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이야기

[ 영동 ] 송호리 지나 월류봉에 텐트를 펼치다

재넘어아재 2017. 5. 9. 18:43




[ 영동 ] 당진에서 서울거쳐 고향까지

< 2017. 5. 2. ~ 5. 3. >


어제는 5월 1일 근로자의날이었다.

딸아이 식구들이 죽향골에 왔고 내게 도울 것이 없는지 묻기에

참죽을 채취하라며 사다리와 고지가위를 쥐어 주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사위와 딸이 번갈아 사다리에 오르더니 수확을 제법 잘하였다.


그 나무는 앞집 할아버지께서 그들의 집 뒷편에 심은 몇포기 과수중 하나로써

심은후 지금까지 수십년이 흘렀을 듯 싶다.


그런데 그 나무들은 우리가 구입한 밭에 있는 것으로

우리가 밭을 구입한 후 몇년 동안 보아도 그냥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소유권이 아리숭해서 전공인 아이들에게 물어 보자

아이들이 즉답하길 남의 땅에 심은 곡식은 심은 사람의 것으로 심판하지만


수목의 경우에는 부지 소유자의 것으로 판정한다며,

부지 소유자인 아버지 뜻데로 처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그렇지만 얼마전 할머니를 미리 찾아 뵙고

방치하는 나무를 앞으로는 우리가 관리하기로 협의했었고.


게다가 법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하니 참죽을 부담없이 채취하기로 했다,

채취한 참죽은 할머님과 나눔을 하면 더욱 부담이 없겠다.


내 물음에 아이들이 즉시 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자기들이 시험공부할 때 자주 등장하였던 문제유형이 아닐까 싶다.


그날 아이들이 떠난 죽향골,

우리는 아이들이 채취한 참죽나물을 펼쳐놓고 다듬었으며,


억센 것에서 홅은 잎은 데쳐 말려두었다가 볶아 먹겠다는 아내,

나머지는 순한 것만 골라 장아찌를 담겠단다.


우리는 여태 참죽장아찌는 잎을 살짝 데쳐

순수한 고추장과 버무려 보관하는 방법으로 담구었지만


언젠가 TV방송에서 보니

우리와 많이 다르게 담더라고 옆지기에게 넌즈시 말했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한 것은 매년 아껴 먹는 참죽장아찌가

일년이 못돼 곰팡이가 슬어 못먹고 버리는 경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내는 자신이 과거방식으로 절반을 담을 테니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TV방식으로 답으라며


다듬은 장아치용 참죽의 절반은 죽향골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싸서 집으로 가져 왔다.


그날 저녁 참죽잎은 뜨거운 물에 데쳐 건조기로 들어갔고,

장아찌용 참죽은 내일 아침에 작업한댄다.


- 5. 2. 화요일 -


옆지기가 공작선인장이 꽃을 피웠다며 나를 깨웠다.

진짜로 공작선인장이 근사하게 꽃을 피웠다.


평상시 볼품이 없어 푸대접을 받는 공작선인장

꽃이 없을 때는 잘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위치하지만...

꽃이 피면 잘 보이는 곳에서 대접을 받는다.



깔끔한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이 개봉되고

빈 김치통에 담겨있는 데친 참죽나물 위로 쏟아 붓는다.

그리고, 이리저리 버무려 주는 옆지기


양이 많아 고향의 가족들과 나눔을 해도 좋겠다고 흥얼거렸다.

암튼, 향기 좋고 맛도 일품이라는...



내일은 사월초파일 석가탄신일

우리부모 제삿날로 정해진 날이어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내는 고향에 가려들면 D-day 하루 전엔 귀향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주된 이유는 동생인 처제네를 들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날 서울을 떠날 때부터 하늘이 뿌옇다.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많겠다며 주의보까지 내렸다.


그렇지만 대전을 지나자 깨끗해 보이는 산하,

아내를 처제네에 실어다 준 뒤 나혼자 시장쪽으로 향했다.

먼저 하상주차장에 차를 댄 후




생강씨를 좀 사고, 옛부터 있던 철물점에도 들러

가마니용 바늘이 있는지 찾을 것이고 대장간이 있다면 손도끼도 하나 사려한다.


시장 한 켠에 커다란 함박(물통?)에 연탄이 쌓여 있다.

왜 저렇게 뚜껑을 열어 두었을까



채소를 파는 곳으로 향한다.

전통시장 안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생강씨앗은 장날에 와야 한다고 상인이 귀뜸해 줬다.

