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 영동 ] 내 고향땅을 밟다

재넘어아재 2012. 7. 16. 18:59

 


내 고향 땅을 밟다

2012. 7. 14.~7. 15.

 

어머니 기일을 맞아 귀향을 했다.

 

아내는 식구들과 합류해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산책을 나섰다.

 

최근 준비된 우리 형제의 산소를 둘러 보고

이미 폐교됐지만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 길을

돌아 볼 계획이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고

구름은 끼었지만 고향 땅엔 비가 내리지 않고 있어서

우산들고 마을 뒷 길을 걷구 있다.

 


고향 동네는 안마(안쪽마을?)와

바리미(바깥마을?)로 나눠 불리워 지는데

 

안마에서 바리미 방향에 접어 들자

진문이네 뒷밭이 보였다.

 

옥수수가 자라는 저 밭에는 몇해 전까지 포도가 심겨 있더니

어느새 과수로 바꿔 심겨 있다.

 


방구 집(집안에 바위가 있었을까?) 둘째가 귀향을 하여

저수지 아래에 집을 지었다더니...이제야 본다.

 


이내 도착한 저수지엔 흙탕물이 가득했다.

저수지 좌측으로 오르면 붐무골(?)이고 더 오르면 갈림 길이 나온다


좌측의 길을 통해 여수골(옛날 여우가 많았나 보다)을 지나면

섬느니(?)로 넘어가는 길이 나오고...

 

오른편 고개를 오르면 부릉리(?)로 갈수 있는데

이들 길을 통해 인근마을에서 면소재지의 중학교를 다녔다.


그렇지만 오늘은

초등학교와 사당골 방향으로 가는 우측 뚝방 길로 간다.

 


뚝방에는 여수로가 시설돼 있어

연못 물이 수로를 통해 아랫마을까지 공급되는 것인데


연못 아랫쪽에 바리미가 보인다.

이따 되돌아 올 때는 저기를 거쳐야 겠다.

 


저수지 옆을 지나 사당골(사당이 있었나 보다)로 향한다.

초등학교 등하교 때 거치는 저수지 길 인데

저 장소에 도착하면 잠시 쉬면서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 위에 빛나는

햇빛을 자주 봤었다.

 

때로는 억새풀을 한줌가득 뽑아 쥐고

저수지 위 하늘높이 던지기도 하였는데...

 

화살처럼 물 속으로 떨어지는 광경에

희열을 느꼈으며

 

더울 때는 친구들과 책보를 벗어 던지고

몰래 다이빙을 하기도 했던 장소이다.

 


행식이네 밭은 복숭아가 익어가고 있다.

그 형 본지도 참 오래됐네.

 

여기서 누구네 하는 것은

어른들이 부르는 이름을 기억해 표기한 것임..ㅋ

 


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포장이 돼 있었다.

좌측 작은 언덕 고갯 길에 서낭당이 있었으며

 

서낭당 고개를 넘을 때마다 돌을 무더기에 하나씩 던졌는데

그래야 오래산다고 형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학년일 때는 액면 그대로 믿은나머지

서낭당이 근처에 오면 미리 돌을 준비하기도 했었던 기억...

 


잠시 우측으로 빠진다.

사당골 우리 밭으로 가기위해..

 

그 밭에 우리5형제 산소를 만들어 놓았단다.

주위에는 온통 단호박이 심겨 있었다.

 


조성된 산소들,

내 어릴 때 어른들이 사후를 대비하여


자기가 뭍힐 장소를 스스로 준비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 했었는데...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음 일까

거부감이 생기지 않네...

 


여기도 고라니가 출몰하나 보다.

 


파노라마로...

 


우리 아이들이 오기엔 너무 멀다는 아내도

보면 만족할 것 같다.

 

다섯개의 가묘 중 가운데가 큰 형님 것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좌측부터 큰형님 끝이 막내 것으로 변경되어

나는 가운데에 위치하게 됐다.

 

다시 초등학교 길로 접어 들었다.

옥희네 부모 산소인듯..

 

초등학교때 목화를 심던 밭이 산소부지로 바뀌었다.

농토가 가치를 상실한 시대에 우리가 있는 듯

 


어느덧 서낭당 옆길을 통해

재실(옛적에 제사때 쓰는 집이 있었나 보다)로 넘어 왔다.

