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 울진 ] 천년고찰 천축산 불영사

재넘어아재 2015. 12. 23. 12:22

 

 

[ 울진 ] 천축산 불영사

< 2015. 12. 12. 토요일 >


- 겨울여행 2박 3일, 셋째 편 - 


울진군 서면 하원리에 있는 불영사는

인도 서역의 천축산을 닮았다는 천축산(天竺山 653m)에 있으며,

조계종 불국사의 말사이고 비구니 사찰,


651년(진덕왕 5년)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고,

부처님의 그림자가 못에 비친다하여 이름지어진 불영사(佛影寺),


그 불영사의 일주문 앞에 섰을 때.

한자를 많이 못 배운 나는 천등산으로 알았다.



일주문 옆, 불영사계곡에 대한 안내문,

저 일주문 밖의 세상은 속계(俗界)이고,

그 안 쪽이야 말로 진계(眞界)로 친다는 설명이 있었다.



진계에 속한다는 '불영사'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주소는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길 48(금강송면, 불영사)

울진군 관내에서 가장 크고


유래가 깊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가 많아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라한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길 양편에

커다란 금강송들이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소나무 중에서도 최고의 기풍을 자랑하는 수종이라하여

특별히 부쳐진 이름인 금강송은,


나무빛깔이 붉다 하여 적송(赤松),

속이 노란 빛깔을 띤 붉은색이라 하여 황장목(黃腸木),




춘양지역에서 수집 반출되었다고 하여 춘양목(春陽木),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하여 미인송(美人松) 등으로 불리워지나


궁궐 건축재료 또는 임금의 목관 재료로 쓰이는

황장목(黃腸木)이 본래 이름이라 한다.



궁궐의 목재로 임금님을 모시다 임금님이 승하 하시면

관이 되어 영원히 모시게 된다.


울진 소광리에 황장목이라 불리는

큰 소나무 군락이 있으며 보호받으며 자라지 싶다.


그처럼 나무들이 크지는 않지만

불영사로 들어가는 길 양편에는... 그리고 계곡 주변에는

많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 방문이 두번 째라고 하는 아내는

이 불영계곡이 근사하다며 처음인 내게 말했는데

말그대로 참 멋진 계곡이다.



능선들을 보면 사진에서 보아 온 금강산 느낌이 들고.

중국의 황산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왕피천을 건너는 다리 불영교,

다리 아래로 흐르는 왕피천은,

울진군 북부를 통과하는 길이 67.75㎞의 하천,


영양군 수비면 본신리 금장산(849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다가 신원리에서 유로를 북동쪽으로 바꾸며


장수포천이라 불리다가 울진군 서면 왕피리를 지나면서

왕피천이라 불리운다고 한다.



근남면 구산리 일대 금장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북류한 매화천과 불영계곡을 따라 동류하는 광천(빛내)과 합쳐진 뒤


유로를 동쪽으로 바꾸어 흐르다가 망상해수욕장 북쪽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실직국의 왕이 이곳으로 피난해 숨어 살았다고 하는 마을 이름은 왕피리,

그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은 왕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울진의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이 있으며,

군립공원인 불영계곡과 구룡폭포,

그리고 불영사 등이 있다며 설명돼 있다.



소나무의 키가 어찌자 큰지 카메라에 담기가 어렵다.




몇 해 전 백두산 여행 때 비슷한 소나무들을 보았는데...

그 지역에선 장백송이라 칭하는 것을 알았다.



당시 조선족이 현지가이드를 했는데..

백두산의 장백송이나 금강송은 같은 수종이라고 소개했었다.



왕피천 양편에 서서 굽어보는 금강송



당당한 기풍을 풍기는 금강송의 자태와

왕피천의 계곡의 여울 물소리는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씻어내 잊게 해 주는 듯하다.



날씨가 차가워 물가로 내려갈 순 없지만....



여름철 같으면 발을 담가도 좋을 듯 하다.

네 커플이 여행 중인듯...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으로부터 촬영을 부탁받았으니

촬영비 몫으로 그들을 출연시켰다는...


앞으로도 행복한 여행

많이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



잠시후 왕피천과 떨어졌다.

대신 개울 양쪽으로 우람한 금강송 군락이 펼쳐 있다.



뒤 돌아 보니 왕피천은 상류로 향하고

우리가 가는 불영사 길이 다른 방향으로 나 있었다.



관광버스 손님들이 의외로 많았나 보다.



담돌이만한 아이가 함께 걷는 모습을 본 옆지기

외손주들이 보고 싶단다. ㅎ


그 아이들은 왕할머니 생신이기 때문에

지금쯤 안동 시댁으로 떠났을 거라면서 말이다.



금강송이라 하지만 궁궐에서 쓸수 있을 정도로

큰 거목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왜정때 일본넘들이 많이 베어가 국내엔 너무 귀해서

문화재를 복원할 때조차 수입송을 쓰기도 해서

간혹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개인적으로 우리가 정당하게 구입해서 쓰는 것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선진국의 각종 건물과 유적과 유물들 중

순수한 자기네 것이라 내 놓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그들 대부분이 전쟁을 통해 약탈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획득한 물자와 유물으로 이룬 것이 대부분아니던가

정당하게 수입해 쓰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잘못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국내산이 더좋고 값싼데도

수입해 쓴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말이다.

암튼 불영사 접집에 들어선 듯 하다.



안내도에 따르면 요사체가 여럿 있던데...

이곳에 모여 있는 것 같다.


그 요사체 뒷편에 송림으로 우거진 산이 천축산,

인도 천축국에 있는 산과 닮아 천축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과 서유기에 나오는

천축국은 이름이 낯설지 않지만..널리 알려진 곳은 아닌 것 같다.


