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 영동 ] 내고향 감고을의 추석

재넘어아재 2015. 10. 1. 07:01




2015년 한가위, 고향을 찾다

< 2015. 9. 25.~ 9. 28. >

  

- 2015. 9. 25. 금요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귀성길에 오르면서

아내와 텃밭 배추에 비료를 주러 죽향골로 향했다.


출발전 처 당숙이 돌아가셨다는 통지를 받았으나

상가 집에 다녀 온 사람은 차례에 참여치 못하는 풍습이 있어


내일 아내 혼자 처가 선영(장지)을 직접 방문하기로 하되

나만 본가의 차례에 참석하기로 합의를 봤다.


한편, 텃밭에는 꿩을 잡으려 지난번 덫을 놓았었다.

혹시 꿩이 잡혔을까 하고 기대를 했으나


역시나 약은 꿩새꺄는 걸려들지 않았는데

녀석은 아무래도 나 보다 한 수 위 같다.


당진-대전간 고속도로는 비교적 한산해서

고향 읍내엔 힘들지 않고 도착했다.


읍내 로타리에 설치된 오폿대가 여태까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읍내에 처음 왔던 날 정오,


깜짝 놀날 만 하게 큰 소울음 소리를 내던 오포,

중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자정에도 그 소리를 울려 댔는데


이글을 쓰면서 왜 오포라 했는지

생각 보았으나 분명치 않아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기억컨데 오포는 일종의 사이렌 큰 것 이었다.

 

암튼, 예전 서양에서는 정오를 알리려고 대포를 쏘았는데....

그 것을 오포라 했고 거기서 유래한 것 같다.



대전에서 읍내로 들어 오면서 봤던 시장골목..

그 골목에 할머니들의 좌판에 보였던 땅콩을 사러 갔다.


땅콩은 한 말에 2만 원 정도씩 한다고 하는데....

집집마다 알의 크기와 자루의 사이즈까지 각양각색


그 중에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은 곱절이상 비싸게 달랜다.

그리고 한말 또는 1키로에 얼마라는 가격도 없고


담긴 그릇(일종의 소쿠리)에 1만 원이랜다.

그런데도 결국 자루 통째로 5만 원에 흥정을 했다.


너무 무거워 주차를 한 세무서까지

들고 갈 수가 없어 차를 끌고 오기로 했다.



그 옆집에도 버섯을 필고 있었는데...

능이와 송이가 있었고 1Kg에 15만 원인 것은 마찬가지


그 곳 다른 가게의 송이 포장이 정성스럽고

품질도 비교적 나은 듯 하지만...35만 원이나 한다니

나같은 서민은 당치도 않다.



할머니는 양강 지촌리에서 오신 분....

크기가 고르지 않고 포장이 엉성하지만 믿음이 갔기에

만 원을 깎아 14만 원에 사기로 했다.



그 때 땅콩을 먼저 차에 실었는데....

사진이 없어 집에 돌아와 건조기에 넣고 남은 자루를

사진으로 찍었다.


옆지기는 무슨땅콩이 저렇게 크냐면서

혹시 유전자 변형 땅콩이 아닌지 의심이 간댄다.

하기사 나도 저렇게 큰 것은 처음 본다.



한편, 처제는 영동 시내에 나온 능이와 송이버섯

70~80%가 중국에서 유입된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걱정을 했다.

중국산이면 차례상에 올리지 못하잖오...ㅜㅜ


처제네랑 올뱅이국밥집을 찾았다.

로터리에서 경찰서 방향 도롯가의 뒷골집

올뱅이를 까던 주인장이 우릴맞는다.



황간에서 잡아 온 올뱅이란다.



올뱅이 국밥을 주문했다.

영동엔 알려진 올뱅이 국밥집이 여럿 있지만...


우린 시장안 일미식당과 이 뒷골집을 주로 찾는다.

방식이 조금씩 달라 호불호가 갈린다는...



음식을 하는 동안 휴대폰 사진을 찍는다.

간에 특히 좋고 골다공증에도 좋단다.




하여 지난 번에 엑기스 한박스를 샀었다.

이번에도 주인 아짐(황간댁)은 자화자찬을 하더라는....


단학선원에 15년을 다니고 있는데...

65세의 나이를 넘어 섰어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동작을 할 수 있단다.


접시돌리기 시범을 보이는 황간댁...ㅋ

올뱅이 엑기스를 자주 마시기 때문이란다.



