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여행기

[ 중국 ] 북경 이야기

재넘어아재 2011. 11. 7. 17:52

 

 

중국여행 북경이야기

2011. 10. 26.~11. 2.

북경, 남경, 황산, 항주 북경


7박 8일 일정으로 중국(북경~남경~황산~항주)을 여행하였다.

중국 여러회사와 업무협의도 하였고 짬을 활용해 관광도 하였는데


그 때 찍은 많은 사진 중에서 알짜들만 모아 총4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그 중에 맨 처음(10. 26.부터 ~10. 28.까지)여행한 북경편을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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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알아 본 중국에 대해 예습해 주자.

함께한 동료가 모아 논 자료를 썼다. 서 따그~씨에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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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People's Republic of China)

 

 

위    치

아시아대륙 동북부

면    적

9,561,000㎢ (한반도의 43배)

기    후

대류성 및 아열대성

※ 10월 북경기후 : 11.4℃, 난징 : 15.8℃, 항조우 : 16.9℃ 

인    구

약 13억 5,414만 명(2010)

수    도

북경(Beijing, 인구 1,581만 명)

한국과의 시차

-1시간

 

정부형태

사회주의 인민공화제

국가원수

주석 : 후진타오(胡錦‘濤 2003.3 취임),

총리 : 원자바오(溫家寶 2003.3. 취임)

의    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주요정당

중국공산당 

 

GDP

58,786억 불 (‘10)

1인당 GDP

4,383불 (‘10)

화폐단위

위엔(元, RMB / 1元D = 190원)

산업구조

제조업 49%, 서비스업 40%, 농업 11%

경제적 강점

안정적․효율적인 정치․경제 시스템, 노동력 및 부존자원 풍부

경제적 약점

빈부격차심화 및 지역간 불균형, 인구고령화

수    출

1조 2,017억 불 (기계․전자제품, 섬유류 등) (‘09)

수    입

1조 41억 불 (기계장비, 일반금속, 등) (‘09)

교민

현황

총교민수

약 50만 

기업진출

KOTRA, LG전자, 삼성전자, 삼성반도체 등



 

[북경(北京, 베이징)]

 도시전체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3천년 역사의 고도이며 중국의 수도이다. 중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일 뿐만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 내려온 만리장성을 비롯하여 고궁, 이화원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거리들이 무궁무진하여 날이 갈수록 관광도시로서의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총 면적은 16,000㎢이며 서·북·동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가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한다. 또한 기후는 온난습윤하며 사게적이 분명하다. 봄·가을이 짧은 반면, 겨울과 여름이 비교적 길다. 연평균 기온은 13℃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506㎜이다. 인구는 약 1,600만 명이며. 그 중 시내에 거주하는 인구는 500만 명 정도이다.

역사

중국의 수도인 북경은 3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 전국시대에 잠시 연나라의 수도였다가, 원나라 때 몽고족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북경을 수도로 정한 이후 거의 1000년 동안 수도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오늘날의 북경은 발달된 현대적 도시이다. 중국의 정치, 문화, 과학, 상업 등의 중심도시이자 과거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어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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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러한 중국을 가기 위해 2011. 10. 26. 아침,

김포공항 국제선 2층 라운지의 출국 수속부터 시작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담당자는 아리따운 단안선씨

처음보는 성씨에 이름마저 단아하여 이번 여행이 즐거울 예감을 주었다.

 

 

앞좌석 등쪽에 모니터를 통해 안내를 한다.

몇년 전엔 앞쪽 벽에 큰 모니터로 안내를 하였는데...발전을 했나보다.

목적지인 북경은 출발지인 서울보다 1시간 늦고 거리는 1,000Km

 

여러번 출국을 해 봤지만 이른 아침출발은 첨인 것같다.

식사를 하고 왔는데 탑승하자마자 기내식이 나왔다.

 

 

두 시간 가량 걸려 북경공항에 도착,

공항은 북경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새로 지었단다.

 

한국의 인천국제공항 보다 나중에 지어져서 그런지 산뜻하다.