영동장은 4일과 9일에 열린다.


제사를 지낸후 다음날인 4일은 육종연구회 회합이 있어

상주에 다녀와야 하는데 그날 오후에 시장을 다시 찾아야겠다.



이 큰 전통시장에 생강씨앗이 없다니....

농약사를 찾아보기로 했고 그리고 가는 길이다.


대통령선거 벽보를 지나 또다른 벽 아래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구기자, 상추, 고추 동굴레...


그 옆 수국과 상추, 가지와 상추 달레, 나머지도 고추와 상추

뒤죽박죽이지만 정겹기만 하다.




대풍농약사, 농약보다 모종이 인기만점 인듯..

모종사러 나온 사림들이 많았다.




시장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길...




옛군청 건너편 하상주차장 부근이다.




중학교 때 군청뒤 누님댁에서 학교를 다녔었다.

집에 책가방을 던지고 냇가에 나와 물고기를 구경하곤 했었다.


그때 같은반 상욱이라는 친구가 인근에 살았고

그 친구는 낚시를 넣자마자 피라미가 낚이는 것이 신통했었다..

그때 잡히던 피라미가 저기에 많네..ㅎ



그 아래에는 돌고기들이 몰려 다니고 있다.

내가 돌고기를 처음으로 봤을 때 주둥이가 꼭 상어를 닮아

상어새끼인 줄 알았었다.



생강씨, 손도끼, 가마니 바늘을 사려고

몇군데를 다녔으나 구입하지 못했으니 장날 다시 찾기로 하고


오늘밤 한뎃잠을 잘 수 있는지 송호리를 염탐하기로 했다.

하여 양산 송호리솔밭으로 갔다.



캠핑을 시작해 두 번째로 많은 캠핑을 한 송호리솔밭




휴일을 앞두고 몇대의 캠핑텐트들이 설치돼 있고

계속해서 입장객이 들어오는 중이다.



한 때 나도 저런 시기를 거쳤다.

캠핑하는 생각에 넘쳐 매주 야외로 나가는 꿈을 꾸곤 했다.




저 아이들도 아빠와 캠핑하는 것이 꿈만 같을 거다.



물이 아직 차가울 텐데...다슬기 잡는 가족이 보였다.



솔밭의 강변 안쪽은 송림으로 유명하지만..

계단쪽에 열지어 서있는 저 나무가 더 유명하지 싶다.



사람들은 저 다단풍나무 그늘아래에서 조용히 보내며

이곳 송호리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주차장에서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가까운 송림을 지나쳐

힘들게 강변까지 짐을 옮겨야 자리를 잡는다.



어떤 이들은 송림을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다른 어떤이는 중간을 택하기도 하는 듯,



캠핑장비 중 최고로 치는 스노우피크...

일본놈들을 몹시도 싫어하지만 녀석들 장비 하나는 똑 부러지게 만든다.

조그만 하자가 발생하면 그 즉시 새 것으로 교체해 준다.


저기 설치되고 있는 랜드락과 렉타타프

웬만한 가족이라면 더 바랄게 없을 정도지 싶네..




랜드브리즈에 헥사타프...

핵가족이 지내면 좋은 사이즈다.




이봄이 지나고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겠지

그때 저 다단풍나무가 더욱 돋 보일 거다.



물론 겨울이 되면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줄기만 남게 되지만...

방문자에겐 그것 조차도 멋있게 보인다.



강변을 향해 180도 파노라마를 시도하고



이에 도취돼 360도 파노라마까지 남겼다.



저렇게 설치하려면 리어카로 짐을 몇 번이나 옮겨야 했을까



다단풍나무 아래 뚝방에 노란 꽃들이 피었다.



그 아래 경기도 광주에서 오셨다는 분,



그 옆에는 용인에서 오셨다는 가족도 있었다.

그렇지만 저기 아가씨들에겐 못 물어 봤네...




구역 번호가 없는 곳이 있는 것을 보면

먼저 자리를 잡는 이들이 우선권이 주어지겠지만...

어떤 곳은 예약을 해야하는 듯 했다.



캠퍼들이 계속 입장하는 것을 보면

저녁 때 쯤엔 캠핑텐트 백 동쯤은 세팅되지 싶다.


영동은 남한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국모임이 성행하는 장소이고

이곳 송호국민관광지가 대표적이다.



휴일인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이 이어지는

오월의 황금연휴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 야영해야 할 것 같다.