별 수 없이 아내를 위한 엑기스 한 박스가 차에 또 실렸고

내일 아침 야영 후에 먹을 올뱅이국까지 포장하였다.





주인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린 쌉싸름한 올뱅이를 얌얌 까먹고 있다.ㅎ


80년대 초 처가집에 모여

과수원앞 강에서 식구들과 올뱅이 잡이에 나서면

커다란 다라로 한 가득이었다.



동서도 이집 올뱅이국밥이 마음에 든댄다.



처제네와 헤어진 우리는 읍내 화신리로 향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었고 몇년전 야영경험이 있는 곳,

그 길가의 붉은 열매가 잔득달린 나무 옆에 잠시 섰다.



마을 중간 지점을 지날 때

사람들이 모여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여 다시 정차...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자 포즈를 취하시는 주민들...

기계로 호도를 까는 작업을 한댄다.


예전에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호두를 깠었지만

지금은 기계화로 편리 하단다.


알콩달콩 이웃간에 도우며 사는 화신리 주민들 모습

인사를 드리고 중화사로 향했다.



중화사로 향한 꼬부랑 솔밭길..

몇년전 봄 벚꽃과 배꽃이 필적에도 이 길을 올랐었다.





고요한 주차장에 도착해 텐트를 펼쳤다.



멀치감치 발전기를 두고 릴을 풀어

텐트에 전원을 공급했다.



이번 추석에 슈퍼문이 떠 오른다지만...

아직 이틀 전의 달 이래서 그런지 잘모르겠다.



- 2015. 9. 26. 토요일-


어두운 새벽 헤드렌턴을 쓰고 지인이 알려준

비밀 장소를 겨우 찾았으며... 난생처음 송이를 채취하였다.



아 자리를 빌어 자신만의 비밀장소를 알려준

지인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새벽 세시경부터 예불소리가 들렸는데...

범종까지 울리는 바람에 아내는 잠을 설쳤단다.



카메라를 들고 절집으로 향했다.

몇해 전 중화사 대웅전이 소실됐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안타까워 했었다.



대웅전만 소실된 줄 알았는데...

주변까지 불탔었나 보다.



새로 지어진 절집들을 봐서 그런 생각이다.



아직 가로등이 켜 있는 주차장.



산골의 맑은 공기가 시원하기만 하다.



새벽에 절을 찾는 여인(보살님?)이 있었다.



그가 들어 갔던 대웅전을 찾았다.



아내는 불전함에 돈을 좀 넣으랜다.

아마도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처당숙의 영면을 우선 기원했을 터이고...

사람의 마음이란 언제나 간절함이 있는 법..



한편, 캠핑을 잘했으니 부처님께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밤새 불이 켜 있었나 보다.



불공을 드리는 여인...

이곳 저곳에 들러 불공을 드리는 것인가 보다.



꽃잎이 몇장 남아있지 않은 호접란



그리고 제법 남아있는 화분이 보였다.



절집 지붕 너머로 펼쳐진 능선들...

남서쪽 방향이니 아마도 삼봉산이나 천만산 능선이 아닐까 싶다.

천만산 자락인 산막리는 날이 밝으면 갈 것이다.


머나먼 저곳 서울 우리집 뒷산에서 보이는

북한산 만큼이나 멀다.


참고로 영동군의 면적은 845㎢로

서울의 면적(605㎢)보다 1.4배나 큰 땅이니 멀 수밖에...



불전함을 찾아 대웅전으로 들어섰다.

집도 부처들도 새롭다.



화재나 수재같은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새로운 탄생을 잉태시키는 것 같다.



에전에는 대웅전 뒤로 대나무밭이 있었고

바람에 나무들 부딫히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그 대나무들이 제거된 듯하다.



대웅전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 중

계단마다 정성스럽게 놓인 국화화분을 본다.



옆지기도 어느새 일어났다.



이 계절은 야생화가 귀한 듯....



기온이 낮아 휘발유 통이 수축돼 찌그렁하다.



단풍나무 잎은 아직 여름인듯 파랗기만 하고...



버너를 내려 놓는 아내를 보니

아침식사를 지으려고 준비하는 듯하다.



어제 저녁식사를 한 뒤 올뱅이국을 포장했기에

국은 데우기만 하면 되고...



밥은 내가 하기로 했다.

송이가 제법 있으니 송이덮밥을 해 먹기로 했다.