뭐 갔다 온 사람들이 그리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산 이름을 천축산이라 지었다고 알아 두자. ㅎ



요사채 들을 지나자



거너편의 해우소가 보인다.



안내도를 보니 왕피천과 불영사 입구 길이

잘 설명돼 보인다.



사진 상으로 잘 보이지 않아 각색해 보았다.

나중에 사진에 토를 달며 그린 것인데...



가운데 불영지를 중심으로 돌아 나왔으며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 많아서도

또한 여정 시간상 개략적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가운데 건물(법영루)를 중심으로 한 파노라마



청풍당, 공양을 준비하는 요사채라고 설명돼 있다.



종무소와 설선당이 부근에서 사진을 찍는 커플...

부디 행복하시길...



수많은 메주가 처마에 매달려 있는 모습,

젏게 많은 메주를 처음보는 재넘어는 그저 신기해 할뿐이다.



뒷편으로 대웅보전이 보이고....



뒤돌아 불영지 쪽을 보았다.



아무래도 절집 처마아래 매달린

수많은 메주가 압권인 듯해서 눈길이 자꾸 갔다.



약수물을 무어라 부르는지 몰라 찾아봤더니

수각이라 나타내고 있다.



대웅보전과 3층석탑(무영탑)



설법전, 법회나 행사를 주관하는 장소란다



무영탑, 자체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 이외에...


탑이 설법을 하고 있으나 대중이 그 뜻을 알 수 없어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영(無影)의 상태,

죽, 불교의 철학적 표현이라는 설(說)이 있단다.


석가탑(무영탑)이란 본래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나 치아 또는 머리카락을 모신 탑을 말하며


이곳 이외에도 불국사, 법주사, 통도사,

월정사, 송림사 등지에 석가탑이 있는데...


이 탑들 모두는 하지 정오에는

탑신의 그림자가 땅에 드리우지 않게 축조된 무영탑이라하니

새로운 것을 배운 셈이다.


암튼, 불영사엔 대웅보전과 무영탑

이외에도 유형 문화재나 국가보물로 지정된 시설이

많은 절이라니 명소를 방문한 것이다.



돌계단을 윗쪽 작은 집은 산신각이 아닐까?



대웅보전 안의 불상, 가운데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그 좌 우측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님이란다.


특이한 점은 세개의 불상이 불영사에서 600년간 자라던

은행나무 고목이 태풍으로 부러지자

이나무를 이용해 정성들여 불상을 조각하여 모셨다는 것,


참고로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왼편에서 모시고

지혜를 맡아보는 보살이라 하며,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석가여래 오른편에 모시며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德)을 맡아보는 보살이란다.


그리고 보살이란? 깨달음을 구하여

중생을 교화하려는 사람이라는...



대웅보전 뒷편엔 키 큰 노송군락이

불영사를 감싸고 있었다.



대웅보전 옆에서 본 앞쪽의 모습

처마의 단청과 전등과 풍경에 죽엽이 드리우고..


앞산의 능선 위로 파란 소나무들이 에워싼

그 모습이 썩 괜찮아 보인다.



대웅전 기단의 돌거북머리

대웅전 기단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에 보이는 거북머리,


머리와 발 앞쪽만 노축돼 마치 대웅보전을

둘이서 짊어지고 있는듯 보인다고 설명을 하는데...


이 불영사가 있는 곳이 화산 자리이기에

그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방책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 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웅전이 자리의 지형이

바다를 닮아 거북이를 받혀주어 물에 가라 앉는 것을 막기위해

거북이를 조각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여행 중인 사진가 모녀 일까? ㅎ



불영지로 나왔고 목련나무가 보였다.



법영루, 범종과 북 그리고 목어가 보인다.



명부전,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염라대왕 등 시왕을 모셔 놓은 절 안의 전각,


어떤 절에서는 시왕전

혹은 지장전이라 칭한다고 한다.



응진전(應眞殿), 나한전(羅漢殿)이라고 칭하기도 하며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羅漢)을 모신 전각이란다.



칠성각(七星閣),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온 신앙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기우·장수·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칠성신에 대한 제사는 조정과 민간에서 계속되었으며,

이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사찰 안에 칠성각을 짓고

칠성신을 모시게 되었다.


칠성각은 조선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도 대부분의 사찰에 두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경우라고 한다.


이러한 칠성각에는 칠여래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을 탱화로 그려 봉안하고 있단다.



법영루 쪽 풍경을 뒤돌아 보았다.



다시 파노라마 사진을 이용해 불영사를 담고..



극락전(極樂殿),

극락정토(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아주 깨끗한 세상) 주재자

아미타불 모시 법당으로 보통 대웅전 서쪽 둔다.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전을 본당으로 삼고 있는 절에서는

극락을 의역한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안양교·안양문·안양루 등을 갖추기도 한다.



이제 얼추 불영사 진계를 돌아 보고

일주문 밖의 속계의 주차장을 향해 뒤돌아 가는 중이다.

햇빛이 불영사 진계를 비춰주는 것일까?



일주문에서 불영사 사이에 넓은 도로와 별개로

이따끔 '명상의 길'이 있었지만...

우린 시간 관계상 이용하진 못했다.



저 때 시각이 오후 2시 50분

얼른 울진 해변으로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각이었다.



주차장 앞의 식당에서 먹고 싶진 않다며

앞서서 걷는 옆지기...



물소리를 들으며...



다산 가족을 걱정하며 걷느라

배고품을 잠시 잊고 있는 듯 했다.



멋진 기암괴석의 천축산(불영계곡)을 보면서

중국 최고의 명산 황산(黃山)과 닮았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그 앞산의 소나무들을 보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음 여정으로 계획된

울진의 명소 망양정을 목적지로 정하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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