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 사천성 황룡가는 길(상편)
[ 중국 ] 사천성 여행 시작, 황룡 가는 길(상)
< 2014. 4. 23.~4. 24. >
2014. 4. 23.부터 4. 29일까지 5박6일 일정으로
황룡과 구채구, 설보정과 청성산 등지를 여행하였습니다.
여행 사진이 많아 부득이 나눠 소개하기로 하며
그 첫번째인 황룡가는 길 중 상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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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동기 >
몇년전 중국여행기를 보았는데
황룡 구채구 설보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중 설보정의 만년설을 보면서 승마트래킹 하는 것에 매료돼
그간 벼르며 수소문 하다가 출발 1개월 전에 연결돼 입금까지 마쳤고
이번에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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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행을 주관한 카페의 광고글 >
< 여행 방법 >
인천공항에서 성도공항까지 이동한 다음
아래 사진의 중심도시인 성도에서 부터 윗쪽 구채경구까지
오가면서 여행한 사진에 설명을 부기합니다.
|
황 룡 구 채 구 전용버스 |
- 05:00 기상 / 조식(도시락) 성도 - 황룡풍경구로 이동(약 8시간) - 06:00 성도→[고속도로]→문천현→무현→송판→천주사(중식) 경유 황룡 - 14:30 황룡동, 황룡사이동 3400여개의 에메랄드빛 호수와 연못 관광 케이블카(편도)-잔도-오채지-황룡고사-금사포지-시신동(약 3:30분) - 구채구로 이동(약 2시간) |
- 조:도시락/중:현지식/석:현지식 호텔 : 격상호텔(4성급/2인1실) 혹은 동급 |
위, 여행지역은 중국의 사천성,
중국 남서부 양쯔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성(省)으로
지난번 샹그리라 여행지였던 운남성 윗쪽에 있는
티벳 지역이라 합니다.
이번에 여행한 티벳에 대해 알아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듯합니다.
(물론 검색한 것을 임의로 재구성 했네요)
< 티벳, 티베트 >
지금부터 64년전(1950년) 10월 어느날,
쓰촨성 등지에서 집결한 수만명의 중국인민해방군은 고요한 여명을 깨고
티베트 침공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인민해방군은 국민당과 일본제국주의와의 20여년이라는
기나긴 전쟁으로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으로부터의 명령을 기다리며
티벳 고산지대에서의 전쟁훈련에 완전 적응된 상태...
중앙공산당의 공격개시 명령으로 물밀듯 진격이 이루어졌고
제대로 무기가 갖춰지지 아니한 티베트 보안군은 일시에 격파될 수밖에 없었다네요.
수도 라사(Lhassa)를 비롯하여 중국의 1/4에 해당하는 영토가
중국에 점령당하는데 걸린 사간이 고작 한달이었다고 해요.
그뒤 지금까지 오늘날 티베트는 그 이름도 시장장족자치구로 변한채
중국의 일부분으로 전락하였고 나라잃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중국의 굴절된 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 중국은
거대한 티베트를 두동강내서 티베트인이 주로 사는 시장장족 자치구와
시장성으로 분리했답니다.
이것은 공산화 과정에서 줄곧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구호를 외쳤던
중국정부의 일관된 사탕발림 정책으로
당시 갓 태동한 연변조선자치구 또한 유사하게 영역을 분리해 가면서
중국내의 소수민족들의 세력화 즉, 존재를 인정치 않으면서도
모두가 하나의 울타리권에 사는 중화민족 국가라는 애매한 결론을 짓고
이에 따라 세운 억제 정책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암튼 옛 중국의 본토와 티벳트 역역으로 나뉘는 국경의 관문이 송판이란 지역이라 하며
엣 지명이 송주(松州)인 송판의 원주민은 대부분 티베트인이었으나
지금은 끊임 없이 이주해온 한족과 비율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지난번 백두산 관광시 방문했던 연변 지역도 조선족이 점차 줄고
한족이 이주해와 인구가 서로 비슷하다고 한 것과 유사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로인해 옛 송주였던 현재의 송판은 급격한 한족화의 길을 밟아
이곳 지역(황룡, 구채구 등) 티베트 주민들은 이미 한족과 별차이가 없다고 하네요.
