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여행기

[ 터키 23. ] 이스탄불 해협유람선 여행

재넘어아재 2016. 1. 19. 09:22



[ 터키여행 ] 보스포루스해협 유람선 [ 8일째, 3-3편 ]

< 2015. 3. 22.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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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5.부터 3. 23.까지

7박 8일에 걸쳐 여행한 터키

 

오늘은 벌써 8일 째로 마지막 날이자

여정의 끝 편(귀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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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의 마지막 여정으로

유람선에 승선해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나가려합니다.


해협 유람선은 여러 코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는 사진의 빨간 점에서 출발해서


아시아와 유럽사이의 해협을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대교 아래를 통과해 되돌아 오는 코스라 합니다.



고등어 케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서 인지

아니면 오늘은 그리운 내 나라로 돌아 간다는 설렘이랄까요?

우리 일행의 발걸음이 더 가벼운 것 같습니다.



유람선은 2층으로 되어 있었네요

2층 이래야 그곳은 갑판에 불과합니다만...ㅎ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바다를 보려고

우린 갑판(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갑판 주위엔 의자겸 난간이 설치돼 있습니다.

우리 옆지기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요?



저 역시 갑판에 올라 사방을 보고 있습니다.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게 예미사원이라 합니다.


예미사원과 블루모스크가 너무 비슷해서

우리같은 여행객은 혼동스럽긴 한데...


이렇게 자미(Camii)가 있는 풍경은

귀국 후에도 떠오를 것 같습니다.


자미란 예배를 드리는 이슬람교 사원을 말하는 터키어인데

유럽식으로 표현하면 모스크(Mosque)이고,

아랍어로는 마스지드(Masjid)라 합니다.


국민의 98% 이상이 이슬람교 신자인 터키,

터키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자미(모스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부부 옆에는 일산 형님네가 자리하셨습니다.



그 옆에는 내가 사진만 찍는다며

서운해 하는 우리 옆지기가 있습니다.



보스포루스 헤협의 바닷빛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우리나라의 동해 보다는 못하지만 말이죠.



일산형님은 자제 분이 부모님 여행 중에

많은 사진을 찍으라며 카메라까지 가져다 주었지만...

조작방법을 몰라 어쩔 줄 몰라 하십니다.



아타까운 마음에 방법을 알려 드리지만...

뒤돌아 서면 다시 잊어 버리곤 해서



제 카메라로 대신 찍어 드린 사진이 제법되지요.



유람선들이 서로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실제는 조금씩 다릅니다.




터키는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원형 돔 지붕과 첨탑이 있는 모스크(자미)가 보입니다.


이번에 터키를 여행하면서

종교에 대하여 가이드의 설명도 있었지만..


여행기를 작성하면서 검색도 많이 했습니다.

얕은 지식으로 접근할 수 없는 종교의 세계를 말이지요.




터키 여행하기 이전부터 IS의 테러를 우려했고

그로 인해서 이번 여행 지역도 조금은 제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여 동부지역은 거의 보지 못했네요.


암튼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라는 용어를 알지 못해서

이해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는데

참고삼아 관련 글을 요약해 남기려 합니다.


 

사람들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지체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둘이 있을 수 없으며,

이 세상 모든 교회는 하나라고 얘기 합니다.



그런데 왜 교회가 희랍 정교회(동방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서방교회)로 분열했을까요?



그렇게 둘로 분열의 원인은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된데 있다고 하네요.


로마제국이 흥할시기에는 지금의 영국, 프랑스.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 지역과 그리스, 터키, 시리아를 비롯한 북부아프리카까지


지중해를 들러싼 방대한 지역이 로마제국으로 통합되었으나

나중에는 동서로 나눠져 쇠락했다는 것이죠.


우리 여행팀도 저기 떨어져 앉아있는 서울팀과

그 밖에 다른 팀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요..ㅎ



암튼, 당시 로마제국은 가톨릭(우주적 공교회)이라는

하나의 교회로 통일되어 있었으나 476년 서로마가 망한 후


각 제국의 관할권에 있는 교회들이 통일성에

차츰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서 교회 분열의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은


로마교구의 대주교인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교구의 대주교 간의 교권쟁취였다네요.


