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 부여 ] 궁남지와 구드래조각공원

재넘어아재 2016. 4. 16. 05:20



2016년 4월 금천문화원 향토사탐방 (3편)


- 부여 궁남지와 조각공원 -

< 2016. 4. 6. >



금천문화원의 금번 향토사탐방 원래 계획은

정림사지를 탐방한 다음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간표를 짰으며


부여시로부터 도움을 받아

미리 식당을 정하고 예약까지 해 두었으나


궁남지를 거쳐 갔으면 좋겠다는 회원님들의

현장 의견을 반영하여 식사시각을 조금 뒤로 미루고


버스는 당초 예정에 없던 서동공원(궁남지)을 향했다는데...

역시 문화원 운영진이 잘 선택한 것 같다.


공원에 들어서자 유록의 실버들이 춤추며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다. ㅎ



작년의 마른 연 줄기가 물 위로 나와 있었으며

연 잎은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정처없이 서 있는 나룻배가 손님을 맞는 것 처럼

물에 뜬 연밥 마저도 반갑기만 했다.



씨앗은 보이지 않고 벌집처럼 구멍만 뚫려 있어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 드는 연밥,



물이 빠진 연못의 앙상한 줄기까지도

처음 본 사람들은 신비롭게 보였나 보였는지

회원님들은 셧터를 눌러댔다.



드넓은 궁남지(宮南池)는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하며

사적 제135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우리 회원님들이 그 궁남지를 걷고 있는 장면이다.



궁남지는 서동공원 안에 있는 연못인데..

그 궁남지에 대하여 검색하였으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 무왕의 연못, 서동공원과 궁남지

궁남지는 백제 무왕 때에 궁궐의 남쪽에 만든 큰 연못으로,

『삼국사기』에 의해서 궁남지라고 부른다.



궁남지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하며

왕궁의 남쪽 별궁에 속한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라 한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무왕 35년(634)에

“궁성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단다.



또한 같은 왕 39년조에는

봄 3월에 왕과 왕비가 큰 연못에 배를 띄웠다는 내용도 있단다.

더불어『삼국유사』기이제2 무왕조에는


“무왕의 이름은 장(璋)으로, 그의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지(南池) 주변에 집을 짓고 살았단다.



그런데 그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고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하였는데,

그의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라고 하였다.



한편, 백제가 멸망한 뒤에 못은 훼손되어

연못 주변은 농지로 이용되었으며,

현재 연못의 규모는 1만평도 채 안 되는 형편이다.

▲ 위 사진의 연못이 궁남지 이다.



다만, 한성시대에 조영된 왕궁에 딸린 연못은

아직 발굴된 바 없어서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웅진(熊津)시대의 왕궁이었던

공산성(公山城) 안에서는 당시의 것으로 판단되는

연못이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되는 건물지(建物址)와 함께 발굴되었다.

▲ 궁남지 가운데 섬이 있는데 그곳의 기와집이 포룡정이다.



공산성에서 발굴된 이 연못은 바닥이 좁고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원형의 연못인데

직경 7.3m, 바닥직경 4.8m, 깊이 3m의 크기를 보이고 있다.



이로써 보면 백제에서 왕궁 근처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성시대와 웅진시대의 연못은 그 자체만 확인될 뿐

여기에서와 같은 삼신산(三神山)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암튼 , 이 궁남지는 설화에 나오는 무왕이

서동이라는 것을 미루어 이곳이 별궁터였고


궁남지가 백제 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이었음을 추측하게 하고,

백제의 정원(庭園)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궁남지의 조경(造景)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源流)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펌)



포룡정이 보이는 궁남지 옆 길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었다.





내가 찍는 그자리에 카메라를 가진 다른 회원님도

계셨는데 그분도 찍었다는...ㅎ




그리고 포룡정으로 가려는 도중에

저 뒷편에서 시간이 늦었으니 나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별수 없이 되돌아 가는 길....



수련밭을 지나며 예전의 궁남지 출사를 생각했으며

그 때 찍은 몇장을 소개한다.



어떤 때는 야경이나 새벽풍경을 보고 싶어서



야영을 하기도 했었다.



어린 꽃봉우리가 잎을 뚫고 나오는 모습에서

신비스런 자연을 느꼈다는...



다시 옛 추억에서 깨어나 주차장으로 가는 길,



분홍색 빛깔을 보아 일반 벚꽃은 아닌 것 같다.



홍매화가 아닐까?

연록의 실버들과 어울린 모습을 담고

회원들은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출바알~

관광 식당가로 가는 길 역시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세워지고

하차한 우리는 식당을 향해 걷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거닐 수 있는 곳이 주변에 있었다.



무료 시식코너에 몰려 있는 우리 아짐들....

아무래도 공짜는 즐겁기만 하다. ㅎ




우리의 목적지 구드래 돌쌈밥

참고로 "구드래"란 식당 근처에 있는 금강 나루로


백제시대에 도성인 사비성을 출입하는

항구와도 같은 큰 나루였다고 한다.



입구엔 딸기 수레가 놓여 있었는데...

2키로그램 한 상자에 1만 몇천 원이라며 사 달라하는 할머니,


귀경길이면 버스에 싣고도 싶지만...

밤 시간까지 흔들리는 버스에선 많이 상할 것 같네요. ㅜㅜ


값이 많이 하락해서 농부들은 울상일 듯...

갑자기 논산에 딸기로 귀농한 친구네가 생각난다는....



유명한 식당이었는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당최 본적이 없는 회원들 틈에 끼어 식사하는 것이

약간 어색했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식사후 밖으로 나가 구드래 조각공원을 향했다.

공원은 주차장 바로 옆, ㅎ




올해들어 벚꽃은 부여에서 가장 많이 접했던 것 같다.



서울에선 더 멀치감치에서 보았을 뿐이다.



물론 벚꽃 보다 훨씬 품위있는

우리 텃밭의 만첩홍매화 보단 못하지만 말이다.

아래 세장의 사진은 부여가 아님~




암튼, 식사후 구드래조각공원에서의 짧은 산책까지....



멋진 봄맞이 추억을 가진 것 같다.



잠시후 계획된 여정을 이엇으며

버스가 멈춘 곳은 부소산성 주차장 이었다.



이후 부소산성(낙화암) 얘기는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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