물론 먹고살기 위한 방편인지는 모르지만....
그나마 종교적으로 라마불교의 신앙심만은 유지가 되는 것 처럼 보여
어느정도의 민족적 정체성은 유지시키는 듯 보였습니다.
이런한 중국의 정책이 뜻대로 이루어질지
아니면 구, 소련처럼 쪼개어 질지는 모를 일입니다.
<여행의 출발 >
이번 여행은 산악회장(카페지기)를 포함해 14명이
2014. 4. 13. 18:00시 인천국제공항 3층 13번 출구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물론 비용은 이미 지불이 됐고.
여권 등 여행 품은 각자 준비하였으며...비자 등은 카페가 추진하였어요.
설보정 검색으로 알게돼 카페에 가입한 나는
카페지기(회장)와 전화 연락만 있을뿐, 다른 이들은 첫 대면으로 서먹서먹...
게다가 같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다른 여행사 까지 몰려
북적대기까지 하여 누가누군지 알수 조차 없었습니다.
암튼 나는 아내와 30분 일찍 도착해
카페지기에 전화를 해보니 아직 도착 전이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약속시간이 되자 전화가 왔고 겸언쩍지만...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첫일성인 여권을 제출요구에 아내 것과 함께 전달하였고...
그후 어떤 여인(여행사?)의 안내하에
안내 목걸이와 배낭 부착물을 배정 받았으며 여행가방을 화물로 부쳤습니다.
일부는 서로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나 인사가 있으리라 기다렸으나
그런 일도 없고 14인의 명단이나 연락처도 모른체
안내에 따라 출국수속을 밟는 중입니다.
그간 몇번의 여행으로 출국수속이 약간 익숙해 졌지만...
그때마다 긴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내 뒤에 아내가 뒤 따르는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항공권은 어찌된 영문인지 내 옆에 배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부이므로 동석하게 해 달라 했더니...
귀찮게 한다는 투로 좌석을 서로 바꾸어 타면 된다데요.
서툰 것인지 터프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좌석을 봐꿔 달라는 말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ㅜㅜ
. . . . . .
화물을 미리 부쳤고 잠시 기다리다 탑승장으로 갔는데...
출국심사시 휴대 배낭 엑스레이 검사에서 잠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배낭 멜빵에 임시고정시켜 카메라를 거는 장치를
이상 물품으로 검지했기 때문이었고,
검사자도 이런 물품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며
배낭을 완전히 쓷아내고 다시 담는 과정 등으로 번거러웠습니다.
암튼 검색 엑스레이 장치와 검색자의 철저함에 놀랐네요.
세상의 휴대하는 물건들의 정보와 대조 확인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지요.
인천공한 보안팀, 믿음이 갔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해운관리를 저 처럼 철저하게 하였더라면
젊은 학생들을 주검으로 몰지 않았을 겁니다..
암튼 그렇게... 비행번호 OZ 323 편, 한군 인천 발~ 중국 성도 착
아시아나 기에 올라 2,100Km 거리를 야간 비행하였고
약 네시간 후에 성도공항에 안전히 도착하여
중국 입국 수속을 밟는 중입니다.
그 때 시간이 중국현지 시각 23시 47분
공항을 빠져 가이드가 기다리는 버스에 오른 시각은
다음날(2014. 3. 24.) 새벽 00:06분 이네요.
성도 공항 앞 광장을 뒤돌아 보며
우린 예약된 호텔로 향했습니다.
현지 가이드 "김 현" 씨 훤칠한 키에 잘 생겼습니다.
말수가 적어 조용하지만
알려줄 것은 세심히 안내하는 가이드라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
4성급 이라는데.... 뭐 괜찮은 것 같았어요.
우리 이외의 다른 한국인 들도 있는 듯...
사천성은 지진으로 유명하죠
혹시 지진으로 대리석이 이렇게 금이 간 것일까요?
방을 배정받고 눈을 붙일 준비....
방번호 809 ㅋ
매일... 모닝콜, 식사, 출발...이런 일정이 반복된답니다.
때에 따라서는 도시락으로 대체되기도 하며
시간관계상 선출발, 도중 식사하는 방식도 가끔 이용된다고 해요.