차례상에 놓을 탕국에는

직접 채취한 송이를 쓰기로 하고


송이덮밥에 사용할 것은

혹시 중국산일지 모르는 구입한 것을 쓰기로 했다.


새벽에 채취한 것보다

구입한 것의 선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압력밥솥을 버너에 올려놓고

수증기가 칙칙폭폭 뿜을 때까지 기다린다.


저 버너를 처음 본 몇몇 캠퍼는

개스통과 버너 연결부위가 가늘어 연약해 보이고 때똑해서

위태롭게 느껴진다는 얘기를 하기도한다.


물론 기성상품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구한

몇개 회사 부속을 조립해 만든 것으로 균형적이진 못하지만

6년간 사용경험상 만족스럽다.



솥이 식을 때를 기다리며 송이를 정리했다.

 

 

그리고 손으로 잘게 찢어 두었다.

인터넷에서 배운대로...ㅎ



솥이 식은다음(수증기가 빠진후) 뚜껑을 열고

송이 조각을 밥 위에 얹은 다음 다시 뚜껑을 덮어준다.


그리고 버너 위에 놓은 뒤

한 김을 내 주면서 뜸을 들이면 될 듯...



주차장 아래로 커다란 호두나무가 보인다.

저 아래에 가면 호두 몇개 쯤은 쉽게 줍겠지만...

길이 좀 험한 것 같네...ㅎ



밥을 내려놓고 올뱅이국을 끓인 다음...



우린 차량 위 텐트에 올랐다.



텐트 위에서 식사하는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옆지기가 참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다.



식사후 나는 텐트를 접고

철거 준비를 하였다.


옆지기는 개울로 내려가 설거지를 하였는데....

속이 좋지 않고 어지럽단다.



너무 맛이있어 급하게 먹어서 그런 것인지...

중국산 송이를 화학처리하여 그런 것인지 불안하였다.


차에 보관하던 위청수를 마셨으나

앞으로는 정로환까지 비치했으면 좋겠단다.


야영을 마친 뒤 영동으로 가는 길

중화사에서 내려가는 길에 일찍부터 사람이 많았다.



마을로 접어 들어서는

도롯가에 떨어진 호두 몇 개를 주웠다.



알밤도 벌기 시작했다.



내고향 영동은 감고을이다

벌써 감 잎에 단풍이 든 것은 시원치 않은 나무다.



서리가 오기도 전에 감은 홍시가 되어

수확하지도 못 한 채 버려질 게 뻔하지만...

불그래 한 것이 보기는 좋네....



요즘 방치되는 감나무들이 많은 듯



시골에는 젊은이들이 극소수 이고

주로 노인네들이 남아있는 터라 노동력이 부족하단다.


감나무에 거름도 주고 방제작업도 해야하지만...

일손이 부족해 거르는 경우가 많겠다.



경운기 창고 위 나무기둥에 매달린 마늘을 보니

월동준비로 광에 연탄을 가득 들인 주부와 같은 마음이려나 싶다.



암튼 풍성한 가을이다.



다 익어 껍질이 벗어진 호두 알...

간당간당 곧 떨어질 듯 하다. ㅎ



감나무가 병들어 수확은 못하더라도

풍성한 가을 정취를 가득히 느끼게 해 준다.



원래 제대로 된 감 잎 단풍은

저렇게 얼룩진 누런 빛이 아니라 훨씬 붉다.





요즘 감나무들은 곶감업자가 봄부터 나무채 계약을 하고

방제 작업과 수확까지 한다고 하던데...



인건비가 많이 들어 채산성이 떨어지기에

많은 농가의 감나무들이 방치되는 실정이 아닐까.



늦여름에 방문했을 때는 풍년일 것 같았는데...

이번 추석 때 보는 감은 흉년인 듯 해서 가슴이 아프다.



어젯밤 호도 피복을 벚기던 작업 현장 같다.



풍년은 아니지만...가을 정취를 물신 풍기는

감나무가 도롯가로 이어진다.



화신리 앞에서 읍내로 향하려던 것을

당곡리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그 길가 감나무에도

주렁주렁 붉은 감들이 매달렸다.



너무 흔해서 방치하는 듯도 싶다.



우리 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여서



최고로 귀하게 여기던 감이

푸대접을 받는 듯하다.


저렇게 떨어져 썪어가는 데도

자동차들은 바퀴로 밟으며 지나친다.



우리가 어릴 때는 저렇게 붉은 감은

땅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성한 것은 곶감을 깎거나 홍시감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야 하므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낙과였지 싶다.