인천공항의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후문

 

 

인천공항에서 서울까지 가듯

공항에서 북경 시내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고,


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동하려는데

잠시 신호에 걸린 모습이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쾌속 질주

1차선 허용속도는 120Km/h, 2, 3차로는 100km/h 였다.


 

예약된 곳으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중국측 직원과 통역도 함께....

 

통역사는 북경에 사는 우리교민으로

한인 후세이며 50대 후반이나 명랑쾌활해

여행에 많은 도음을 주셨다.

 

 

식당에서 본 밖의 풍경

북경은 위도상 서울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지만 의외로 기온이 높았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에서 낙엽진 수양버들이 아직 파랗다.



컴퓨터 교육 모습인듯



업무협의 마치고 자유시간을 이용해

만리장성을 가기로 했다.


그 길에는 아카시아 비슷한 가로수로 많았는데...

통역사에 물어보니 확실하진 않지만 회나무일 것이란다.



그럼 만리장성에 대하여도 예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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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만리장성은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 체제가 낳은 싱징적 산물이다.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약 75㎞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팔달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으로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015미터이며, 산세가 험준한 편이다. 장성 위에서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 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길이가 5천만m에 이른다.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되자 점차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오늘날 말하는 서쪽 감숙성의 가용관(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만m 길이의 성벽은 대부분 명나라때 지어진 것들이며,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가드레일과 케이블카는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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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입구에 도착하여

시간을 아끼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기로


주중이어서 한가하고 기다림 없이 탈 수 있다고 했다.

저 멀리 산등성이의 만리장성이 히미하게 보인다.



약도를 보니 케이블카는 두개 노선이 있나 보다.



그렇게 케이블카를 탔다.

비가 오록가락해서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그렇지만 저 때는 비가 그친 상태



얼마만큼 오르니깐 만리장성이 보인다.

장대한 성곽을 깍아 만든 돌을 높이 쌓은 듯 보였다.


우린 지금까지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쌓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이전부터 여러나라에서 쌓아왔다고 했다.



패루계 백인처럼 보이는 여성관광객

아이패드인지 갤럭시탭 인가로 사진을 담고 있다.


담아서 곧장 어디로 전송하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데이터 이용료가 인터넷 한페이지를 보더라도

1만원을 상회한다고 한다.


사전에 종일 사용신청할 경우

SK에서 일일 11,000원이라해서

한국인들은 보통 출국하면서 아예

데이터는 끊는단다. 나역시도...



산등성이에 모택동을 칭송하는 글귀가 보인다.

북한이 "김일성 만세"라고 곳곳을 장식한 것처럼...웬지 거시기했다.



그 반대편의 만리장성

망원경으로 보면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 산 날망에도

장성은 이어져 있었다.


땅굴을 뚫거나 월담하여도 얼마든지 가능하였을 것 같은데...

정말 무모해 보였다.



장성은 마치 돌을 깍아 쌓아 올린듯 하지만

실제는 진흙을 구어 만든 육각형 대형 벽돌로 쌓은 것이었다.


장대하긴 하지만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간다.



북경 시내로 다시 들어와 호텔 체크인을 하고

우선 식사부터 하였다.



그리고 방에 들었다.

혼자 자긴 아깝다.



다음 날 아침 식사후 시내로 나간다.

길 가에 있는 CCTV(중국국영TV방송) 건물이 눈에 띤다.


호텔에서 보니 중국엔 많은 TV채널을 세어보니

국영 CCTV의 것이 13개나되었다.

물론 다른 채널과 쇼핑채널도 많이 있었지만 말이다.


건물은 한글"ㄹ"과 영문 "M"자 같기도 한데

멋있는 이상한 모습여서 눈길이 자꾸 갔지만


짓기도 어려웠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만리장성처럼 실용성은 매우 없어 보였다.



북경시내를 관광할 곳은 많지만 선별하여

이화원, 천안문, 자금성, 천단공원을 관람하려한다.