취침 전 짐과 배낭을 준비해 두고서
새벽 모닝콜 4시, 5시부터 현지 첫 출정을 합니다.
황룡까지 400여 Km를 간다 하네요.
이곳 성도는 모택동의 고향이고 삼국지의 촉한의 중심지로서
유비현덕의 묘와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가 있답니다.
한시간쯤 달렸을까 긴 터널이 반복돼 나타나더군요.
지난 쓰쏸성 대지진으로 대부분의 국도가 파괴됐고 그후 건설된 도로인데
이 처럼 터널이 많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 지역의 지리적 특징과
역사와 사회적 실정 등을 알게 되는데...
미리 공부를 하면 여행이 훨씬 즐겁습니다.
이를 위하여 잘하는 여행사는 간략한 지도와 더불어
상세 일정표를 일행에 나누어 주는데...
이번 팀은 회장만 지도 등을 가지고 있는 듯 했어요.
하여 지리적 조건 등을 잘 알지 못하고 여행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여행기가 약간 부실할 수 있습니다.
기억과 메모에 의존해야 만 하니까요...ㅎ
이곳 사천성은 지진지대로서
2008년 문천대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피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산사태 지역이 자주 눈에 띠었고
무너진 듯한 낭떠러지 도로도 많았습니다.
버스밖으로 보이는 저 것이
대호라는 사람의 동상이랍니다.
도롱이를 몸에 걸치고 삽을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옛적부터 사는 민족(강족)인 그가 홍수피해를 막기위한
어떤 커다란 역활을 하였기에
그러한 조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것 같습니다.
뭐 자세한 것은 설명듣지 못했네요.
이 지역과 같은 고산지대는 기압이 낮으며
이로인해 쵸코파이 등 한국에서 가지고 온 과자봉지가
크게 부푸는 형상을 볼수 있는데...
그러한 원리가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고...
인체 내외부 장기 등이 역시 부풀기 마련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방귀가 많아지고
어지럽거나 하는 고산 반응이 일어난다 합니다.
일부 적응하지 못하기도 하나 대부분 자동적으로 적응이 된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삼륜차를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
휴게소입니다.
장거리를 여행하기 때문에 배설이 필요하지요.
운전기사도 잠시 휴식해야 안전하구요.
그런 장소에는 어김없이 가판대가 존재해요
화장실은 당연히 유료입니다.
(1위안 : 약 160원 )
요금을 받으면서도 무료 화장지는 비치하지 않아요.
따라서 화장지는 항시 휴대해야...ㅜㅜ
위생간(화장실) 운영 수입이 아주 짭짤하다고 합니다.
이 마을옆 호수는 접계해자라 부른답니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1950년의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그 당시 마을이 통째로 물이 잡겨
지금은 호수로 변했기 때문이랍니다.
차량이 많으면 손님도 더 많겠지요
글을 보아 이 지점이 2008년 지진의
진앙지 쯤 되나 봅니다.
청소는 비교적 철저한 편입니다.
잠시 쉬었으면 다시 떠나야죠.
저기 건너편이 도로였나본데...
지진으로 지금은 이쪽도로를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의 물자 수송은 화물자동차에만 의존하기에
도로 피해시에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겠지요.
아카시아꽃이 피어나는군요.
한국에서는 5월 중순경에 아카시아가 만발하죠.
마을 곳곳에 서 있는 것은 일종의 봉화대겸 망루라 합니다.
전쟁시에는 지휘소 역활도 했다고 하는군요.
저런 봉수대가 있는 곳은 강족이 사는 곳이고
이런 강족은 약 20만 명의 소수민족이라 합니다.
강건너 하얀 양떼가 열지어 지나고 있네요.
흰것은 양이고 붉은 것은 소인 것 같습니다.
중간에 빨간 옷입은 양치기 여인도 함께 걷는 듯 해요.
이 곳처럼 험한 산악지역에 흐르는 물은
유속이 빠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홍수패해 지역이 분포하는 것 같고
이를 막기위한 옹벽도 많이 설치된 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댐도 설치된 것 같았어요.