당곡리 방향으로 계속간다.

위성지도에는 끝까지 계속 진행하면

용화의 도마령 길과 접한다.



읍내에서 당곡리 마을까지 버스가 다니나 보다



도로 끝지점 같은 곳...

버스 승차장과 화장실이 보이는데...


근처에는 야영을 해도

괜찮을 장소가 가까이 있을 듯하다.



마을을 관통해 더 윗 계곡으로 향하면

길이 좁아지고 급경사의 임도가 나타날 것 같다.



흐미~ 저 집 예사롭지 않네...

조수석 방향에 앉은 아내가 손짓을 한다.



창문을 내리고 당겨서 찍었다.

그 집은 둥글게 연마된 강돌로 벽을 쌓고

벼름빡엔 옛 물건들이 진열돼 있다.



마을 뒷편에 이어진 산은 군유림 이란다.



경사가 졌으나 포장이 된 것을 보면 아직 마을...



붉은 낙과가 널부러져 있고 신식 이층집 주택이 보인다.



계속 길이 좋으면 용화까지 가고싶다.



그러나 이내 갈림길이 나오고 길은 협소해 졌다.

초행자에게 협소한 길은 위협이다.



옆지기는 물봉선을 보며 뒤돌아 가잔다.



깊은 산 임도에서 자칫 고립이라도 되면

전화도 되지 않고 보험사를 통해 구난 받기도 어렵다.



우리차는 커서 좁은 길에서는 많은 제약이 있다.



그래서 뒤돌아 나가는 중이다.



나팔꽃이 잘가라며 배웅을 하는 듯.^^



저런 감을 주워 김식초를 담가도 그만인데....



사과가 주렁주렁....

온난화로 사과 생산지가 북쪽으로 이동한단다.


엊그제 으느 글에서는

몇십 년 후에는 소나무를 낮은 산에서

볼 수 없을지 모른단다.



겨울 옷가지를 입으려고

장에서 꺼내 빨아 널은 듯한 모습이다.



마을을 지나면서 낙과가 아깝기만 하다.



노란 뚱딴지 꽃 너머 솔숲이 보인다.

저기에 송이가 날 것도 같다.



으이구...감 잎은 다 떨어지고 열매만 남았구나.

모두 까치밥이 될 듯 하지만...보기는 좋네..



이 지역 감들도 병에 걸렸나 보다.



아니면 벌레들이 많던지...

그래서 때이르게 홍시가 되고 있다.



서리가 내릴 시기도 아닌데 애처롭다.




앞으로 고향 내려올 때는

커다란 담금주 통을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길을 가다 버려진 나무의 감은 따거나

성한 낙과를 담아 두면 감식초로 재탄생 하잖아.



다시 화신리 앞 포도밭을 지난다.



시원찮은 송이가 있으면

한 알을 따서 맛보고 싶었지만...



모두가 성하고 보기좋은 송이만 보일 뿐이다.



송이송이 알알이 농부의 애정이 담긴 포도들...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다시 읍내로 들어섰고 아내는 처제네와 합류했다.

운구차를 기다리는 처가 식구들은

고속도로가 정체로 처당숙 운구차가 많이 늦는다고 걱정이다.


일을 마칠 때 쯤 픽업하기로 하고

나는 어제 땅콩과 송이를 구입한 시장으로 향했다.



그 읍내 시장 앞이다.

어제가 장날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날짜도 그렇고 어제처럼 늘어선 좌판이 그랬다.

송이를 판 아짐이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아침에 먹은 송이가 못 미더워

직접 채취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었다.


땅콩을 판 아짐도 송이 할머니 얼굴과

지촌리에 산다는 것은 알지만 전화번호는 모른단다.



하여 걍 산막리로 향했다.

시간이 나면 지촌리도 들러 마을 구경을 해야겠다.



양강면의 어느 과수원 앞,

유홍초가 보여서 잠시 차를 세웠다.



사과나무 꽃이 보여 신기해 했다.



다른 나무도 꽃이 핀 가지가 있었다는...



지촌리 말고 죽촌리도 있나보다.



지난번에는 지나쳤던 산막저수지



의외로 물이 만수위에 가깝다.



부근에 야영해도 좋을 곳이 보였다.



당곡리 계곡보다 산막리 계곡이 깊고 넓어서

수량이 풍부한 듯하다.



참 깊은 계곡이다.



한참동안 만에 마을 입구다.


