이 임진강인가 보다.

강너머에 철새들이 가득했다.


철새들도 이쪽저쪽 자유롭게 오가지만...

저 다리는 아무다 건너지 못하구나.



주말에 철새 보러 오면 좋으련만...

아무나 자유롭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ㅜ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도라산 전망대를 패쓰하여 제3땅굴로 직행 했다.

견학업무를 담당하는 병사들의 확인을 거치고..


흠~, 군복 무늬가 바뀌었군...

멋있어...근데 모자 색깔은 왜 구형?. ^^



땅굴 입구에 섰다.

보안상 지하 땅굴은 카메라는 맞겨 두게 돼 있어

아쉽게도 사진은 없다.


아래 사진은 땅굴관람을 마치고 난 직후 찍은 사진이며

땅굴을 들어 가려고 기다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다.



분단된 남과 북의 통일을 염원하는 조형물..

표현이 그럴 듯 하다.^^



관광버스가 연신 도착하고 떠나기도 한다.



땅굴과 통한 길은 둘이 있다는데...

모노레일을 타고 갈수 도 있고, 걸어서도 갈수 있었다.


같이 출발을 하여도 마치고 나오는 시간을 천차만별...

그래서 모두가 도착할동안 기다렸다가 기념관으로 향했다.


잠간동안 동영상을 보면서

분단의 아품을 다시 한번 더 느낀다.



이어서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사진을 다시보니 설명하는 거 보다는


차라리 이미자의 가슴아프게~ 를 진지하게 부르는 멋진 포즈다..

아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도 같고.. ㅋ



넋을 잃고 가슴시리게 보고 있는 듯한

어느 여선생님의 모습에서도

또한 순수하고 진지함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고...


아이들에게도 소감을 얘기 해 주겠지?

반공과 애국을 가르키니 그야말로 일거 양득이다.


사임당이 따로 있는게 아냐~

저런 열정이 모여 좋은 가정을 이루고 후세도 나는 거지.... ^^



기억할 수 있는 큰 사건들을 쭉~ 설명해 놓았다.

도끼만행 사건은 내가 입대후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판문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때 제대명령을 받은 고참들도 제대하지 못하고

부대에서 대기하던...그때 그 고참님들 잘 살고 있겠져?

아무리 생각해도 이북아이들 무모하죠?


1. 21 사건


제4땅굴 발견


접적지역 안내도



관람장을 나와 황희(1363~1452)선생 유적지로 향했다.



청백리의 표상인 황희선생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 분의 얼을 느껴 본 다음



반구정으로 갔다.

반구정(伴鷗亭)은 황희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으며

여생을 보낸 곳이란다.


반구정은 사진에서 처럼

노을이 질 무렵에 오면 더 나을 것 같았지만..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져?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이 보인다.

강은 일정한 거리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철조망이 쳐 있어 긴장감이 엿보였다.



반구정



저런 정자는 물 가까이 있으면

더 우아해 보여 지는 듯.ㅋ



강 윗쪽으로 보이는 다리가 임진강 철교

그 옆의 다리를 우리가 땅굴을 본 후 건너 왔단다.



반구정에는 찾는 관광객들이 제법 있었다.

아참~ 별거 아니지만 입장료도 있었다.




어여쁜 아씨도

파주의 유적지를 찾으면 더 얘뻐진다는 전설이 있단다.


추앙받는 선비의 훌륭한 얼과 향기가 묻어 나는

그 유적지를 직접 보면 느낌이 새롭고

후세에 대한 남다른 각오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게다.



황희 정승의 모습임다. ^^

요즘은 왜 존경할 만한 분이 적은 것인지...



이 곳 저곳 유적지를 다니며 나 자신을 생각해 본다.

황희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과 유림들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영당



황희선생 묘는

이곳에서 8키로쯤 떨어진 곳이 있어,


이번에 가 보지 못해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를 가지기로 하고

영당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곳이어 이율곡선생 유적지로 갔다.

율곡선생과 신사임당의 얼이 살아숨 쉬는 곳


아무래도 윤관장군묘는

시간 관계상 다음에 가야 할 것 같다.



기념관부터 들어 갔다.

해설사 선생님이 가는대로 졸졸 따라 가야해~~^^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로


선대의 세거지인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서 성장하였고

이곳에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함께 묻혀 있다.


아래 사진은 사임당의 그림으로 기념관내 전시품을 찍은 것이며

진품은 국립박물관이 있어 모사품이라한다.




살아 숨쉬는 듯하고

곡선과 색감이 좋았다.

 

 



기념관에서 앞쪽 자운서원을 본 모습

묘는 우측산아래 조성돼 있다.



시간상 우측의 묘를 가지 못하고 설명만 듣는다.



자운서원을 다시한번 조망하고



아쉬워 더 당겨 보고



서산의 넘어가는 해를 보며

오늘의 여행을 마치고 다음을 또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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