가이드가 방향을 가르키며 '돌고래 떼'라고 얘기 했습니다.

돌고래 떼를 처음 보았네요. ㅎ



동방교회는 대주교가

사도의 계승자이자 로마 교황과 대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로마의 교황권을 부정한답니다.



갈등 관계를 유지하던 두 교회는 결국 이렇게...

1054년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으며.



그후 1453년에 이르러 이슬람의 터키 군대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자



희랍 정교회의 대주교가 러시아로 피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의 러시아 정교회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 두 교회의 예배의식이나 성례전은 모든 것이 같고,.

325년부터 787년 사이에 개최된


7차의 세계교회 회의에서 결정된 교리를

다 인정한다고 합니다.



성경과 전승을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믿고,

성상화나 성유에 대한 예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만



선행을 하여 공로를 쌓는 것이

구원을 받는 조건이라고 서로 믿는답니다.



일곱성례와 화체설, 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한 미사,

사제의 교권의 절대성을 믿는다는 거죠.



그러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무엇이 다른 점 일까요?


성령의 발출에 있어서,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서만 나오고,


서방교회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고

가르치는 것이 다르다네요.



서방교회는 교황의 세계적인 권위와 무오성을 주장하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이를 반대한다고 하며,



동정녀 마리아의 무죄성을 서방교회에서 주장하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이를 반대한다고 합니다.



서방교회는 성찬식에서 평신도에게 떡만 주지만,

동방교회는 떡과 잔을 같이 준다는 것,



서방교회는 성상화뿐 아니라

성자들의 초상과 조상(彫像)을 숭배하지만,

동방교회는 성상화만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분열 이후에 또다른 점이 있다면

서방교회는 모든 사제(司祭)는 독신을 요구로 하나,



동방교회는 하급 사제의 결혼을 허용한다는 것이고,

또 동방교회는 서방교회를 이단으로 본다는 점이랍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천주교는

사제의 결혼을 허용치 않는 것을 보아 서방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금세 아실 수 있는 거지요.


동서양의 산역사를 증거하는 이스탄불에서...

이슬람의 본거지라 해도 무리가 없는 터키 땅에서...

유람선에 올라 모스크와 첨탑을 보면서...



이 나라의 국교와 앙숙관계인

기독교에 대한 여러 내용을 얘기 한다는 것이

어쩌면 아이러니 합니다.



어떻든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는 하나라고 합니다.

뭐, 그리보면 유대교도 같은 뿌리겠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예수"라는 겁니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저기 보이는 다리(아래)까지 다녀오겠습니다.

얼마전 사고로 통행이 중단되었던


우리나라 서해대교와 같은 종류의 현수교 인데...

저 다리의 길이가 훨씬 짧습니다만 훨씬 유명한 다리라 합니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다리라 하잖아요. ㅎ



암튼 그(예수)의 탄생시기가 서력의 기원이 되었고

전 세계인구 70억 명 중에 30%가량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답니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는 불교, 이슬람교 등과 함께

세계 3대종교로 불리고 있는데요



이 3대 종교 중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한 뿌리라는 겁니다.



우주 중에서 지구는 45억년 전 탄생했음을

학자들은 예측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서 성경은

겨우 4000여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때를 천지창조이후 시기로 사가들은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정확하지 않은 제 추측이지만요.


천안에서 오신 선생님께서 사진을 부탁하셨습니다.

온화하시고 말수가 적은 분이셨지요.



암튼 성경에 따르면 약 4000년 전,

신에게 절대 복종하며 사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답니다.



첫째 아들은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

태어난 '이스마엘'이고,



둘째 아들은 본처인 사라에게

태어난 '이삭'이죠.


보스푸르스 대교(혹은 아타튀르크 대교)가

더 가까워 졌습니다.



이삭이 태어나자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고



이삭을 장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삭은 이스라엘 민족 즉,

유대인의 조상이 됐고,



쫓겨난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조상이 되었다네요.



이후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발전시켰습니다.



한편, 2000년 전에는

예수라는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종교탄생을 알리게 된거죠.



또한 그 보다 늦은 서기 7세기 경에는



이스마엘의 후손이자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태어났습니다.



따지고 보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거죠.



