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여행 ] 가톨릭의 도시 에페소(셋째날 상편)
< 2015. 3. 17., 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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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5.부터 3. 23.까지
터키를 여행하였습니다.
오늘은 여행 셋째 날이며
에페소 유적을 여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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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트로이를 여행하였고
에게해의 휴양도시 아이발릭에 도착했습니다.
바닷가의 아늑한 호텔에 투숙한 후
이른 새벽에 깨어났을 때 달이 떠 있었어요.
서울서 인천공항행 버스를 기다리며 보았던
그 그믐달 보단 조금 더 날씬해 졌네요.
혹시 늦으면 어제 앉았던 좌석이 바뀌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다행히 같은 좌석을 다시 앉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버스 여행을 하다 보면
한번 앉으면 마칠 때까지 그 좌석의 임자가 되는것이
불문률 처럼 지켜지는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솔자 선생에게 건의를 하였을까요?
갑자기 좌석을 바꾸어 앉는 것을 권하며
하차할 때 모든 소지품을 치워달라고 해서 좀 의아했었습니다.
좌석은 원하는 누구에게나 바꿔드릴 수는 있지만...
의류 등 모든 휴대품을 차에 둘 수 없다면 여행사에서 자랑하는
전용버스의 장점이 퇴색하지 싶네요.
암튼 상냥한 인사와 안부를 물으며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인원파악을 마치는 인솔자
날씨는 쾌청하고 기온은 섭시 10도
여행하기엔 약간 쌀쌀하니
겉옷을 챙기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떠 있는 작은 배들이
흔들리는 모습은 바람이 매서운듯 했지요.
어제보다 한시간이 빠른 7시에 호텔 앞을 출발해
해안도로를 지나고 있습니다.
햇살을 받으며 풀 뜯는 흰 양떼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히 풀을 먹는 것 같습니다. ㅎ
농장에 길러지는 가지런한 소나무의 모습과
어제 새로 간듯한 밭 중간의 커다란 형제나무가 왠지 친해 보이고
파랗게 자라는 밀 밭 너머의 바다는
점차 멀어지는 듯 했습니다.
잠시후 잘 생긴 소나무들이 또 보였습니다.
분명히 저 나무는 길러지는 듯하며 조경수로 좋을 듯합니다.
터키 국기와 무슨 글씨가 써있는 표지판
흔들려서 읽을 수는 없지만 나무나 땅을 판다는 거 아닐까요? ㅎ
다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밀밭 위로 송전선이 지나고 그 너머엔 다시 바다...
또 저 먼 구름 아래에 검게 보이는 육지는
그리스령 섬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오늘 일정을 지도에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이 아이발릭에서 에페소를 거쳐 파묵칼레까지 입니다.
터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지역에 위치해 있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들 강은 터키땅으로부터 발원하여
시리아 및 이라크로 흘러 들어가는데...
터키는 국토가 사막화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하여
강상류에 대형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답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반발은 뻔하겠지요.
그러나 터키는 그들 나라에게 너희는 석유를 무기화 하지 않느냐
우린 석유가 나지 않아 너희에게 수입하지만...
우리의 물 자원이라도 관리해야 하겠다.
내가 너희 땅에서 나는 석유를 빼앗기라도 하더냐?
너희가 내 땅을 물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뭐 제가 보기에는 분명 맞는 얘기같고...
그만큼 수자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 아니겠어요. ㅋ
저기 보이는 미루나무는 버드나무 처럼
물을 좋아하는 거 아시죠?
그 옆에 있는 사이프러스나무도 인상적이고
비닐하우스 같은데 투명하지 않고 흰색이어서 궁금합니다.
그렇게 일행을 태운 버스는 에페소를 향해 달려갑니다.
평원과 바닷가, 송전선과 과수원을 지나서
도심의 기차역 등의 도시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좁은 도로를 지나 새로난 고속도로에도 접어들기도 했지요.
다시 바다가 나타났네요.
터키에도 풍력발전소가 많네요.
설치비와 유지비가 많이들어 경제성을 떨어지지만...
친환경이기에 세계 각국들이 다투어 풍력발전기를
시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력발전기는 어쩌다 보는 이에겐
신기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소음을 주기도 해서
협오시설 중 하나로 취급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음을 발생시키지만 바람은 바닷가나
산 꼭대기에서 많이 불고 그렇게 바람이 심한 곳은
사람들이 집을 짓지 않으므로
소음 등의 문제가 별반 일어나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풍수지리라는 용어를 이해할 때
보통 바람과 물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알지만
원래 풍수란 장풍득수(藏風得水)라는 한자어를
줄여쓰는 용어라는 것을 얼마전 알았습니다.
