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 경주 ] 찬란한 우리의 문화유산 불국사

재넘어아재 2016. 1. 11. 21:39


 

 

[ 경주 ] 세계문화유산 불국사 

< 2015. 12. 14. 월요일 >


- 겨울여행 2박 3일, 열한번 째 편 - 


'동궁과 월지'를 떠나 도착한 곳은 불국사 후문주차장

평일인 덕분에 주차가 쉬웠다.


아내와 처제 둘 그리고 나와 아랫 동서들을 포함해

여섯 명이 불국사에 들어서며 안내도를 보고 있다.


한국인 누구나 '경주'라 하면 떠올리는 곳이

'불국사'라고 할 정도로 가장 알려진 절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번이 세번 째 방문인 듯 싶다.

 



그렇지만 나는 불국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여 불국사에 대하여 백과사전을 인용키로 하되,


부족한 것은 다른 글을 참고하기도 했으나,

설명과 사진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았던 신라 사람들이 뛰어난 솜씨로

토함산에 정성스럽게 만든 보물이 바로 불국사,



불국사는 ‘부처의 나라’라는 뜻,

불국사의 여러 불상과 불당, 탑 등은 최고의 기술과 웅장함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보물이다.



특히 불국사의 대웅전 앞 동쪽과 서쪽에 각각 자리잡고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가장 유명한 석탑이다.


이 석가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그 뿐만아니라 또한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정문과 연결된

청운교와 백운교는 인간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이밖에도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 연화교와 칠보교,

사리탑 등 불국사 안에는 여러 가지 보물로 가득하다고 하는데...

다른 설명도 한번 읽어 봤으면 한다.



불국사는 경상 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절,

고려 시대에 만든 역사책《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절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이 세웠단다.


그러나 불국사의 내력을 적은 《불국사 역대 고금 창기》에 따르면

이 절은 528년에 세웠다고 전한다.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고,

문무왕 때인 670년에 무설전을 새로 지었으며,


751년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자료를 참고로 할 때,

불국사는 처음에 작은 규모로 세워졌던 것을

김대성이 크게 늘려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으면서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 버렸다.

그 때, 금동 불상과 옥으로 만든 물건

그리고 돌로 된 다리와 탑만이 불 타지 않았다는 것.



왜군의 방화로 불타 버린 불국사의 목조 건물들은

광해군 때인 1612년에 경루·남행랑·범종각 등이 복구되었고,

인조 때인 1630년에 자하문, 1648년에 무설전이 다시 세워졌다.


이어서 1659년에 대웅전이 세워지는 등,

순조 때인 1805년까지 40여 차례의 복원 공사가 계속되면서

안양문·극락전·비로전·관음전·나한전·시왕전·조사전 등이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면서

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복원 공사도 중단되었고,


이미 세워졌던 건물들도 낡고 파손된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일제 침략기를 맞았다.


1924년에 대규모의 보수 공사를 하면서

다보탑을 해체·수리하였다.


그 때 탑 속에서 금동 불상·사리 장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나 행방 불명되었고,


관련된 기록 자료도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이는 왜놈들의 짓이 분명하다.



그 후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하였다.

이 때, 그 때까지 옛 터로만 방치되어 오던 자리에


무설전·경루·관음전·비로전·화랑 등이 복원되고,

대웅전·극락전·범영루·자하문 등이 새롭게 단청되었다.



불국사 경내 면적은 38만 8,570㎢이며,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에 국보급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잘 알려진 문화재로는

국보 제20호인 '불국사 다보탑'을 비롯해



국보 제21호인 '불국사 삼층 석탑',

국보 제22호인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국보 제23호인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국보 제26호인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


국보 제27호인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

보물 제61호인 '불국사 사리탑' 등이 있다.



 

석가탑은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마주 서 있는

석탑 가운데 서탑으로 국보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가탑은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무영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금번 방문시 석가탑은 해체하여 복원공사를 하고 있었으며

사진을 남기지 못했으나 검색하여 발췌하였다.