 


고향가든을 지나니



버섯꾼들 차량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임도가 시작되기 전에 차를 세웠다.



산막리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

도마령이 있는 용화땅 조동리까지가 7.7키로이고


지난 번 조카와 함께 다닌 임도의 길이가

자그만치 10.1 키로미터란다.



허탕만 쳤다면서 돌아가는 차량들이 보였다.

어떤사람은 나에게 다가와


채취한 것을 담은 봉지를 보여주며

이런 것 밖에 없다며 그냥 돌아 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내가 봐도 보잘 것 없는 버섯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포인트를 알아가지고 온 사람아닌가.

그 지인만이 아는 비밀장소를 찾아보련다.


그나저나 이 열매가 무슨 열매란 말인가?

처음 보는 것 같다.



산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저 윗쪽에서 아저씨의 음성이 들렸다.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조동쪽으로 올라가랜다.

나는 그냥 구경 다니는 겁니다.

하면서 그냥 올라갔다.



우와 구절초다. 구절초를 촬영하는데

자기들이 심은 것이라고 일러준다.

바로 웟 쪽에 그분의 전원주택이 있었던 것...



고사리 너머로 희끗한 그의 머리가 보인다.



개포동에 살다가 몇년 전 이곳에 집을 지었단다.

시골이라 순박한 줄 알았더니 텃세가 만만치 않더란다.


그렇지만 영동이 좋아서 오신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도 지었다 부숴야 할 정도였고

두번째 집을 지은 것이라 한다.


죽향골 텃밭처럼 땅콩 한 골을 심겨 있었는데...

이곳엔 꿩새꺄들이 없나보다. ㅎ



마을과 떨어져 있어 적적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방해받지 아니하고 호젓해서 좋단다.


계곡 끝집이어서 집승피해가 없는지 질문드렸더니

개가 있어서 그런지 그런 피해는 없다고...



70대 중반의 아저씨와 그 부인이 일군

산 속의 보금자리...



산쪽에 돌 벽을 쌓고 구절초를 심었나 보다.

사모님이 야생화를 무척 좋아하고...



씨앗을 구해 수시로 심고

가꾸며 지낸다고 했다.



야생화 씨앗도 판매를 하나보다.



물을 어떻게 얻는지 물었더니

윗쪽 계곡을 막고 파이프를 통해 공급받는단다.



지금 매우 가물지만 생활하는 데는

물이 부족한 것을 모른다고....



그렇게 대화를 한후 인사를 드리고 그 집을 나섰다.

금빛 마타리가 지천이다.



짚신나물이 저 처럼 크던가?



사랍문 밖 구절초 들을 보면서

계곡 쪽으로 내려섰다.



계곡의 개울에 물이 졸졸흐른다.

계곡에 가재들이 많이 자랄듯 하다고 얘기했더니.


자기도 그럴 것 같아 돌틈들 살펴 보았지만

가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었다.



개울 건너자 오르막 비탈이었다.

가뭄 때문에 가랑잎이 바스락 거리며 부서진다.

버섯같은 것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잠시후 조동방면으로 가는 임도를 만났다.

저 임도따라 주차된 차로 그냥 갈까도 생각했으나


그러긴 뭔가 아쉬우므로

힘이들더라도 더 윗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오른쪽 절벽 바로 위는 위험해서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장소다

그런 장소를 살피며 내려 가자.



덕분에 얼마 전 득템한 피켈을 시험해 보고...



그러나 경사가 심해서 위험했고

그럼에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저거 어린 참나무 같은데... 그곳의 버섯?

식용 버섯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연거푸 몇개가 있어서

일단 따서 주머니에 넣었다.



때깔을 좋은 것 같은데...

못먹는 것이라면 버리면 되는거고...



그러나 거기까지가 끝이다.

주차한 차량으로 투벅투벅 걸어갔다.


때마침 앞차 버섯꾼들이 하산을 한 것

수확이 있었는지 몰었더니 '조금' 그런다.


하여 버섯구경을 하자고 했더니

네사람 중에 두 사람만 수확이 있다면서


주섬주섬 꺼내 놓은 능이

온 산 속을 헤매며 찾은 것이라 한다.


어디서 딴 것인지 물었더니

설래설래 고개를 흔들면서 나를 만류한다.



하여 산막리를 되돌아 가는 길

내비에 양강면 지촌리를 입력시켰다.



거리는 10키로 남짓, 30분 정도 걸린단다.



지난 번에 보이던 빨간 사과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미 수확을 했나 보다.