하여 바람은(風) 감추고(藏) 물(水)은 얻기(得)위한 곳이
능선이나 바닷가는 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지만...우리고을 뒷동산인 호암산 자락에
풍차 몇개 시설하면 서울의 명소가 될 듯하니 추천합니다. ㅎ
이상한 얘기로 흘러 가는데
잠시쉬어 가려는지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이 보입니다.
휴게소에서는 보통 20~30분씩 쉽니다.
저기 보이는 곳은 터키에서 3번째로 큰
이즈미르 라는 도시이며
이즈미르는 우리나라의 부산과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고 합니다.
휴게소에 도착하면서
올리브나무를 가까이서 찍은 것입니다.
신의 축복이라는 올리브,
저 처럼 희끗희끗한 이파리를 가진 상록수였네요.
이 휴게소의 주변엔 야생화들이 많았습니다.
시간 보내기 좋으네요.
일부러 심은 것 같지는 않으나
그 어떤 정원보다 좋은 것 같았습니다.
노란꽃과 흰꽃이 많았습니다.
이름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가이드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겠죠. ㅎ
옆지기와 함께 우리일행들이 모인 곳으로 갔는데
그 곳에 오렌지나 석류즙을 짜서 팔더군요.
석류쥬스 두 잔을 주문해 마셨습니다.
석류를 칼로 토막을 낸 다음 과즙기에 넣어 짜내는 것인데...
딴지 오래됐는지 껍질이 좀 불결해 보였으나
알맹이는 싱싱해 보이더군요.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오전 9시를 40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평원을 한참동안 지나면서
잠시뒤 도롯가에 핀 흰 무리의 꽃을 봅니다.
와우~ 흰 쌀가루를 펴 넌 듯 하였는데
아마도 좀 전 휴게소에서 보았던 꽃일 거라 생각됐습니다.
좀 전에 터키의 3번째 도시 이즈미르 얘길 했는데...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데스와 연관이 있는 곳이라고
강선생은 설명하였으며
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이 기독교를 전파할때
이 도시를 지났다고 합니다.
참고는 예수의 12제자 중 요한은 가장 오래(98세) 살았고,
성모마리아를 보살폈는데
이는 요한복음 19절이 증명한다네요.
복숭아 과수원인 듯합니다.
한국에도 북숭아 꽃이 붉게 피기 시작할 시기죠.
곧이어 오렌지 농장을 지나고 에페소에 도착합니다.
에페소는 성경 중 신약성경의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등장하는 그 에페소라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도시'라고도 불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암튼 에페소는 로마시대 이전인
헬레니즘 시대부터 건축된 도시랍니다.
참고로 헬레니즘시대[hellenistic Greece]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기원전 323년에서
그리스의 심장부가 로마에 병합된 기원전 146년까지의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라 부른다."고 합니다.
제 고향 영동에 가면 감나무가 가로수인데...
에페소는 오렌지나무가 가로수라는...
오렌지가 흔해서 나무 아래 떨어진 채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가게에 진열된 오렌지는 뭐여?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유적지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일행...ㅎ
어제 본 트로이 보다 크고 웅장해 보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죠.
그렇지만 일행들은 증명사진 찍는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에페소에서 많은 수량의 사진을 찍었으며
인물사진도 많은데 초상권을 감안하여
대다수는 비공개로 하였으나 나중에라도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추억할 수 있을까하여 뭉쳤습니다.
만난지 이틀이 지나면서 서로 미소도 짓고
서먹서먹하던 마음이 점차 친숙함으로 변하더군요. ㅎ
사진 찍어주었으면 하고 기대하는 분도 계셨으나
누구든 옆에 있으면 담곤 했습니다.
일부러 찍겠다며 포츠를 취하는 것 보다
언제인지 모르게 촬영해야 자연스럽지요.
저 기 돌을 쌓아 세워진 구조물을 보십시오.
정확하진 않지만 이곳 시민들이 필요한 물을
멀리부터 끌어왔는데
저런 구조물에 수로를 만들거나
흙을 구어 만든 관을 통해 도시에 공급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물 일체를
지금의 수도 처럼 끌어다 썼다는 군요.
목욕탕은 물론 수세식 화장실까지
물의 용도는 지금처럼 다양했다고 합니다.
저 나무는 무화과 나무라고 했는데...
열매인지 목련 같이 잎사귀가 피어날 부분인지가
나무에 매달려 있더군요.
최대의 고대유적을 간직한 이곳 에페소는
페르시아시대와 헬레니즘 시대를 거쳤고 로마시대에는
동서양의 교역의 중심이었을 것이랍니다.
그런 유서 깊은 곳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 남녀
지혜와 학문과 상징하는 조각들이
과거의 비밀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화려했던 궁전과 도서관, 공동 목욕탕과 화장실
대극장과 음악당 등 찬란했던 유적은
지난 과거의 오랜 세월로
우리를 대려다 놓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곳 가까이에 빌빌산이 있는데
예수를 낳으신 성모님이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답니다.
