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동 ] 평사리 무딤이들 이야기
< 2018. 7. 26. >
회의후 이어질 점심식사를 마다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들과 점심식사를 하면 오늘의 여행 계획이 틀어지기에 어쩔 수 없다.
우선 티맵에 창선대교부터 입력시켰다.
창선대교부근에 가면 다시 보리암으로 변경할 것이고
남해도에 진입하면 다시 하동으로 다시 고칠 심산
하여튼, 지난 4월 각산에 올랐을 때 본 다리의 모습이 얼마나 근사하던지.
그 다리를 이용해 남해도를 일주하고 싶었었다.
그때 찍은 사천시와 남해도 사이를 잇는 창선-삼천포대교,
어제 금산 보리암을 여행한 후
저 다리를 이용해 남해도를 일주하여 진주 회사를 방문하려 했었으나...
내비가 남해도 반대편 남해대교로 안내하는 바람에
저다리를 건너보지 못해서 얼마나 아쉽던지 모른다.
그래서 점심식사까지 뿌리쳤던 것,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나 울릉도를 여행하고 싶듯이
나는 은연 중에 보리암을 여행을 엽두해 두고 있었다.
지난 봄 각산 정상에 올랐을 때 보았던 안내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천 앞바다엔 남해도를 비롯한 많은 섬들이 있고,
그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교량이 건설됐는데....
육지인 사천시(옛삼천포)와 모개도 사이에는 삼천포대교,
모개도와 초량도사이를 잇는 초량대교,
초량도와 녹도 간을 이어주는 녹도대교를 건설했으며,
아울러 녹도와 창선도사이에 창선대교가 놓여짐으로써
창선도 10키로미터 전방의 창선교를 건너면 바로 남해 땅인 것이다.
사실 예전에는 남해도가 분명히 섬이었으나
다리들이 놓여져 있으므로 육지화 돼 그냥 "남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여튼, 5개의 다리를 건너면 남해읍에 닿고
다시 남해대교를 건너면 하동 땅이 되겠다는 말씀,
그럼 이제부터 여행의 시작,
삼천포대교 진입 직전에서 창선대교까지의 모습이다.
남해읍에 닿은 듯 싶다.
그곳까지는 예상과 달리 육지의 길처럼 바다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충남 태안의 안면도를 갈 때 등등...
지도상의 도로는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 많지만
실제는 바다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튼, 이제는 남해도를 가로질렀으니 하동땅으로 갈 차례,
남해대교 옆으로 새로운 교량(노량대교)이 건설 중이다.
아직 개통 전이므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먼저 이글을 쓰는 지금은 사진을 찍은후 몇개월이 지났다.
검색해 보았더니 지난 9월 13일 개통하였고
원래 먼저 건설된 남해대교옆에 추가로 건설하므로
제2남해대교라고 칭하려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노량대교라 명명되었단다.
그렇지만 그 노량대교 쪽은 아직 공사중이므로
남해대교를 건너야 한다.
남해대교로 가는 그길의 가로수는 벚나무로 보였는데...
봄에 꽃이 피면 장관일 듯하다.
저길은 왕복 2차선에 불과하여
늘어나는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노량대교(4차선)를 놓았단다.
역시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었나 보다.
흠을 잡는다면 바다가 보이지 않아 아쉽더라는...
어젯밤 도착할 때 건넜고
오늘 아침에 진주로 갈 때 또 건넜으며 이제 세번째다.
도로 양쪽에는 좁지만 도봇길이 있어
그 길을 걸어가며 경치를 보아도 멋질 것 같다.
잠시 중간에 차를 세워도 보고 싶었지만
멀리 뒤따라 오는 차가 보인다.ㅠ
그렇지만, 서행하며 남해대교에서 노량대교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저 다리는 분명히 막아 두고 있었다.
하여튼 하동땅에 닿았으니 내비(티맵)에 목적지를 입력해야한다.
그렇지만, 그 소나무(부부송)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ㅜㅜ
하여 "하동 소나무"라 입력시키고 검색하였더니
오로지 "축지리소나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축지리소나무' 어감이 조금 어색하였지만
하동군 악양면이라 해서 그런지 너는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약간은 익숙한 평사리란 지명이 보여서
거의 다 왔나보다 하고 다소 안심하였다.
평사리 순두부,
이따 저곳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 좋겠네...
요즘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모른다.
게다가 얼마나 가뭄이 심한지 모를 지경이다.
그렇지만 굵직한 저 산은 농민들의 아우성을 듣는지 마는지
혼자 하늘과 만나며 푸르기만 하다.
예전에 사진으로 본 사이좋은 그 소나무(부부송)은
들판에 나란히 서 있었는 것 같았는데...
왜 이런 산으로 안내를 하는지
나는 어리석게도 바로 눈치를 체지 못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농로 옆에
호박 넝쿨에 매달린 이파리들이 뜨거움으로 된서리를 맞은양
축 늘어져 있는게 가엽기 짝이없다.