중국이 이곳 티벳지역을 강점하고서 도로도 놓고 전기를 공급해 줌으로써
소수민족들의 호감을 사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수민족들 중에는 노예처럼 생활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중국이 이들을 해방시킨 역활을 하였기에
그런 사람들은 중국을 은인처럼 여기며
그런 사람들은 집안에 오성기(중국국기)를 걸어 놓은 경우가 많다네요.
강족은 아화자치구에 모여서 살며
강족임을 알려면 집에 양뿔모양의 문양을 새기는 특징이 있답니다.
아래 사진 중 점시형 안테나 오른편에 보임..
또한 이들은 백색을 좋아하며
양의 후손이라 하여 집의 모양을 보아도 금방 알수 있는 것 같아요.
강족들은 양쯔강의 지류인 민강 주변에 살아 왔으며
민족들이 자연신을 숭상한답니다.
하여 물고기를 잡지 아니하고
방료도 자연에다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래 사진에서 보면
식당 같은 건물 유리창에 물고기 사진이 걸려있는데...
내 생각에 주인이 강족은 아닌듯 ..ㅎ
일행중 한분이 아래 두부어(荳腐魚)가 무엇인지
김현 가이드에 물었더니
물고기를 두부 속에 넣은 요리하고 했는데...
갑자기 옛적 생각이 났습니다.
두부 주변에 미꾸라지를 두고 점차 가열시키면
미꾸라지가 뜨거움을 피해서 두부 속으로 들어 가 숨는다는 거죠.
그러한 방식의 두부를 가지고 요리 했을 듯(개인생각)...
멀리 설산이 보입니다. 저기가 황룡일까요?
버스 밖 강가 마을이 멋지네요.
우리나라로 치면
각광 받을 전원주택지가 분명해 보입니다.
잠시 후 보이는 고성은 강족성이라 합니다
문천이라 도시에 온 것입니다.
강족을 다스리던 왕이 살던 곳이엇을까 싶습니다.
근처에서 이틀 후
하루 밤 잘 것이라 하네요.
다들 사진도 찍고 시원하게 배뇨도 합니다.
비 개인 후여서 일기도 좋네요
시간나면 저 곳에 올라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기 먼 설산이 구정산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천성 구정산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성도시에서 240Km 떨어져 있는 구정산은 사천성 북쪽 문천현에 위치하고
사계자연유산보호구에 속해 있으며
해발 4,970m 의 구정성 정산과
그 옆의 사자왕봉 (4,984m)과 함께 만년설로 덮여 있으며 펜더 서식지가 있고
물이 맑으며 야생화가 만발하는 설산 원시림 등이 특색인듯 해서
앞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을 곳 같습니다.
주유소 현지 시각 오전 8시경
저기에 가는지 물었더니
가이드는 시간이 없다고 하네요.ㅜㅜ
암튼 이곳 문천 부근엔 송전선도 많고 철탑도 많네요
부근에 수력 발전소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탑이 많은 산의 꽃나무
그 산에 계단식 밭이 보입니다.
무엇이 제배되고 있을까요?
맨눈으로 봐서는 매우 척박한 곳 같습니다.
저 건너 흰 집들에 꽂혀있는
붉은 깃발(오성기)은 중국정부에 대한 호감 표시 내지
또는 우리집은 중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으니
함부로 까불지 마~ ...뭐 이런 표시라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낙석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지진이 심한 곳이니...
이 지역은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지점(모탁채마을?) 으로
맛있는 과일이 생산되는 지역이라 합니다.
하여 지역 특산과일(사과, 비파)이 맛이 있어 권장하나
버섯은 질이 떨어지므로 구입을 삼가하라는 가이드의 안내네요.
비파는 한국의 제주도에서도 생산된다는데
저는 못먹어 봤습니다.
옆지기는 비파가 마치 살구처럼 생겼다고 하면서
저 아래 농장에 노란 푯말이 유난히 많다고 궁궁해 하네요.
그렇지만 저역시 궁금했습니다. ㅎㅎ
물살이 빨라서인지 배는 구경할 수 없습니다.
물론 물가의 사람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땅덩이도 넓지만...큰 산도 참 많네요..
볼만합니다.
저 높은 곳을 자세히 보면
길도 나 있고 집이 보이기도 합니다.
구름다리도 수시로 놓여져 있습니다.
송전선은 근래 시설된 것 같아 보여요.