산막리 마을 초입 복숭아 과수원,

할머니께서 복숭아 담은 상자 옆에 앉아계셨다.



측은지심이었을까

지나친 길을 몇심미터 후진해 할머니 앞에 세웠던 것,


저기 저 복숭아 한 박스에 2만원을 달랜단다.

우리 서율이와 담돌이가 좋아하는 황도다.



그래도 너무 많다.

복숭아는 차례상에도 오르지 못하는 과일아닌가.


게다가 상자에 놓인 것은 무른 것이 섞여있었다.

값을 고사하고 무른 것은 질색이다.


하여 할머니께 제안을 했다.

할머니 우린 두 식구래서 저 것은 너무많아요.


그리고 무른 것이 있으면 사다주고도 욕먹잖아요.

조금이어도 좋으니 성한 걸루 만 원 어치만 주세요.



하여 할머니는 박스에 나무에서 새로딴

복숭아를 담았고 몇알은 양동이에서 꺼내 담아 주셨다.

훈훈한 영동의 인심을 느끼기 충분했다.



 

그 과수원 앞 길의 감나무,

잎이 병해없이 참 성했고 열매도 믿음직 스러웠다.



그러나 잠시후 보이던 저 감나무...

역시 벌써부터 단풍이 들고 열매가 붉어 보였다.



뒷 칸에 실은 복숭아도

상처가 났거나 무른 것이 보였는데...


아마도 상품가치가 없는 것을 두었다가

덤으로 주신듯 하다.


할머니의 따스하고 고마운 마음이 느껴진다.

며칠지난 다음 이 글을 쓰므로 후일담을 얘기 한다면...


복숭아는 며칠동안 뜨거운 차 속에 있었고

운행 중의 흔들림 등으로 성치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성치못한 것은 버려지고

나머지 알맹이를 골라 냄비에 끓여져 냉장고로 향했다.

황도 통조림으로 변신했다는....



암튼 산막리를 떠나 지촌리로 향하려 한다.



산막리를 벗어나 남전리쯤 되었을까




사과밭 울타리에 심긴 수세미가 보기좋아 찰칵~~^^



저 앞쪽 도롯가 집, 그 집의 감이 많이도 달려있다.

부녀지간에 감 따는 풍경이 보였다.


도시에서 공부하다 고향에 추석쇠러 온 딸을 위해

감 홍시를 따 주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지촌리로 들어 가는 길이 이 부근에 있나 본 데

내비양은 찾지못해 헤매고 있다.



내비가 헤매는 덕분에 모처럼 내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지 싶다.


가까이 보니 손녀 인지도 모르겠다. ㅎ



분명히 지촌리 가는 길이 근처 같은데

내비양은 갈팡질팡...할 수 없이 어르신께 여쭈었더니


보지도 않고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손짓을 하셨는데..

아마도 나 처럼 헤매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하여튼 감사요~~

모델해 주신 것까지 따블로요~^^



덕분에 지촌리로 들어 섰다.

마을 유래는 살필 틈도 없이 패쑤~



들녘 꼬부랑 길을 지나자

잠시후 우측편으로 저수지가 보였다.




지촌리에 있으니 지촌저수지란다.



산막저수지 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아담했다.

그리고 멋졌다.

틈을 내 저 물에 손을 담가 봐도 좋은텐데...



큰 길을 따라 마을 윗쪽으로 계속 갔다.

길 옆은 작은 개울이다.



이 곳에도 임도가 있을까 계속 올라 가는 길

어느 신축 주택 앞에 개가 막아선다.




두 마리 였는데

흰녀석이 먼저 짓어대며 차 옆까지 다가섰다.


차 밑으로 들어갔나 싶어 진행하지도 못한채

정차하고 있었다는...



기어코 끝부분인 듯한 곳까지 올랐다.

더 오르면 돌아나오기 힘이 들 것 같은 길..



하여 개울을 가로지른 포장 길에 정차했다.

윗 옷을 훌훌 벗은 뒤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으며....

물론 면도까지 하고서 스킨도 발랐다.



버너를 꺼내 커다란 바위에 올려 두었다.

바위 옆에 자라는 여꾸는 꽃이 피워 바위에 머리를 두었고

여꾸씨가 한움큼 떨어졌다.



씨앗 색깔이 흰색과 빨강색 그리고 섞인 것....

여태 여꾸 씨앗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새로운 발견이다.

저 것에도 독이 있으려나?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불을 당겼다.