역사가들은 성모님이 돌아가신 곳을
두 곳으로 얘기를 한다는데,
그 중 한 곳은 예루살렘이고,
다른 한 곳이 바로 이곳 에페소 근처 빌빌산이라 한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 요한이 성모님을 모시고 이 에페소로 왔고,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산허리를 돌아 가는 모통이에 보이는
저 성모님, 금빛 조각상을 강 선생은 가르켰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얘기를 강선생이 다하지는 않았고
나중에 여행기를 쓰면서 검색한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이슬람나라인 이 곳 터키에선 종교적으로
모든 형상을 세우는 것을 금하는 데도 불구하고
공공장소에 성모님 동상을 세운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도 저 곳에 가 보고 싶었지만
순례가 아니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음만 함께 했네요.
다음에 기회되면 뵐게요.
이 글은 터키여행을 마치고
귀국후 한참 지난 뒤 쓰고 있는 것으로
여행 종반부에 이스탄불로 돌아가
소피아 대성당 안을 들어가 보고서 이슬람국가인 터키가
종교적으로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얼마나 지우려했는지
실제 보았기 때문에
얼른 이해가 안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도 고양이가 주인처럼 행세를..ㅎ
녀석은 망루에 앉아 근엄하게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하네요.
일반적으로 고대국가의 도시에는
왕족 또는 귀족들이 머무는 성역(聖域)이 따로 있고,
서민들의 주거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문화가... 아니 옛 한양이 그랬지 않습니까.
좋고 신성한 곳은 의회, 신전 등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주거지 쪽은 시장, 광장, 도서관, 목욕탕, 사창가 등의
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들이 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건물 양식에 있어 고딕이니
코린토식,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등을 배웠지만
그땐 듣지도 못하고 뜻도 모르면서 배웠던 단어가
설명에 등장하곤 해서 역시 검색보았습니다.
그리스 건축 중 기둥머리에 이 아칸서스 잎이 조각되면
코린토 양식이라해서,(고린토는 성경에 나오는 지역명)
아칸서스가 무엇인지 다시 검색해 보았더니
다음 사진과 같이 생겼다는 군요.
얼핏 손기정 선수가 머리에 얹었던 월계수관 비슷한듯...
암튼 아칸서스 잎이 사원의 지붕, 벽 윗쪽의 장식띠, 기둥 등에
조각돼 있으면 코린토식(대표적으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에레크테움 신전)이고
이오니아식은 양 뿔이, 도리아식은 아무 문양도 없이
기둥 위에 바로 얹혀 있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BC 5세기에 사용하기 시작한
그리스인들의 코린트 양식을 로마에서도 모방하였으며
로마인들은 혼합양식(이오니아와 코린트 절충)을 사용했는데,
기둥의 머리 위에 양뿔을 닮은 나선형 장식과
아칸서스 잎장식을 혼합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잎장식은 르네상스 시기 이후로
가구를 장식하는 조각에서 흔히 쓰이는 무늬가 되었다네요. ^^
예전에 영어 단어를 외울 때
하나하나 콘사이즈를 찾아가며 추적하던 무대뽀 방식이
오늘 동원 됐었네요.
덕분에 아칸서스 잎도 볼수 있었고
또 잊겠지만 건축양식도 공부한 것 같습니다.
성역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귀족이건 평민이건 타고 오던 말이나 마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와야 했다고 합니다.
성역은 밑에서부터 올라오며 우러러 보였으며
당연히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들은 강선생의 다 기억하지 못할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사진도 찍었습니다.
지금은 다 무너져 기둥들만 남아 있지만
중앙 도로는 길이 550미터,
폭 22미터나 되는 대리석이 깔린 넓은 길이며,
열지어진 기둥 위엔 당시의 황제나 유명인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네요.
도로의 한쪽은 시장과 가게 터와 주택가,
다른 한쪽은 공공시설이 늘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폐허로
기둥과 집들의 뼈대만 앙상할 뿐이지만,
화려하고 부유했던 고대도시의 흔적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이쁜 돌조각 문양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오랜동안 변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 설명한 코린토 양식의
건축물인 것 같습니다.
빈곤한 상상력으로도 얼마나 굉장한 도시였을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넓은 길은 원형극장까지 이어진답니다.
상업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당시는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몇곱절 크고 화려했을 같았습니다.
사진은 셀수스 도서관이었답니다.
공중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예전엔 칸막이가 없었다고 설명하네요.
중국도 그랬다고 했는 것 같은데...ㅎ
저 아래엔 아까 설명했던 수로가 있어서
배설물이 자동으로 씻기며 떠내려 간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겨울철에는
노예가 먼저 앉아 돌을 따뜻하게 데운다음
주인이 나중에 저기에 앉아
볼 일을 보았다는 얘기를 했어요. ㅎ
실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깊이가 2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이 깊었습니다.
