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 논산 ] 명재 윤증의 고택

재넘어아재 2016. 5. 5. 04:29




[ 논산 ] 명재 윤증의 고택

2016년 4월 금천문화원 향토사탐방 제6편

< 2016. 4. 6. >


길잃은 양이 부여 부소산성입구에서 가까스로 합류한 버스.

30분 가량을 달린 뒤 목적지에 당도하였다.


멈춘 곳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이 곳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명재 윤증의 고택이 되겠다.


그러나 선두를 뒤따라가 보니 길을 잘못 든 듯,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사진에서 본 명재고택이 아니다.


임나영 간사는 만나기로 한 해설사와

안절부절하며 통화하는 것 같다.



결국 선두가 길을 잘못 든 덕분에

복사꽃이 피어 있는 노성궐리사란까지

구경하게 된 것이리라. ㅎ



노성궐리사에 대한 설명.



암튼 명재고택을 가려면 다시 주차장으로 나가

반대편 길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바삐 걷고 있다..



그 길가의 수선화를 비롯한 매화가

우릴 맞이하고있다.



명재 고택은 논산시청에서 약 6㎞ 북쪽 지점의

노성산 남쪽 기슭에 노성향교, 노성 궐리사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

노성궐리사와 몇분거리에 불과하였다.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이

지었다고 전하며 도착하자마자 항아리들이 보였다.



명재고택이 지어진 후 그간 수리가 있었다고 하며

그 세부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인단다.

임나영 간사는 해설사와 상담 중,



그러는 동안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항아리는 빈 것 같기도 하고 사용중인 것 같기도 했다.



고택앞에는 연뭇이 있었으며

그 주위엔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우리 탐방 일행이 대부분이나 다른 개인도 있었다.

협의되는 동안 주변을 구경하는 회원님들....



여유를 두고 사색의 길을 걸어도 좋겠으나

우리는 이 고택을 본 후 관촉사와 탑정저수지까지 둘러 볼 예정이므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탐방객들과 함께 다니는 것 보다

바삐 다니며 먼저 사진부터 남기기로 하였다.



나중에 고택에 대해 검색하고

그 내용을 사진과 함께 설시하기로 한다.



따라서 사진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ㅎ



명재고택은 노성산 자락에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다.



왼쪽 1칸 뒤로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자리잡고 있으며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어서,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으며



그 앞에 인공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또한 안채 뒷쪽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조선 숙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명재 윤증(1629-1711)이 지었단다.




안채와 사랑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멸실되었던 사당은 1983년 복원하였고,



수 차례에 걸쳐 안채·사랑채 및 담장·석축·연지 등을

보수,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4년 문화재 지정

당시 윤증 선생 고택이라 하였으나



2007년 1월 윤증 선생의 호를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사당은 멸실되었던 것을

1983년 도비와 시·군비를 보조받아 복원한 것으로,



정면 3칸의 전퇴를 둔 맞배지붕 건물이다.



논산 명재 고택의 가장 높은 위치에는 신문을 두고,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으로 조영하였다.



안채는 높지 않은 기단 위에

1고주 5량가 구조로 사랑채와 거의 같은 양식이다.



북쪽 중앙에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대청을 두었고,



뒤편 좌우에 각각 고방(庫房)을 두었으며,



고방 앞면에 쌍여닫이 띠살문을 두었다.



대청의 서쪽으로 2칸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을 두었으며,



그 남쪽으로 넓은 공간의 부엌을 두었고,

부엌의 상부에는 다락을 설치하였다.



청의 동쪽에는 안방보다

작은 면적의 건넌방을 2칸 두었으며,



그 뒤편으로 윗방을 1칸 두었다.



또한 건넌방 남쪽으로

1칸 반의 다락이 있는 부엌을 두었다.



안채의 남쪽에 위치한 대문채는

2칸의 중문칸과 서편의 행랑방 1칸,



동편에는 광으로 사용되고 있는 2칸의 방으로 구성되어

사랑채와 ‘ㄱ’자로 연결된다.