저 건너 차량은 피해 도로를
복구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절벽에는 굴 모양도 참 많이보여요
모탁채 마을이란 곳을 지난답니다.
가이드가 강 건너를 보라는 군요...에구 진즉에 말해 주지....
차마고도 동상이랍니다
차마고도란 차와 말을 교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마방이란 상인들이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다니던 길이 차마고도라는 거죠
그치만 지금은 끊겨진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런 절벽에 길을 내다니 중국인들 대단하죠?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못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선 저들 처름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이지요. ㅎㅎ
척박한 땅을 경작하기 위해
비닐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물은 맑지 않고 탁해 보입니다.
물살이 빨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홍수가 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전 8시 41분. 아침 5시에 출발했으니
3시간 40분을 달려온 셈입니다.
도로옆 절벽은 낙석위험이 있으므로
저 처럼 철망시설을 한 곳이 많았습니다.
산 윗쪽에서 돌덩이가 버스 위로
구르기라도 하면...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곳 지역의 20만 여명의 강족은 원래부터 글이 없다고 합니다.
즉 문자는 없었으나 언어는 보유하고 있었다 합니다.
그에 비해 조선족(200만명)은
문자와 언어가 있어 위대하다는 거죠.
암튼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인구가
계속 감수하는 추세랍니다.
제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한족으로 계속 동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렇게 물살이 드세고
깍아지르는 양쪽 절벽에 도로 건설이 곤란 하겠습니다.
그래서 도로가 비좁고 굴곡이 심합니다.
하여 정체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정체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죠.
내려서 심호흡이랑 스트레칭도 하고
여자지만 담배도 피워야 하나봅니다.
정체가 풀렸을까? 출발합니다.
앞서 설명을 했지만...이곳은 철도가 없어
도로를 이용해 물자를 수송합니다.
화물차들은 우리나라 처럼 적은 것이아니라
두곱절 씩은 하는 크기 입니다.
타이어수를 헤아렸더니 22개
우리나라엔 대형 트레일러에서 볼수 있으나
이지역에는 대부분이 저렇군요.
버스앞에는 방금 전에 본 타이어 22개의 차량보다
훨씬 큰 화물차가 길가에 쳐 밖혀 있는 모습을 보십니다.
세상에...이찌 저 좁은 도로에
저렇게 긴차를 운행할 생각을 했을까요
엄청한 크기의 기계설비를 싣고가기 위해
특수제작한 듯한 차량이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네요.
그 길가의 옆 낙석 방지 그물장치...
그렇게 정체구간을 간신히 빠져 지났습니다.
원래는 저렇게 한산했다는 군요. ㅜㅜ
암튼 그 길을 위는
비 갠후 여서인지 운무가 아름답습니다.
고산지대에서 산소가 적기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고산병 중세가 나타나는데
대부분 잘 적응하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적응치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대 산소도 구입할수 있다고 하네요
터널이 또 나타났습니다.
저 때 시각이 오전 9시
터널이 참 많았습니다.
터널을 나오자 멋진 전망이 펼쳐졌어요.
그리고 호수(접계해자)가 나타났으며
그 옆 휴게소에 차가 세워졌습니다.
접계해자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숙연했습니다.
이런 정차장엔
어김없이 유료화장실이 있습니다.
이곳지역의 특산 과일이라면
맛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적개해자가 위치한 이곳의 높이는
해발 3000미터라 합니다.
호숫가에 흰 짐승...
블랙 야크(耗牛)가 주종으로 서식하는 지역이지만...
그중 0.1%는 흰털의 돌연변이 야크라 하며
흰 야크는 인기가 많아서
관광지에서 촬영용으로 애용된다고 합니다.
한번 타고 사진촬영하는데 20 위안
여러명이 각자의 야크를 두고
호객을 합니다.
머지 않아 저 호수에 모터보트와
수상스키가 도입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화산에서 연기가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일행 중에 20위안을 투자하는 이가
두분 계셨습니다.
옆지기에 한번 타라 했더니 마다면서 손사례를 칩니다.
겉모양은 깨끗해 보여도
옆에 다가서면 역한 냄새가 났습니다.
소변과 대변까지 합쳐 옆에 서있기가 그렇더군요.