고양이씨 일 보고 싶으시나? ㅎㅎ
돌길을 보니 마차가 다닐 때
상당히 시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걸어서 이동해야 했는지도 모르겠네요.ㅎ
저 문자가 그리스문자 겠지요?
두터운 건축물은 돌과 흙으로 쌓은 듯 했습니다만...
흙으로도 오랬동안 보존된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트로이 보다 에페소가 더 크고 웅장하며
볼게 많은 것 같아서 인지 광광객도 많았습니다.
히잡만 아니라면 이슬람여인으로
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셀수스 도서관 부근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 같았습니다.
비교적 훼손이 덜됐고 웅장하기 때문이며
사진찍고 싶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부탁을 해서 한장찍었습니다.
후일담이지만 옆지기는 제게 몹시 서운했었답니다.
대게 커플끼리 여행을 왔는지라 사이좋게 다니는데
자긴 그렇지 못해 속상하다면서요.
자기는 그들틈에 끼어들 수없어 혼자만 다녀야 했다고...
남편이란 사람은 멀리서 사진만 찍는데만 정신팔렸으니
전, 그런 말을 들어도 싸죠. ㅎ
곳곳에 유명인의 손바닥 음각이 있던데
그런 것에 대해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 것 같았는데...
제대로 못들었습니다. ㅜㅜ
뼈대만 남은 아치물...
무슨 문이라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찌 돌구축물이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까 하며
궁금해서 가까이 가 보았는데
뒷면에 강철빔을 보강했기 때문이었어요.
유적지는 아직도 발굴 중인 것 같았습니다.
얼핏들으니 이곳 이외에도 발굴해야 할 곳이 많은가 봅니다.
돈이 없어서 방치하다시피 한다고요.
어떤 외국인 여행객이 담고있는 유적지 풍경
저 소나무도 보기 좋습니다.
처음 건설할 때 필요해서
돌틈사이에 저름 홈들을 파 낸듯 했지만
정확한 의도는 못알아 봤습니다.
비슷한 모습이 여기저기 분포했습니다.
반금 여인이 보던 소나무가 아닐까요
사진으로 보기엔 작은 정원수처럼 생긴것 같아도
웬만한 느티나무 만큼이나 큰 것들입니다.
저 아래에 가서 씨가 있는 솔방울을 주웠으면 좋겠습니다.
솔방울에는 솔씨가 붙어 있을수도...
복원은 않고 발굴만 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돌을 쌓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지진만 아니면 무너지지 않고 여태 사용할 터인데...
그러지 못하고 땅 속에서 발굴한다는 것은
심한 지진 등 대형 천재지변이 있긴 있었나 봅니다.
로마제국이 넓게 분포했었기에
그 도시 유적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로마에 가장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프리카의 알제리와 터키 순서로 많다고 하면서
터키는 발굴 안된 곳이 많기 때문일 거라고
가이드 강범구 선생은 얘기했습니다.
이제 원형극장에 도착을 했어요.
원형극장의 수용인원이 2만 5천명이라 했으니
아까 여행 중에 배운 바에 따르면
이 도시의 인구는 최소 25만 명이었다고
금세 추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넓은 곳의 현장에선
일반사진으로 다 담을 수가 없어 파노라마로 주욱~
강선생은 원형극장을 다 담으려면
유적지 밖으로 나가서 담아야 된다며 일행을 이끌었습니다.
요즘과 같은 앰프시설이 없던 시기에
많은 사람에게 소리로 전달하려면
이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야
소리가 응집돼 잘 들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건축물 폐허 사이로
노랗게 민들레가 피어납니다.
솔방울이 달렸으나 손에 닿지 않네요.
올리브나무 고목이 있었습니다.
석재들이 저렇게 부러지고 깨 지는 것을 봐서는
우리나라의 화강석보다
강도가 떨어지는 것 처럼 여겨졌습니다.
뒤 돌아 보며.. 원형극장을 한번 더 찰칵~
극장 부근에 다른 건축물들이 많았었나 봅니다.
돌을 쪼게고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문양까지 새겨야 했던 노예들의 어려움이 베어 있다는 생각,
그들에 고마움을 느끼며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형극장 부근에서의 모습을 모아 봤어요
석재의 겉은 거무스레 하지만...
최근에 갈라진 것을 보면 흰빛을 띠고 있네요.
이제 에페소 유적지 관광을 마치고
버스로 나가는 중이랍니다.
늙은 소나무 사잇길을 걸어 나가는 일행들은
못내 아쉬웠습니다.
정말 찬란한 문화가 숨쉬던 곳을
방문했었다는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겠지요.
이제 다음 여정을 이으려 합니다.
긴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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