 

학교 길은 수풀이 우거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실은 금굴(옛 광산 자리)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금굴이라 부르지만 수정광산이 아니었나 싶다.

차돌 같은 광석에 아주 작은 수정알갱이가 수없이 박혀있는

돌조각이 널려있는 그곳에 들어가면

 

여름이면 시원한 기운이 감돌고

겨울엔 따뜻함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굴 아래는 물이 고여 있었고

 

목이 마르면 그 물을 마시곤 했었는데

그 물맛이 달았던 기억이다.

 

암튼 그 길을 가지 못해

아랫 재실 길을 걷는다.

 

논경지만 있던 있던 아랫 재실 그 곳엔

커다란 우사가 들어서 있었는데...

 


거기엔 목마를 때 찾던 샘물이

지금도 있을까 궁금했었다.

 

그 샘물(그땐 둠벙이라 했었다)속 아래 몇군데에서

지하수가 화산처럼 솟아나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죽끓듯 솟아 오르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것을 보는 어린 눈은 신기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미 가재와 아기 가재들이

굴을 파고 놀기도 하였던 장소여서

 

업드려 물에 입을 대며

물 속을 들여다 보면서 가재를 어찌하면 잡을까 하고

연구하곤 했었다.

 

그러한 생물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곳은 없어지고 우사가 들어서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는..

우사 아랫 논둑 풀을 깨끗이 베어 놓았다.

 


천작리 방향에도

무슨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뒷 편에 상표네 밭이

있었던 골짜기가 보인다.

 

전봇대가 있는 그 고랑 어디 쯤에

등하교 하며 이용하던 그 길이 숨어 있을 듯 하지만...

이제 그 길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길을 내려 와 논둑 길을 지나 작은 도랑을 건너

저 학교를 다녔었다.

 

함석지붕이던 학교는 벽돌집으로 개량되었는데...

벌써 50여 년 전의 얘기다.

 


가까이 당겨보자 플라타너스가 3그루 였는데...

2그루가 안보인다.

 

 

도랑가로 길이 포장된 농로가 보인다.

아마 동문동까지 뻗어 있는 듯하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가는 길

자두가 커 가고 있다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였고

강아지풀 위에 빗방울이 튀었다.

 


산골 등하교 길을 자꾸만 찾고 싶었지만...

반대편에서도 우거진 숲길을 갈 수가 없었다.

 


포도 밭에서도 빗소리가 컷다.

 


다시 서낭당 길을 돌아

옥희네 부모 산소 앞을 지난다.


주변엔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어

먼훗날, 편백나무 숲으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ㅎ

 


서낭당 아래에서 사당골을 본다.

옛적엔 감나무들도 키가 작아 작물들이 잘 보였다.

 

밭에는 보리가... 논에는 벼가 심겨 있었다.

바람이 불 때면 밭과 논에 심겨진 수많은 작물들이

파도처럼 물결을 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백화산에 구름이 잔뜩끼어 있다.

흐릴 때 자주 볼수 있는 풍경..

 


저수지를 지나... 바리미로 향한다.

거기에는 백련이 있기에...

 

가는 길에 버려진 복숭아 밭이 보였다.

애써 심은 과수를 방치하는 마음을 어떨까..

 


구돈이 형네 집 부근

연밭에 도착했다.

 


개화기를 벌써 지난 듯

연밥들이 무성했다.

 


구욱이네 집 앞에

붉은 꽃이 보여서 가 봤다.

 


건너편을 보면서 파노라마로 찰칵

 


연잎에 튀는 빗방울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정자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얘기를 나누는 기쁨은 시골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닐까

 


초등학교 동창 성용친구도 만나고

동네 어른들을 뵙고 인사를 나눴다.

 

어머님을 기억하는 저 분들은

어머니는 마늘을 수확해 엮어 벽에 걸 시기에

돌아가셨다고 회고 하신다.

 

마늘을 수확해 마당에서 엮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노라고 소회하시는

어른 들께 하직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한다.

 


다시 연밭을 한번 바래다 보았다.

 


아까 저수지 부근에 새로 집을 지은

그 형이 어릴 때 살던 집이다.

 

그렇지만 그집에는

타지에서 온 사람이 산다고 한다.

 


엣부터 시골 마당은

운동장처럼 흙이 보통이었지만

 

요즘은 잔디와 화초를 기르는 집이

많은 것 같다.