대문이 별도로 없는 집의 구조상

중문을 대문으로 겸하되,



대문이 열렸을 경우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자벽을 두어



외부 시선을 차단하는 완충 장치로 활용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오른쪽 앞뒤 2칸에 대청을 두었고,

왼쪽 앞뒤 2칸에 누마루를 두었으며,



중앙에는 2×2칸 규모의 온돌방을 만들었으나

앞면은 반 칸을 안으로 들여 툇마루를 두었다.



온돌방 뒤에 반 칸의 고방(庫房)이 있으며,



누마루 후면으로는 1×2칸의 방이 꾸며져 있어,



대문 옆의 행랑채와‘ㄱ’자형으로 연결되고 있다.



가구 구조는 공포(栱包)가 없는 민도리로,

퇴고주를 세워 퇴량(退梁)과 대들보를 걸었으며,



종량 위에 있는 제형 대공에서는 뜬창방을 볼 수 있다.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형상화한 방지의 형식으로

내부에 원형의 섬을 조영하였다.



사랑채의 오른쪽으로는 현재 윤증 집안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장류를 상품화하여

지역 특산물로 양산하기 위한 장독대들이 들어서 있다.



2011년 현재 논산 명재 고택에서는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에서 전통 가옥 숙박 체험이 가능하도록

일반에 공개하고 있으며,




웹사이트를 구축하여 논산 명재 고택의 다양한 정보를

일반에 알리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실용성에 따라 가운데 기둥을 8각으로 한 곳도 있단다.



중국의 유명한 산세를 본뜬 것으로

여겨진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있었다.



역시 중국에서 가져온 돌이라 한다.

당시의 저런 돌을 여기까지 들여 올 정도의 세력(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수 있다는...



뚜껑을 덮어 둔 것을 보니 우물같이 보인다.



하여 확인차 뚜껑을 열어 보았다.

깊지는 않지만 맑은 물이 샘 솟고 있었고 실제 사용 중인 듯했다.



2008년에는 구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방문했었나 보다.



그릇, 맷돌, 디딜방아, 절구 등 옛적 물건들...




고택앞의 인공연못은 잘 다듬어진

돌을 쌇아 만들어졌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가까이 베롱나무(백일홍) 줄기가 연못 위에 뻗고

수면엔 주위의 벚꽃들이 반영돼 보였다.




밪나무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았으며

작은 나무들은 근래 심어진 것으로 보였다.



명재고택 탐방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

당초 예정했던 관촉사와 탑정호 탐방은 어려울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

탐방객들도 지친듯 보였다.




임나영 간사께서 상황을 설명하자

한결같이 서둘러 귀경하자고 하는것을 보아 지친 것이다.




양파들이 실하게 자라고 있는 장면이 보일 때...

누군가의 대화 중에 예전에 내가 가졌던 궁금증이 오갔다.


양파 잎이 파와 같은데 파처럼 먹을수 없는 것인가를....

내가 아는 정답을 정확히 답번해 주는 것을 들었다.


어린 잎은 당연히 파처럼 먹어도 되지만,

늙으면 억세서 식용이 어렵다고...

아마도 그는 양파를 재배하는 고장에서 자랐나 보다.



길가에 달래가 지천이었고




작은 도랑에는 미나리들이 자라고 있었다.

채취하는 이가 있어 한움큼 뜯어 드렸다.



지금 출발을 하면 서울엔 늦은 시각에 도착할 것이다.

하여 중간에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중간에 휴게소에서 멈출뿐 식사는 하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려나? 배고프다.ㅜㅜ


탐방객 대다수 무엇인가 간식을 먹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것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애꿋게 맹물만 마셨다.


집에 도착해 아내에게 물었다.

애내 왈, 단체로 버스여행을 가는 경우 개인이 알아서 챙겨 한단다.


그려? 그런 것을 왜 나는 여태까지 몰랐었지?.

암튼, 얼른 밥 줘~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