하지만 이들은 서로 반목과 갈등의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고



기독교를 내세운 유럽국가들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이슬람 문명과 충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충돌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현재 종교 갈등은

반미정서, 경제문제 등과 결합되어



미주, 유럽 등 곳곳에서

테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세 종교의 뿌리가 한 뿌리이자



같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이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세개의 종교가 나와



지금에 이르고,



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세 종교가 약간씩 다르긴 해도



사랑과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두고 있으며



기본적인 교리는 서로 같은 것이랍니다.



그런데도 세 종교는 앙숙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을

우리 옆지기를 비롯한 민선생님 일행...



더불어 저 보스푸르스 해협의 푸른 빛 조차

정말 애석하게 생각하는 듯 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저 버리는



야만적인 행위로 인해



반 이슬람 정서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전쟁은 과연 누구의 선택일까요?

인류 역사의 모든 전쟁은 권력을 가진자들의 욕심에서 시작 되었고

많은 희생을 치른후에 끝이 났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땅을 더 차지하려는

일본넘들에 의해 우리민족이 핍박을 받았고


1950년에는 북쪽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암울한 세대를 보냈으며 아직도 야욕을 불태우고 있는데..

얼마전의 수소폭탄실험도 그 일환입니다.



이름없이 살아가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

전쟁이란 단지 시련에 지나지 않았고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였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으면

남은 가족들은 평생을 비탄 속에 살게 됩니다.


전편에 소개되었던(길거리에서 껌을 팔던) 시리아 난민 소녀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비극에 국민들의 의지는

절대로 그리고 결코 올바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혀 상관없는 전쟁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 놓고

적을 향해 분노와 저주를 토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치자들에게 길들여진 국민들에게

두번째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그들 삶의 터전에 무기를 들고 나타난 점령군이

바로 그 비극의 원흉입니다.


우리의 선조가 일본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겨

문화재를 강탈 당했고 국민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수탈했습니다.


징용이라 하여 성인남자를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으며

여인들은 성의 노예로 삼아 핍박받았습니다.



그러나 적국의 군인들에게 점령당한 국민들,

소시민들은 그들의 억압에 저항하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

쳇바퀴 돌듯 계속되는 것이 우리 인류의 역사 같습니다.



그 전쟁 역시 권력을 가진자의 욕심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얘기 저런 글을 쓰는 가운데

해협 유람선 관광이 끝나고 다시 육지를 걷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험한 세상일지라도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사람과 사람이 알콩달콩


살아가려는 연인들의

희망적인 미소가 끊임 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았지요.

저 여인의 미소가 아름답지 않습니까?



인간은 희망을 가질 때 더 열정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저기 하늘을 나는 갈매기 처럼요.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해야 하지요.


생명이 이어지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보면 고난이기도 합니다.



이제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역시 구 시가지로 가겠지요.



날개를 활짝 펼친 갈매기를 보면서

우리가 탄 버스는 출발합니다.



해안의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구시가지의 '고려정'이라는

한식당 이었습니다.



매뉴는 육개장, 깍두기와 전까지 나왔지요.

정말 감동스런 맛이었습니다.



식당 안에는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나온

지도가 붙어 있었지요.


아마도 여행인에게 판매하는듯 합니다.

톱카브 궁전과 아야소피아 그리고 블루모스크가 나와 있네요.


몇년전 파리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한인 기념품가게와 항공사에서 공동제작한 지도를

무료로 나눠 줬는데 참 잘썼던 기억입니다.


지하철 노선도와 주요관광지가 표기돼 있고

비상시 연략할 수 있는 대사관과 한인협회 등의 전화번호를 비롯해

서울-파리간 항공기 시각표까지 있었습니다.


터키에도 그와 비슷한 지도가 있는 듯해서 보았지만

그러나 한국어 표기가 없는 듯했했고, 유료였습니다.



식사후 커피를 마시며 양지쪽에 삼삼오오 모여서

정겹게 담소하는 모습입니다.


잠시후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이동한다니

조금은 섭섭하고 아쉬움이 있지 싶어요.



식당 옆 한켠엔

우리나라에서 본 야생화가 피어 있었네요.



일행은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고

천천히 밖을 응시 했습니다.



터키도 우리나라처럼

간판정리가 필요한 듯합니다. ㅎ



공항에 도착했네요.