 


옥수수가 심어진 우리 밭을 지나

 


뒷문으로 향하는데...샘이 보였다.

단기 4293년이니까 50여년 전인 서기 1960년 이었구나

 

그 전에는 바가지 샘이었다가

나중에 낭간을 만들었다.

 

끈 길이가 1미터 남짓되는 두래박으로

물을 푸기 때문에 다른집들보다 물깃기가 숼하였고

샘물은 구멍을 통해 넘쳐흐른다.

 


그 당시 초가집 였지만 벌써부터 현대화 됐다.

옥상으로 가 보자.

 


좀 전에 본 옥수수밭과

그 옆 고구마 밭에서 줄기를 따는 가족들

담장 안에는 장독들이 놓여 있다...ㅎ

 


웃샘골에 지어진 새 집들...

저들 때문에 우리동네 땅값이 올랐다는..ㅎ

 


자정이 다돼 제사를 지내고

 

 

그 후엔 자고 올라가라는 형님의 말씀이 계셨지만

우리는 야영 장소인 송담사를 찾았다.


사진 아랫 부분이 노란 것은

가로등 불빛 때문인듯.

 

노송아래 텐트를 쳤기에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로 수면 지장이 있었다.

우중에 노송아래 무척시끄럽다. ㅜㅜ

 


새벽 다섯시쯤 깨어나 보니

강물이 많이 불었다.

 


빗 속에 어둠이 점차 겉히지만....

 

 

소강상태였던 비는

더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철거를 해야 하는데...

그쳤으면 좋으련만...점차 강해지는 빗줄기..

 


박달산은 산안개로 가려졌고

앞쪽 강물은 붉은 흙탕물이었다.

 


커피를 끓여야지...

 


점차 날이 밝아오면서

인근의 펜션에 놀러온 사람들이 물가로 나왔다 .

 


작은 폭포도 있었네...

이마을이 고향인 아내도 저런 것은 처음 봤단다.

 

심천의 옥계폭포가 볼만하겠다.

물이 많을 테니까..ㅎ

 


아내는 처제네와 아침을 함께 먹기로 하였단다.

하여 잠시 소강상태 일 때 제빨리 텐트를 접었다.

 

그리고, 읍내 처제네로 가는길, 

자칫 물이 더 불어... 도로가 침수돼 고립될 뻔하였다.


치킨 집 전화번호가 저기에 쓰여 있는 것은

저 장소가 낚시터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들어 올때도 10명 남짓한 조사들이

지렁이를 꿰 빠가사리를 낚고 있었다.

 


19번 국도에 올라

야영을 했던 송담사를 보면서 찰칵~

 


윗 사진 표시판이 있는 장소가

원래 처가집 과수원이 있던 곳인데...

 

군청에서 공사를 한 이후에 강물이 깊어져

경운기가 건널 수 없게 돼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단다.

 


솔티재를 넘다가 심천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옥계폭포를 보고 가기로...

그 길 가에 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라지 밭을 만났다.

 


경부 고속철도를 지나고

 


길가에 붉게 익어가는 복숭아를 본다.

얼마나 일손이 부족했으면 봉지를 씌우지 못했을까....

 


옥계폭포에 이내 도착했다.

새벽이래서 사람이 적어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우산을 들었지만

물보라가 렌즈로 튀어 오른다.

 

 

옥계폭포 설명, 저 글을 읽고 설명을 하려 했었는데,

시간이 없어 사진을 남기니 이해하시길...

 


그런 옥계폭포를 나오며 찰칵하고

 

 

처제네로 가는 길...

새벽이래서 아무도 없다.

 


폭포아래 소형댐 아래도 장관

 


영동으로 가는 4번국도를 지나다

양강교에서 멈춰서서 불어난 강물을 보았다.

 


폭포다녀 온 얘기를 들은 동생네도

처제네도 폭포를 보고 싶단다.

 

하여 점식식사후에 다시 찾았고

동생네 기념사진을 남겼다. .

 


다시 종 방향으로 찰칵~~^^

 


새벽보다 물이 맑아진것 같다.

 


다시한장 찰칵...^^

 


구경꾼들이 참 많았다는..

 


하여 좁은 길 운전에 능한 사람이 아니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진입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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