먼저 예습을 하고 보면 나을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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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

1998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중국에서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전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황족 정원이다. 특히,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더 유명하다. 북경 서쪽 외곽인 해정구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 시내에서는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때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년)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이화원은 또다시 팔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이화원은 무엇보다도 규모가 실로 엄청나며 총면적이 294㎢이다. 본래 평지였던 곳을 파내 만든 곤명호(昆明湖)와 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쌓은 만수산(萬壽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수면이 전체의 3/4을 차지한다. 서태후가 이화원에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둔 목적은 피서와 요양이였으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서태후는 이 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 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이지만,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보트와 곤명호 위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곤명호 동쪽 기슭에 있는 17공교의 난간에 새겨져 있는 544마리의 사자도 볼만하다. 또한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은 역시 곤명호를 팔 때 흙을 쌇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역시 인기가 좋다.


이화원의 주요 명소들로는 정문인 동궁문(東宮門)을 비롯해 덕화원, 장량, 불향각 등이 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정문으로 삼명양암의 무전식 건축양식이 사용되었으며, 덕화원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극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 21미터에 상중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량은 동쪽으로는 요원문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석장정까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회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장랑(긴복도)이다. 마지막으로 불향각은 만수산 앞의 산비탈 길에 세워진 높이 21미터의 거석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남쪽으로는 곤명호를 향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지혜해불전을 기대고 있다. 이화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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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몹시 많았다.

주말에는 더욱 붐빈다고 하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우리나라 경복궁 등 다른 궁과의 차잇점이 있다면

규모 문제도 있겠지만..나는 색상이 의외로 다른 점을 느꼈다.


지붕의 기와 색상이 우리나라가 검은 반면 중군은 주황색이 주류다.

그리고 단청색상이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매우 달랐다.


우리 단청이 붉다고 한다면 중국은 푸르렀는데

개인적으로 중국 것이 나았다고 하면 비난을 받을까?



광장에서 대형 붓으로 글씨쓰는 사람도 보고...



곤명호를 바라본다.

저 것이 진정 사람들이 흙을 파 내어 호수가 됐단 말인가?



호수변엔 각종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긴 회랑이 호수변에 건축되어 있어

옛날 서태후는 비를 맞지 않고 호수를 산책하였겠다.


회랑 목제에 그려진 다양한 그림도 볼거리라 한다.

똑 같은 것이 없이 각양각색을 그린 미술작품

여기서도 단청이 파랗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청이 초록색이나 청색 계열로 되어 시원스러웠다.

기둥까지도....



회상 옆 중간중간엔 아치형 다리가 건축물과 이어진다.

좁은 도랑은 아마도 방어용 해자 역할을 하는 듯



서태후가 걷다 지칠경우

쉬어 갈 수 있는 곳도 만들어 져 있었다.



이화원, 방대하지만 건축물들이 아름다웠다.



황색 기와는 중국의 황궁에만 쓸수가 있어

우리나라 궁전에는 없다는 얘기도 있단다.


그런 황기와가 이화원엔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궁전들이 아기자기 하다면, 중국 궁궐들은 웅대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쓸대없이 크게지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저런 건물을 시키는데로

세월따라 묵묵히 해내는 중국인들의 끈기가 놀랍다.


만리장성이 그랬고,

여행중에 도심의 교통정체에 반응없이 묵묵한 시민들이 그래 보였다.


어찌보면 있는자 즉 황족들은

남, 즉 국민을 위한 배려 같은게 부족해 보이는 것 같았고.


백성들 또한 아뭇소리 않고 복종만 한 것 같다.

저런 건축물은 그러한 결과가 아닐지?



청색 계열의 단청

우리나라 단청은 왠지 보는데 저항감이 생기는 반면


중국의 단청은 시원스러워 저항감이 생기지 않았다.

개인에 따라 취향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흙을 파내어 호수를 만들고 그 흙을 쌓은 언덕엔 각종 건축물을 지었다.

기와색이 어떤 것은 초록색, 어떤 것은 검은색이다.



이 곳은 황족이 머물던 곳 같다.

추녀의 잡상(동물들, 어처구니?)들의 숫자로 거주 인물들의 

높낮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도 매우 높은 인물이 거처하던 곳 같다.

설명을 들었으나 기억할 수 없어 패쑤ㅜㅜ



문밖의 또다른 건축물이 까마득히 멀리 보인다.