야크 주인들은 절벽아래로
야크 배설물을 연신 쓸고 떨어 뜨리더군요.
전망대 아래...토종닭이 보입니다.
상류측입니다.
우린 그방향으로 계속 가야 하나 봅니다.
절벽아랫 사람이 무엇을 울러맨 모습
일행중 한분,
이쁜 양이 야크를 탔습니다. ㅎ
중국에는 긴 머리를 딴 소녀가 자주 보입니다.
야크를 탄 엄마와 딸
군 고구마 같습니다.
비교적 큰 호박고구마 였는데
옆지기는 생각이 있었나 봅니다.
속은 호박고구마처럼 달게 생겼으나
실제는 당도가 덜했지요.
버스의 유리창을 깨끗히 청소해서 좋습니다.
유리창이 맑아야 지나며 찍는 사진이 선명하겠죠. ㅎㅎ
오전 아홉시 41분
마르지 않은 유리창 밖으로 계단식 밭이 보입니다.
강족들의 봉수대도 보이고...
저 높은 계단식 밭가로 야크가 보이는 듯 합니다.
야크는 버릴게 없는 동물이라 하네요.
아까 처럼 애완이 되기도 하고 짐을 실어 나르기도 하며
뿔은 빗을 만드는데 쓰이고 고기는 식용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국산 현대 포크레인이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강가엔 연록이 진행되고 있어
보기 좋았습니다.
기후 여건상 사과와 비파 열매가 유명하답니다.
저 건너 길가의 흰색은 납골당이나 묘지 같습니다.
마을 뒷편엔 이중으로 낙석방지시설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무너질까 두려워 돌담을 쌓기도 했네요.
중국여행을 해 보면
아직 비옥한 땅이 많아보였는데
강족들을 무엇하러
저 척박한 곳을 터전으로 삼았을까요.
나무가 귀해서 땔감을
수시로 비축하는 것 같았습니다.
돌담 쌓는데는 최고인 듯,
시멘트 나 흙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곳은 돌담으로는 물살을 당할 제간이 없었는지
철근 콘크리트로 옹벽을 구축했네요.
건너편에 기둥에 노란 헝겁을 쳐 놓은 것이 보입니다.
어떤 것은 수직으로 또는 수평...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각양각색입니다.
그 깃발에는 글씨가 인쇄돼 있습니다.
사천성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로 팬더가 있고
그리고 장족이 키우는 장호라는 큰 개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장호의 값은 한국 돈으로
4,000만원내지 150억원을 호가할 정도라네요.
그만큼 중국엔 돈많은 이들이 존대한다는 얘기...
하지만 일반인들은 꿈꾸지 못하는 개인 거 같습니다. ㅜㅜ
비닐 농법이 도입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처럼 하우스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아요.
어쩌면 이지역이 위도상 적도와 가깝기 때문에
비닐하우스까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천성의 최고 도시는 성도 인데.
성도 택시에는 팬더 곰 모양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런 설명을 하는 김현 가이드는 조선족 3세로써
단동이라는 압록강 근처의 도시에 산다고 합니다.
물론 결혼을 했다네요. ㅎ
사천성은 중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높은 지역이라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는 곳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죠
또 한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침에 성도에서 문천까지 오면서 터널이 많았던 것은
지진으로 국도가 붕괴 되었기에
50여 Km의 터널이 건설된 것이라 합니다.
아까 강족 성이 있던 곳에서의 시각이 오전 8시였으니
두시간 반 이상을 달려왔습니다.
그래도 계속 가야만 하지요.
그래야 오늘 황룡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송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저 성은 송주고성이라 하네요.
그 송주성 앞에는 옛 문성공주와 왕의 모습
이곳 티벳과 당나라 사이의 화친을 위해 정략혼인을 했었나 봅니다.
도심을 통과하는 도중에 가이드 김현선생은
이곳에 한국인이 한명 살고 있다고 설명하네요.
엣적 차마고도란 프로가 한국에서 제작될때
당시 촬영팀으로 참여했던 한 여인이 이곳의 사람과 숙식을 하는동안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도 정분이나서
하룻밤을 불태웠고 그 사랑이 이루어져
지금 이곳에서 아이 둘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TV에 방영도 됐다고 하네요. ㅎ
강변에는 풀보다 민들레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연 염소가 민들레를 뜯는 듯
마을마다 건축 양식이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비교적 현대화가 진행된 곳 같네요.