그래도 자유롭게 생긴 다랭이논 꼬부랑 좁은길로
하염없이 계속올라갔다.
마을을 지나오면서 잠시 차를 세우고 묻고 싶었지만
너무 더워서인지 사람들은 구경할 수 없었다.
그때서야 어? 이건 아닌데 하였지만
티맵은 목적지 근처에 다 왔음을 알려왔다.
더 진행 할 수 없는 위치까지 도착했다.
몇번의 전후진을 해야 겨우 되돌아 나갈 수 있는 장소였다.
금경삿길에 시동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시동을 켜 둔 채 언덕을 올라 찾아보아도 사진에 보았던
그 소나무(부부송)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그때 기온이 40도를 넘어섰을 게다.
마땅한 나무그늘도 없어 차량으로들어와
유턴후 인터넷을 검색하였고 소나무 찾는일은 그만 포기하고서
최참판댁을 다음장소로 정했다.
이글을 쓰면서 축지리소나무를 검색해 보았더니
산 중턱에 자라난 문암송(천연기념물 491호)이며
수령이 600년 수령의 아름드리 소나무로서
바위틈을 뚫고 우뚝 선 모습이라는 것
정겹게 가까이 서 있는 두 그루 소나무만 찾았으니
내 눈에 보일리 만무하였던 것이다.
하여튼, 결국 축지리 앞 벌판(평사리뜰) 건너편의 최참판댁에 도착했고,
주차후 향한 곳이 하동군종합관광안내소였다.
손님이 없어서일까 내부를 들어가니
안내봉사자인 듯한 여인이 누워있다가 깜짝놀라 일어선다.
그래도 그 안이 얼마나 시원했던지...
거기에서 머물면서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에 대해
자세한 언질을 받았다.
또한 그와의 대화를 통하여 축지리소나무에
잘못 낚였었다는 것을 알고서 나는 잠시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부송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부부송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
무척 다행스러워 하기도 하였다.
안내인은 부부송가까이에 있는
호수(동정호)도 둘러 가면 좋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선 매표소로가서 입장권?을 샀다.
판매하는 아가씨가 나를 좀 의아스럽게 보는 눈치다.
나중에 돌아가며 그 이유를 알았지만
나만 입장권을 살 뿐 다른사람들은 그냥 다니더라는 것..ㅜㅜ
부부송식당, 아까는 왜 "부부송"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내가 나를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
주차장에는 차량이 제법 보였지만 더운 탓인지
거리는 썰렁하기 짝이 없다.
겨우 양산 쓴 아낙 둘이서 지나 갈 뿐
뜨겁게 달구어진 기와 지붕 위에
토란 줄기들이 열지어 건조되고 있었다.
관람로를 안내하는 화살표,
최참판댁을 비롯해 여러 장소들을 가르키고 있었으나
얼른 최참판 댁만 보기로 한다.
시간여유도 없지만 너무 더워 숨이 막힌다.
그래도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대충이라도 보고는 가야지.
허나 막상 박경리문학관을 빠트린 것을 아쉬워 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그때 찾으리라 생각했다.
타켓을 보여 주려고 꺼내 손에 쥐었으나
최참판댁 입구에는 아무도 없다.
예전에 연속극으로 TV에 방영했던 박경리의 토지
그때 주인공이 서희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보니 당시 어른 서희로 출연했던 그 탈랜트가
요즘은 왜 보이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더니.
옆에 있는 아내는 그의 이름이 "최수지"라면서.
그가 요즘은 왜 안 보이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한다.ㅎ
아까 관광안내소의 안내인은
최참판 댁에서 평사리 뜰을 비롯해 부부송까지 훤히 보인다고 했다.
저기 보이는 눈에 익은 저 소나무....
음...저 옆에 보이는 저 도로를 이용하면 가까이 가겠다.
걸어가면 도중에 뜨거운 열기로 쓰러질 것 같지만.
차를 타고가면 그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잠시후 저 평사리 들판을 거쳐 당진으로 가리라
대문을 들어서자 박경리작가의 사진이 보인다.
가수 박인희와 작가는 서로 많이 닮았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박경리싀 소설 토지는 현대 소설사에서
최장편인 대하소설이라고 한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민중들의 삶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형상화한 소설,
가상의 최 참판 댁의 세우고
그를 비롯한 삼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최참판댁은 소설 속의 모습을 본떠 만든 관광명소라는 말이 있다.
박경리 작가가 최참판댁을 묘사하면서
이곳의 조씨 고가를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물까지 디테일하게 꾸민 것인지 실제 조씨 고가인지 모르겠다.
80년대 말에 방영 되었던 토지
그때 만들어지 세트장인지 아니면 유명세를 틈탄 지자체에서
관광화시킴으로서 나를 여기로 이끈 것 아닐까
알프스를 무대로 한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이 개봉되면서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오스트리아가 되었다는 말이 생각난다.
외양으로 보아선 옛 건물처럼 보인다.
세트장 치고는 실제에 전혀 손색없이 잘 만든 것 같다.