얼추보고 다시 호숫가로 나왔다.



서태후가 그러 했듯이

나도 호숫가 회랑길을 갇다 피곤하여 잠시 쉰다.


쉬는 곳 마다 그 이름이 다르다는데...

굳이 알 필요가 있는가.



기념물 판매소,

여행객은 대부분 중국사람들이고


일부 우리같은 관광객들이 있지만...

그 숫자는 어마어마 할 듯하다.


그들로 부터 받는 입장료 수입도 짧짜름 할 것 같고...

자국민(중국)들에겐 긍지를 돋아주고...


외국인들엔 함부로 깔보지 못하게

문화적 우월함을 심어주는 것 같았다.



목에 관광안내기라는 것을 걸었다.

입장할 때 언어에 맞는 것으로 빌릴 수 있는데... 물론 싸지 않다.


내장된 장치는 특정지점 통과를 인식하여

이어폰을 통해 거기에 맞는 설명을 해주도록 설계된 것 같다.


입장료가 20위안 하는데 비해

관광안내기를 빌리는데 40위안을 들여야 하니

나 같은 외국인에겐 폭리를 취하는 듯하다.


나올 때 반납해야 빌릴 때 낸 보증금을 돌려 받는데

입장 장소와 같은 곳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거의 평지지만 큰 도랑(운하?) 같은게 있어

유람선이 다니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춤을 좋아하는 민족 같았다.

어느 곳이던지 음악이 흐르면 서서 춤을 추는듯 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국민체조 처럼 시간마다 추는 듯도 싶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길가엔 가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인들이 있었다.

군밤, 옥수수, 대추, 귤 복숭아...



바나나도 있고...

한국에서 벌써 끝난 복숭아를 보니 신기 했다.



북경 올림픽 주 경기장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터라 금세 알아봤다.



때가 됐으니 점심을 먹어야지...

중국은 식당들의 면적이 크기만하다...


도심의 식당크기가 고속도로 휴게소 만큼 하는게 보통인듯

식당안에서 공연도 한다.


부풰식 식당인데 공연도 하였고,

맛이 우리 것 보단 덜하지만 김밥도 있었다.



식사도 했으니 이젠 천안문광장을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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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광장]

  북경시내 한 가운에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드 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이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15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다가 1958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개의 인상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예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행사 등이 이어졌다.

  천안문 광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1989년 4월 중국 전총서기이자 개혁가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죽임이 계기가 되어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안문 광장으로 점차 운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당시 지도자였던 덩샤오핑(登小平)은 이들을 진압할 방법을 강구하던 끝에 결국은 같은 해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있던 학생과 시민들을 기관총 난사와 전차 동원 등의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 진압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이후부터 천안문 광장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천안문광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는 해가 뜨는 새벽에 거행되는 국기 게양식이다. 행진곡과 함께 군인들이 정렬하여 나타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하는데 이 의식에 걸리는 시간만 거의 30분 정도 소요된다. 국기 게양시간과 강하 시간은 매번 조금씩 다른데 그 이유는 넓은 중국 대륙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천안문 광장의 지평선이 서로 일치할 때를 계산하여 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양식이 거행될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지나갈 수 없고 대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은 괜찮다. 해가 어슴프레 뜨는 새벽의 오묘한 기운속에서 벌어지는 이 작지만 웅장한 의식은 외국 관광객들 뿐 아니라 북경을 방문한 타지역의 중국인들에게 북경에 오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라고 한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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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천안문광장을 아니볼 수 있겠는가

사진의 중앙 부근이 천안문이고 그 앞은 당연히 광장이되겠다.



천안문, 그 벽 중앙에 모택동 주석 사진이 걸려 있다.

중국인들은 모주석이 있었기에 지금 중국이 이렇게 잘산다고 믿는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인물로

사리사욕 없이 오로지 조국을 위해 일한 분 같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왜 그 모양인지...답답하기만...ㅜㅜ



광장 앞까지 왔다...사람들이 참 많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그 곳은 자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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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 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고궁(古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불리어지고 있으며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체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구역(禁地)이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 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잡고 있다.