비닐 농법도 채용된 것 같고...
저기 설산이 보입니다.
아마도 건축양식이 다른 것이 강족 마을 같습니다.
장족들은 건축물을 2~3층으로 짓고
2층에 주로 거주를 한다고 합니다.
종교는 불교와 라마교가 주류이고
빨간 깃발을 선호하며
특산물로는 야크와 한약제. 동충하초가 있다네요.
강족들은 건축에 양뿔 모양을 새긴다고 하던데...
용마루 양편의 것이 양뿔 모양일까요?
아무래도 장족 일 것 같습니다.
야크는 방목되는 경우가 많으며
낮에는 초원으로 나가 풀을 뜯다가 저녁 때는 알아서
집으로 찾아 온다고 합니다.
황룡지역의 어느 호텔광고물
황룡지역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잠시후 천주사라는 마을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천주사에서 황룡까지는
버스로 1시간 가량 더 가야 하며
고산에 오르기 전이므로
식사를 많이 하지 말라고 가이드는 안내를 합니다.
마을 뒷산에 보이는 오색 깃발들...
나중에 깃발에 대한 설명 들은 것을
적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건축물 개량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것두 수작업으로...
안내된 식당 천주사 향토요리,
참고로 천자는 하늘 천자가 아니라 내천자로군요.
이 지역 해발이 3100미터
황룡도 구채구에 속하는 듯 합니다.
가이드의 말을 빌면 구채구에서 나는 버섯의 질이 좋다고 합니다.
능이버섯을 한봉지 샀습니다.
3키로그램을 말린 것이라는데
한화로 6만 원달라고 하네요.
참고로 작년 무주구천동에서 1키로를 따서 말린 능이버섯을
10만원에 구입한 것에 비하면 무척 저렴한거죠.
지금 생각하니 더 구입해도
가방에 넣을 구석이 있었는데 그랬습니다.
삼겹살이 주문되었나 봅니다.
상추가 탐스러웠고 김치도 된장도 맛있었습니다.
쌉스름한 옛날 맛,
곡성의 담배 상추가 떠올랐네요,
우리나라의 삼겹살 보다 얇게 져며서
기분은 좀 덜했지만...맛있게 먹는 일행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목이버섯이 아니었나 싶어요
기름에 달달볶은 것이었는데
매큰 한 것이 맛이 있어 추가 신청을 하더군요.
목이는 가격이 저렴해서 능이버섯 살때 덤으로 줍디다.
아까 현장인데 맴버 체인지가 됐네요.
무슨 표징인지 모르겠습니다.
관심을 보이는 일행들...
배낭 속의 부푼 오예스 ,
일하는 여인에게 선사했습니다.
다시 길 떠나는 우리버스
길가의 야크 풀뜯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합니다.
이제부터는 계속 오르막 길이랍니다.
설산이 있는 저곳을 향해
버스는 계속 달리고...
저는 창박을 보며 탄성 속에
셧터를 누릅니다.
렌즈를 밀었다 당겼다가를 반복하며
굽은 도로를 거칠게 달리는 버스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더 나은 전망을 찾습니다.
찰칵 찰칵...경쾌한 셔터음이 반복됩니다.
고원지대는 아래지역에 비해
들처럼 평탄해서 도로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멀리까지 훤히 보여서 전망까지 좋더군요.
지금도 좋은데 500미터 전방에
더 나은 장소가 나올 것 같습니다. ㅎㅎ
그 전망대까지 이르는 길,
사방이 다 설산으로 둘러 있습니다.
정말 기기 막한 곳이네요
정상 휴게소를 향해
거친 엔진음을 토해 냅니다.
경쾌하네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그 길....
그렇게 정상 휴게소에 다가 섰습니다.
휴게소라 하지만 화장실도 판매점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4007미터 설보정 능선 표지석에 다가 서서 5588m 정상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도 여행객들과 잠시 서서 다리도 풀고
기념촬영을 했네요.
그리고 다시 황룡을 향해 출발 했지요.
한시간 가량 더 걸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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