다시 영동읍내로 돌아 가는 길..

지방도에서 19번 국도에 오르려 할 때


호도과잣집이 보여 잠시 멈추고 몇상자를 샀다.

포장후 영동산 호도를 사용했는지 물었더니 수입산을 쓴단다.


국산호도를 사용하려면 가격이 곱절이 되야 수지가 맞을텐데

누가 그 가격에 사먹겠냐며 반문했다. ㅜㅜ



체제네에 들러 올뱅이국으로 저녁식사를 한 다음

아내와 함께 황간으로 향했다.


백화산 반야사 입구에서나 월유봉이 보이는 곳에서

한뎃잠을 자고서 다음날 새벽 텐트를 걷는 즉시 고향집을 찾기로 했다.


평상시 같으면 몇 대쯤 보이는 차량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야영을 해도 되겠다고 아내는 중얼거린다.



이곳이 좋은 것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수세식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어서 여자의 입장에선 편리한 곳이다.


당초 텐트를 세팅하려했던 장소에 왠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히 다가서서 무엇을 하는지 물었더니 별사진을 찍는단다.


카메라가 북극성을 향하는 것이 보통인데...

두 사람의 카메라는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어 그들에게 물었다.


지금 카메라가 북극성을 향하고 있나요?하고 묻자

그들은 그렇다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북극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초보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별궤적을 찍는데 수동으로 셧터를 눌러뎄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카메라 사용법도 잘 모르는 초보들이 확실했다.

주변 민박집에 머물고 있는 듯한 그들의 선생님이 등장하여


이렇쿵 저렇쿵 설명을 하였고 그렇게 찍어서는 안된다며

이따가 다른장소에서 찍을 요량으로 철수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떠난뒤 우리는 텐트를 이동시켰고

멀치감치에 발전기를 두었는데 그때 시각이 밤 10를 넘어서였다.



일교차가 커서 밤에는 기온이 매우차다.

게다가 너무 어두워 핸펀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 한계가 잇다.



고요한 월유봉 멀리에서 발전기 엔진음이 들린다.

우리는 자장가 삼아 따뜻한 침낭에 누웠다.


- 5. 3. 수요일 -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거리는 남자들의 소리에 깨어 났고

그때의 시각이 오전 3시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사람들 아까 사진찍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나도 잠시 차량 좌석으로 내려가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감도를 잔득 높여 삼각대 없이 찍으련다.



차량옆 난간에 카메라를 붙히고 샷터를 놀렀다.

사진 질이 좋지 않지만 귀차니즘으로 이정도 품질로 만족키로 했다.

사진 정보로는 3시 56분으로 기록돼 있다.



겉옷을 걸치고 장소를 바꾸었을 때 시각이 정각 4시



카메라 보다 어두운 내눈엔 아직 캄캄한 밤이지만...

훤하게 사진을 찍을수 있어 다행이다.


내눈엔 어두운 밤이지만

고향의 상큼한 공기가 가슴을 적셔줘 사뭇 행복했다.



점차 밝아지는 월유봉과 한천,

강 건너 월유정과 나란하게 텐트가 펼쳐져 있다.



조금만 몸을 녹혔다가 텐트를 접어야 겠다.

옆지기는 아직누워 있으면서 몇시인지 눈을 감고 내게 물었지만....

조금 더 자도 된다고 말해줬다.



옆지기는 아침 일찍 큰 집을 찾아 제삿상에 올릴 산적을 구워야 하고

형님과 아침까지 함께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점차 여명이 밝아 오고 아내는 세면하러 갔다.

나는 월유정 하류쪽 미류나무 단풍이들었을때 찾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해 아쉽다.




텐트를 내리고 발전기를 거두었으며 릴선을 챙겨 차에 실었다.

2007년부터 오토캠핑을 시작한 이후


10년동안에 270회의 캠핑기록이 있으나 올해들어선

겨우 3회째 한뎃잠을 잤다.

암튼, 야영을 마친 시각이 새벽 4시 30분 경이다.



월류봉 한천가든 앞을 떠나 고향집으로 향했다.

거리 12키로 정도이고 소요시간은 20분 정도면 된다.


길 중간의 용암리 마을에 이르렀을 때

부지런한 농부(여인)가 밭에 나와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섯시가 다 돼서였고,

지팡이를 든 빨간 바지의 정열적인 할머님 같다.



그렇게 무사히 그리운 고향집에 들어섰다.

이후 얘기는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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