밥이 끓면 아침에 남겨둔 올뱅이국을 끓일 거다.



개울의 풀이 화초 처럼 보기 좋다.

웅덩이에는 버들치들이 놀고 있었다.



압력솥이 칙칙폭폭을 시작할 즈음 뱀이 보였다.

물가에 개구리를 찾으러 왔나?



물자주인 줄 알았는 데 다시 보니 독사같다.



개울 안을 살펴도 개구리는 안보이고

녀석 혼자 같다.



근래 보이지 않던 뱀을 이따끔 보인다.

그만큼 환경이 개선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른 다른데로 가 임마...

다른사람이 보면 잡으려 들지도 모르잖어~~^^


식사를 하면서 밥한 술을 떠

개울에 고수레를 했더니 버들치들이 서로먹으려 야단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제법 큰녀석들도 있었다.

사진을 못 남겨서 아쉽다는....



식사를 하는동안 트럭 한 대가 인근에 도착했다.

정차를 했고 운전자는 슬리퍼를 신은채로 산을 향한다.


나더러 이곳에 사는지 묻더니

자긴 어릴 때 자란 고향이어서 명절쇠러 왔단다.


식사후 설거지를 마칠 즈음

그가 내려오는데... 흐미 능이 두 개를 따오는 게 아닌가?


신기해 하는 나에게 지인이 알려 주더라면서

잠시 틈을 내었다며 불과 100미터 지점이었단다.


그가 떠난후 그 길을 찾아 올라갔다.

비탈이 매우 급했는데...그는 어떻게 슬리퍼를 신고 다녀갔을까


한참동안 헤매다가 발견된 싸리버섯..

노란 싸리버섯은 독성이 심하므로


삶아서 한참 동안 물에 울켜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도 좋다, 싸리 버섯을 직접 보는 것 만으로도...ㅎ



가뭄에 가랑잎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몇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미끄러지며 피켈을 나무그루터기에 걸었을 때

잠시 눈을 의심하였다.


능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가 딴 능이보다 작은 것이지만....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어번 추석때 내려와 송이와 능이 그리고 싸리까지

직접 보았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이 산 중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인가.

때마침 처가 장지의 일도 마쳤다는 소식이 왔으니 내려가자.



그렇게 지촌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

은퇴해 귀향한 사람의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까 개가 있던 집이다.




더 내려가자 우측 창 밖에 색다른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양다래 인듯 했고

굵은 줄기를 보아선 겨울도 끄떡없이 버티는 것 같다.



양강 지역도 상촌처럼 호도나무가 잘 자라는가 보다.

호도나무는 자갈이 많아 배수가 잘되는 땅에


잘 자란다고 말씀하셨던 기억...

좌측에 쌓인 돌무덤이 이를 증명하는 듯 하다.



당곡리 처럼 지촌리까지도

정기적으로 버스가 들어 오나 보다.



지촌리 저수지를 지나는 길

파란 물빛이 그만이다.


단풍아래 펼쳐진 저수지를 상상해도

멋질것 같네...ㅎ



읍내로 들어왔다.

영동한과집을 찾아 한과를 몇상자 사러 가는 길.


역시 송이할머니는 안계시고

국화 화분들만 잔득 놓여 있었다.



부모님 산소에 두개쯤 놓아도 될텐데...

가뭄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다.



작은 읍내 인데도 교통체증이 만만치 않다.



- 2015. 9. 27. 일요일-


어젯밤 우리5형제 가족이 큰댁에 다 모였다.

옆지기는 차롓상 탕국에 넣을 버섯을 손질해 달랍신다.


직접 채취한 송이와 능이를 탕국에 넣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쿨러에서 능이와 송이버섯이 꺼내지고

먼저 송이를 손질하고 능이까지 정리해 큰형수께 드렸다.



추석날 새벽쯤 오실 줄 알았던 대전 형님네 가족(10명)이

늦은 밤에 갑자기 오는 바람에


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갑자기 텐트를 펼쳤다.

경사가 심한 집 옆이어서


수평을 맞추느라 벽돌과 합판을 동원하여

뒷쪽 바퀴를 고이는 작업을 해야했다.



고향집 대문 밖의 감이 얼마전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단풍이 든다고 걱정하는 큰형님...

올해 곶감은 틀린 것 같단다.



대신 호두와 대추는 대풍이라는....

대추가 저리도 크고 설탕보다 달 줄은 몰랐다.