먼저 화물을 발송해야 하는데...무척 붐볐지요.



사람 구경하는 데는 인천공항 보다

이 아타튀르크 공항이 나은 것 같습디다. ㅎ



여러 인종을 찬찬히 뜯어 볼수 있잖아요. ㅎ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괜찮았습니다.

잠시후 보세구역에 들어갔습니다.



기다리느라 목이 말라서 콜라를 하나 샀고

옆지기는 물을 한병 사면서 앉아 쉬고 싶다고 하더군요.

왜 피곤하지 않겠어요.



귀국하면서 기념될만 한 것들이 없을까

염탐하면서 밀이죠.



아무리 봐도 라쿰은 좀 사야겠습디다.

젤리 형태로 가공돼 보존기간도 길고 맛도 좋았습니다.

값도 적당해서 양껏 살 수 있었습니다.



뭐 다른 면세품들도 있었으나

우리나라에 다 있는 것들이거나 과분해서 관심밖의 것들이죠



터키항공의 로고가 예쁘네요

초승달이 바다 위로 뜨는 모습 같기도 하면서


배의 돛 모양인가 싶더니

비상하는 새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탑승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지요.

우리 옆에 일산 형님부부가 계셨는데


올리브오일을 샀는지 묻더군요.

가격도 싸고 질도 좋다면서 말이죠.


이집 저집에 선물로 나눔하면 더 없이 좋다네요.

무겁지만 별 수 없이 또 샀다는...ㅎ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탑승이 시작되었지요.



우리가 탑승할 아시아나 항공기입니다.



탑승을 완영합니다. 반가운 한글입니다.



잠시후, 이스탄불 공항을 이륙했지요.



아륙해 카메라를 만질무렵 벌써 40Km 나 지났네요.

인천까지 7900Km 남았답니다.



방금 흑해를 지났는데도

앞으로 8시간 가량을 비행해야 한다는 군요.



귀국길에 오른 사람들은

겨우 시차적응을 한 사람들이래서 잠들지 못하고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았습니다.



겨우 잠이 들려할 때 기내식이 나왔습니다.

식사후 포도주를 마시고 잠들었습니다.



그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을 본 풍경입니다.

어두운 것을 보면 아직 밤입니다.



방송소리에 깨어나 밖을 보니 환했습니다.

얼핏 보아도 영흥도였습니다.



영흥도와 선재도는 우리가 즐겨찾던 곳이었지요.

영흥도와 선재도를 잇는 영흥대교,


저 다리가 없을 때는 선재도까지

조개(바지락) 잡으러 자주 갔었네요.



그렇게 우리가 탄 비행기는 영종도를 향하더군요.



터키를 향해 떠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다시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내 나라에 안착한 것이죠.




우리를 안전하게 싣고 온 비행기와도 헤어지고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지요.



공항버스를 기다리면서

지난 여정을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인천공항을 떠나 이스탄불에 도착했고

피에로티 언덕을 시작으로 트로이, 에페소, 쉬린제, 파목깔레, 안탈리아를 거쳐

메블라나, 으흘라라, 괴레메, 카파도키아, 데린쿠유, 앙카라를 다녔으며,


아야소피아, 톱카프궁, 예레바탄사라이, 그랜드바자르를 비롯해

이스탄불야경, 블루모스크, 히포드럼광장, 해협유람선투어까지


셀수 없이 많은 사원들과 유적들 그리고 꿈 같은 풍경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는가 하면.. 그 때의 느낌이 다시 떠 오르곤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여행 중의 감동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가이드 강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모든 것이 '인샬라(하늘 뜻 대로)"라고 말했던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터키에서 만나고

어느 순간 함께 여행 한다는 것,


그 중에서도 특별한 유적들을

다니고 보면서 서로 교감 한다는 것,


또한 우리 인생에서 여행이라는 큰 선물을 주신 것,

그 자체가 소명이었고 "인샬라"였지 싶습니다.


동서양의 문명과 옛 역사가 잘 보존된 터키에서

인간의 삶과 애환에 대해 보고 느끼며


그들의 정신과 종교에 대해서도 배우는

정말 값진 여행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함께한 일행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그리고 그동안 처음부터 끝(1~23편)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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