대문을 열어 젖히면 평사리 들판이 보인다.
마당, 뜨락, 디딤돌, 마루, 대청....
사각 문틀 아래 매달린 옛 물건들
지붕 위로 보이는 미루나무와 흰구름, 그리고 파란하늘을
뒤로하며 나는 돌아서야 했다.
최참판 댁 내부 일부만 스쳐지나며 보았다.
화끈거리는 날씨에 더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도 하지만...
이젠 얼른 에어컨이 나오는 차를 타고서
잠시 부부송 가까이 접근하였다가 죽향골로 떠나겠다는 마음이다.
저 초가 지붕은 작년 가을 평사리 뜰에서 수확해
보관해 두었던 볏집을 지붕재료로 썼을 것이라 믿었는데...
실제 볏집이 아니라 화학섬유(비닐?)같은 제질이었다.
이런데는 실제 볏집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안내자가 말했던 정자에 올라가는 길
정자에서는 이쪽과 저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우거진 나무들이 전망을 흐리기도 하지만
최참판 댁을 비롯한 마을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또한, 평사리 들판쪽 한켠에 우뚝선 부부송이 보인다.
소나무 두그루가 너무도 정겹게..사이좋게 서 있어서 부부같이 여겼을까?
저 나무를 부부송이라 부르기 시작한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남매, 형제, 친구로 보일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차를타고 나무 가까이 다가섰다.
도중에 호수(동정호) 옆을 거쳤으나 그냥 지나쳤다.
저 소나무에 다 가까이 가고 싶어서리...
소나무와 가장 근접한 도로에 정차했다.
온통 벼가 자라는 논이어서 약간 시원할 것 같지만 아니었다.
하여튼, 내가 서있는 곳에서 저나무는 북동편,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논둑길이 있고 거기에 목판이 꼽혀 있었다.
정성스펍게 양각된 글의 내용을 읽어 본다.
평사리들판(무딤이들)
협곡을 헤쳐 흐르던 섬진강이 들판을 만들어 사람을 모으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촌락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어 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동을 세운 이유
3가지 중의 첫번째가 이곳 평사리들이다.
만석지기 두엇은 능히 낼만한 이 넉넉한 들이 있어 3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되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하셨는데
그 중 하나가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렇듯 이 넉넉한 들판은 모든 생명을 거두고 지신이 키워낸
쌀과 보리로 뭇 생명들의 끈을 이어준다.
섬진강 오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을 자랑하는
평사리들(무딤이들)은 83만여 평에 달한다.
평사리는 북쪽으로 큰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평사리 들판을 지리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최참판댁 지붕에서 보았던 흰구름과 파란 하늘을
애원하듯 또다시 바라본다.
기록적인 폭염이 얼른 물러나 가을이 왔으면 하면서...
가을 하늘빛 가슴에 담고 무딤이들을 떠났다.
아까 축지리에 진입하기전 봐 두었던 평사리 순두부 집을 찾았으나
영업을 하지 않고 문이 닫혀진 생태였다.
점심식사를 거른체 축지리며 평사리를 싸돌아 다녀서일까.
우리 답준이(찬율이) 우윳병 빠는 모습이 떠오른다.
좀전에 부부송 얖에서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중에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를 인용하였던데....
우리 야사에 백사 이항복, 한음 이덕형, 송강 정철과 함께
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거론할 때
이항복이“눈 내리는 추운 겨울 밤 군불 뜨뜻하게 들인 방 안에서
내 사랑하는 여인이 옷 벗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은 소리다. 라고 했다던데
나는 우리 막내손주 찬율이 색색거리며 우윳병 젓꼭지 빠는 소리가 좋다.
그리고 녀석이 내 옆에서 눈을 감고 잠잘 때
녀석의 내 가운데 손가락을 꼬옥 쥔 채로
배를 부풀리며 세근거리는 아이의 숨소리, 그 생명의 소리가
나는 가장 듣기 좋은 소리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비에 우리집을 목적지로 하고
출발을 서들렀으며 어느새 섬진강가를 지난다.
길가다 괜찮은 식당이 있으면 들러가리라 하면서
한적한 도로를 달렸고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변에 이르러
김가네동방천 다슬기집에서 늦은 식사를 하였다.
그때의 시각이 오후 3시 20분,
90년대초 연구소에 함께 근무했던 선배동료와
출장시 먹었던 다슬기탕이 떠올라 찾았으나 그때 그곳은 아니었다.
집이 순천인 그 선배,
고인이 되신 그분이 갑자기 기억됐다.
정년퇴임식 때 눈물 흘리든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찾아가 왜 그 오랫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하셨는지 물어 봤을 터인데 궁금하다.
배를 채웠으니 이젠 죽향골로 가야지...
섬진강변을 따라 귀갓길에 올랐다.
당진까지는 세 시간 정도면 갈 것 같다.
순천-완주고속도로 화엄사IC를 진입하기 전이다.
그렇게 이번 여정을 마쳤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꼬꼬닭을 생각하며 속도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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