  방어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 높이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넓이 52미터, 깊이 6미터의 호성강이 흐른다. 4명의 담에는 각기 문 하나씩 있는데 남쪽에 오문(午門), 북쪽에 신무문(神武門), 동쪽에 동화문(東華門), 서쪽에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1988년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툴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데에는 하루가 꼬박 걸리고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종종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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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외조 지역이 되겠다.

안내기에서 뭐라고 얘기를 했는데...기억이 나질 않는다.



성안에 또다른 성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이 아직 외정이란다



그 안을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여행사와 계약하였지만 20위안 정도라하고

자동안내기는 40위안 이라고하는데 다 포함돼 있나 보다.


처음에 자동안내기가 태화전 어쩌구 저쩌구 하였는데

후기를 쓰는 지금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ㅜㅜ



저 문을 들어가 또다른 그 내부를 바라다 본 파노라마



문을 거쳐 들어가면 비슷한 광경이 또 펼쳐진다.

용무늬가 새겨진 저 큰 돌을


어떻게 여기까지 가져왔는지 입이 떡 벌어진다.

어떤 곳은 운하를 파서 움직이기도 했다니 놀랄뿐이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중국의 위대한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안내도의 푸른색은 자금성 둘레에 설치된 해자를 나타낸다.

<해자(垓字): 성 밖으로 빙 둘러 판 연못 >



그렇게 계속 전진하여 내정에 도달하겠지



자금성은 무척이나 커서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려울 듯 했다.



반갑게 태극기를 발견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때깔부터 다른 듯. ㅋ



여긴 내정인 것 같다.

정원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궁중 안의 오아시스 같았다.



우린 궁궐을 보통 구중궁궐이라 했는데

9999칸의 자금성이라더니 과연 놀랍기만 하다.



사람이 밀집해서 그런지

내정은 외정에 비해 좁은느낌이었다.



돌아 다니느라 다리가 아팠을 게다.

그렇지만 자금성의 위용을 감상하느라 느끼지 못했을뿐...



이젠 걷기 보다는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그래야 북경여행을 오늘 다 마칠 수 있겠기에....


자금성 뒷편 출구로 나왔다

운집된 군중 무리와 어울린다.



성곽 주변의 해자

저 것도 당연히 인공이라 한다.



버스를 타고 천당공원으로 향한다.



역시 입장료를 내고 안내기를 빌린다.



천단에 대하여 잠시 검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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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은

  명,청 시기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교외에 나가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은 주나라 때에는 이미 대전으로 되고 한나라,당나라(618~907년) 때에는 제도롤 되었다.15세기 초 명나라때 천지단을 건조하여 하늘 땅에 함께 제사를 지냈는데 중엽에는 사방 교외에서 각각 하늘, 땅, 해, 달에 제사 지내는 제도를 실행하였다. 이곳은 전문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제공되었으므로 천단이라 명하였다.


  청나라 때 확장하여 현재 중국에서 보존되고 있는 최대 규모의 제단 건축군이다. 천단은 부지 272헥타르, 건축 배치가 "回"자형을 이루며 2개 단벽에 의해 내단,외단 두부분으로 구성된다. 외단벽은 총길이가 6,416m, 내단벽은 총길이가 3,292m이다. 내외단벽의 북부는 반원형을 이루며 북부가 높고 남부가 낮은데, 이는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음을 표시하며 도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을 표시한다. 천단의 주요 건축물은 내단 중축선의 남북 양단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사이를 넓은 단계교로 연결하고 있다. 남으로 부터 북으로 원구단, 황궁우, 기년전, 환건전 등과 그 밖의 신주축,재성정,재궁 등 건물과 고적이 늘어 서 있다.


   기년전은 천단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기곡전이라고도 하며, 명, 청시기 맹춘에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그 구조 형식은 위는 집이고 아래는 단이며 3층 처마는 층층이 작아지면서 우산 형태를 이루었다. 기년전 높이는 32m, 밑부분 직경은 24.2m, 6m 높이의 둥근 한백옥석대 위에 우뚝솟아 있는데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기세가 비범하고 웅장 화려하다. 이 기년전을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기곡단(祈穀壇)인데,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은 직경 68.2m, 중단은 79.6m, 하단은 90.8m이다. 