먼저 육촌 형님댁에 차례를 지내러 갔다.



화초를 잘 가꾸시는 형수님,

꽃에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먼저 11분의 조상에 차례를 올렸다.



그리고 두번째 우리집에서는



우리 부모님 두 분께 차례가 올려진다.



세번째 차례는 막내 작은 집

올해도 마당에 이쁜 꽃들이 저절로 피어났다.




특별히 가꾸지는 않지만...

마당을 쓸면서 다칠세라 애지 중지하고



조금 귀찮더라도 뽑지 않았을 것 같다.



일가 친척들이 속속 도착하면

차례는 시작된다.



세번째 집 차례에는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촌형님께 올린다.


큰 집 차례는 서울 5촌 조카네로 가고

큰작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전 4촌 형님께서 차례를 드린다.



그렇게 차례가 다 끝났다.

막네 작은집 의 작은 형수와 제수씨가 마당에 섰다.



이천 형수도 함께 서시오...ㅎ




두 분이 함께 서 보셔요.

두 분 참으로 고우십니다. ㅎ



다시 한번 클로즈업~~^^



작은집을 나서며 봐도 멋진 마당이다.



그렇게 차례를 마치고 이제는 성묘를 갈 차례



고향마을에서 10여리 떨어진 전주동 선산으로 가는 길

마을 입구에 커다란 탱자나무가 인상적이다.



노란 탱자들이 많이도 매달렸다.



가뭄이 심하지만 벼이삭을 보면 풍년이다.



맨아래 부모님 산소로부터

윗쪽으로 오르면서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 등 일가들 산소를 빼놓지 않는다.



상석 옆에 파란 벌레가 날개짓을 한다.

처음보는 벌레가 신기했다.



건너편 선대 묘소까지 성묘를 드렸다.

건너편 느티나무는 볼 수록 멋진 나무다.


그 아래에 굴삭기가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 집을 지으려는 모양이다.



주차장으로 내려 가는 길...

누군가가 해바라기라고 했던 뚱딴지꽃이 예쁘다.



효자문은 작년에 단청공사를 했다는데

벌써부터 옆부분의 칠이 벗겨지기 시작하는 것이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하다.



두번째 성묘장소는 다시 10리 떨이진 수릿골이다.

큰아버지 비석에 바위 옷이 많이 자랐다.



그렇게 2015년 추석, 고향 행사를 마쳤다.


이제는 장인어른이 계신 논산 천사요양원을 찾았다.

처가식구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싶어하셨으나



처당숙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문병하는 것으로 대체된 것이다.



처남들과 처제들이 함께한 문병...

그곳에 계신 어른들이 그린 그림인듯...



부부가 함께 와 있는 분도 계신가 보다.

요즘 노후엔 대부분 요양원을 선택한다고 한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듯이...

그만큼 모시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부모와 자식 입장에서도

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편하고 깨끗해서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한다.



함께 계시던 장모님은

잠시 병원에 입원해 계신단다.


서로 떨어져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곧 호전 될 것이고 함께하길 기대한다.


귀경하면서 중간 루트를 죽향골로 정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정체로 죽향골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 2015. 9. 28. 월요일-


매번 텃밭을 방문할 때마다 하는 일...

물주고, 풀뽑고 ,비료주고, 농약치고, 수확하고...등등

아침 일곱시에 거의 마쳤다.



찜 할 어린고추를 수확해 가진다.



비닐하우스 안이래서 그런지

고추 나무의 키가 2미터에 달하고 계속 자란다.


다음에 오면 지주대를 더 높혀야 할 것 같다.

그냥 두려니 일주일에 두번 쳐 주는 농약 살포 작업시마다

가지 부러지는 불상사가 빈번해서다.



아내는 농약 효과가 별로라면서

몸체를 뚫고 나오는 고추를 따서 내게 보여준다.


한구멍으로 뚫고 들어가서 할 짓을 다 한 뒤

다른 곳으로 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이라는 거다.



구멍이 있는 고추가 부지기수다.



얼마 전부터 구멍이 있는 고추는 모두따서

폐기처분을 하지만 계속 나타난다. ㅜㅜ



이른 아침 시간 이래서 고속도로 소통이 원할하단다.

그래서 죽향골을 나서며 귀경을 서둘렀다.



면천 IC를 들어서 고속도로에 합류하지만...

도로는 정말 한산하다.


 

서해대교 부근에 조금 정체가 있었으나



규정속도는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가위 여정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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