석가탑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석가모니불을

탑의 양식으로 상징하여 불국사에 세워졌다.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물들과 함께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부처의 말씀을 정리해 놓은 불교 정전이다.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은 사람이 만든 인쇄물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이

나무(목판)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고,


직지심체요절은 금속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이것 역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다보탑에 대해 더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과는 매우 다른 이형 석탑이다.



불국사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2개 탑이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그 중 동쪽 탑이다.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하층기단의 4면에는 계단이 있고

양쪽에 난간의 석주로 보이는 유구가 서 있다.



상층기단에는 4개의 우주와 중앙에 탱주가 서 있으며,

우주 위에는 2단의 두공이 십자모양으로 놓여 있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려놓았다.


 


갑석 위에는 8각형의 신부가 3단 있는데

하단은 4각형의 난간 속에 별석을 돌렸고,


중단은 8각 난간 속에 죽절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상단은 8각 앙련 위에 꽃술형 기둥 8개가

8각의 신부를 돌려싸고 있다



모처럼 방문길에 세세히 살피는 세자매

처형과 동서까지 동행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여의치 않았다.



형편이 그런 것을 어쩌랴~



큰처남과 작은 처남이 있으나 역시 그렇다.



그래도 세 자매만이라도 이렇게 시간을 내고

짦은 기간이지만 여행을 해서 뜻이 깊었으며

행복한 마음을 가질수 있었다.



장인 장모도 함께하면 좋았겠지만

연로하시고 요양원에 계시기에 모실 수 없었다.



살다 보면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있는데...

그 중 시기를 놓치면 이룰 수 없는 일이 효도가 아닐까 싶다.



지나고 보면 마을을 고쳐 먹었더라면

함께 할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고 후회하는 일도 많다.


그러면서 나이는 차 오르고

나중에 어찌 할 수 없어 이쉬워 하는 것이 인생 같다.


불국사을 오기 앞서 관람하였던 동궁과 월지에서 본

궁궐터에 남아있던 주춧돌? 에 저처럼 나무기둥이 올려지나 보다.


기초와 나무가 맞닿는 곳은 비를 맞더라도

이내 건조될 수 있는 구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본 절 중에서는 가장 가치가 큰 곳이지 싶다.

요즘 절들을 보면 아주 커다란 석불을 세운다던지


금빛 불상을 언덕에 세우는 등

외적인 것에 치중하는 느낌이 정말 싫던데

불국사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없어 좋았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 역사를 배운 것 같은데..

자세히 배우지도 못했고 정확히 공부하지도 아니했다.


그렇지만 '절'이라 하면.. 불국사를 떠올렸는데...

이번에 불국사를 다시 살펴보면서...


그리고 사진에 토를 달면서

앞으로도 늘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민족이 지켜야할 찬란한 문화재임을 절감하면서

다음 여정(양동마을)을 잇기전 점심식사를 하러 출발하였다.



어젯밤 검색을 해서 겨우 알아 낸

경주 맛집 수가성을 찾았다.


주중은 예약을 해야 하지만 평일이기에

예약을 하지 않아도 식사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손님이 제법 있었으나 빈자리가 있었고.

그 덕분에 별 기다림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망서림 없이 주문되었고



이내 상이 차려지는 가운데 밖에는

예상하지 못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정을 조정해야 할 듯...

식사후 양동마을에 들렀다가

다 같이 장인장모 찾기로 했던 하나의 계획이고,


처제들이 어려우면 우리 만이라도 하루를 더 머물러

경주 인근 청도를 여행하려는 것 또한 힘들 것 같다.



이렇게 비가 온다면 이것도 저것도 힘든 상황

식사후에도 계속되는 소나기...

아쉽지만 이번 여정을 여기서 마치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소중한 또 하나의 추억이 쌓였다.

귀경 길은 341Km, 저 때 시각이 오후 1시 40분



귀가할 때까지 헤어짐을 아쉬워 하듯이..

내내 비가 내렸었다.




언니 회갑여행을 주선한

처제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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