   기년전의 중심이 되는 4개의 기둥은 춘하추동 4계절을 상징하며 직경이 1.2m, 높이는 19.2m에 달한다. 둘레의 길이가  보통 사람의 두 아름을 넘는다. 그 주위에 각각 12개의 기둥이 두 줄로 둘러싸고 있는데 안쪽의 12 기둥은 즉 중간층의 12대 붉은 기둥에 의해 분할된 공간은 1년 12달 '월'을 상징하고, 외층의 12개 처마기둥은 하루의 12개 시간(12時을 상징하며,보정 아래의 뇌공주는 황제의 "천하통일"을 상징한다.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기둥에 사용된 목재는 전부 운남성(雲南省)에서 운반해 온 것이다. 기년전은 "경천예신(敬天禮神)"의 사상으로 설계, 전내의 기둥은 모두 특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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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을 들어가는 입구

주민들인지 연습을 많이한 노인들이 공연으로 맞이해 준다.



향나무 고목이 잘 가꿔져 있는 입구길




천단 공원이 가까와 지자 측백(편백)나무 고목들이 즐비 했다.

고위 벼슬을 한 사람들이 기념식수 했다고 한다.



기년전, 얼마 큰것인지 바로 앞에선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멀리서 찍어야 담을 수 있다.



넓게 파노라마로 한 컷



다음 사진은 황궁우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서 목조이고,


지붕은 8개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대들보가 없이

두공을 쌓아올렸다고 한다.


천정판이 층층이 축소되어 기년전을 축소해 놓은 듯한

아담한 건물인 황궁우는


예술성 높은 건축물로써 내부의 장식도 화려해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나 학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주변엔 그와 유사한 탑들이 몇개 더 있었으며

천신,  지신 등에 제사를 지냈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강화도에 있는 천제단과 비슷한 용도로써

규모가 훨씬 크고 화려한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천단공원을 돌아 다시 북경 시내로 가려한다.

지금까지 다니면서 자연측면에서 중국인을 생각해 본다.


오래된 나무들이 매우 많은 것을 보면

우리에 비해 나무를 잘 가꾸는 민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몇백년 이상 된 나무들이 별로 없지 않는가?

어릴 때 부터 나무를 귀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였보였다.



이젠 야간 관광을 할 차례

동인당 약방이 얼마나 유명한지 한번 가보고

북경의 오리 요리도 먹어 볼 참이다.


북경시내의 어디 시장쯤 되는가 본데..

꽈베기 저렇게 큰 것은 처음본다. ㅋㅋ


족히 우리네 것 보다 두세 배는 크다.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하는지 무식하다고 해야하는지...ㅎ



동인당 약국부근의 쇼핑로,

음식점들도 많았다.



동인당 약국

우리나라 한약국 같으면 진맥도하고


약도 달이고 할터인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잔득 약들만 쌓아놓은 모습이다.


중국에서도 자연보호 측면에서 구하기 어려운 사향등의 문제로

대체 약품을 주로 쓴단다.

그래서 원방 한약은 비싸기 그지 없었다.



다음에 찾은 곳이

그 유명한 북경 오리요리집,


이층을 안내돼 오르면서 본 1층 식당

방대함에 놀랄수 밖에 없다.



정통요리로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요리가 14개의 줄로 표현되 있다.



백주와 함께 먹은 요리는 말로 어찌 표현하겠는가



요리사 들이 룸에 들어 와 익혀진 오리를 잘라내서

접시에 담아 각자에게 나눠준다.



배가 불러 오리처럼 뛰둥거리며

내려가야만 했다. ㅋㅋ



다음 날 아침,

다음 예정지인 남경으로 가기 위해 북경 공항으로 향했다.

역시 정체는 이어진다.



그리고 남경으로 향했다.

북경서 남경사이의 거리는 서울서 북경거리와 비슷하단다.



긴 시간 보시느라 수고 하셨수~

다음 얘기는 남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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