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산책

[ 영동 ] 용두공원 충혼탑

재넘어아재 2016. 5. 31. 06:35



[ 영동 ] 충혼탑을 찾아 용두공원에 오르다.

< 2016. 5. 13. >


내일은 석가탄신일, 예정된 가족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귀향했고 먼저 옆지기와 처제네를 찾아갔다.


자매가 만났으니 할 얘기가 많기 마련

고향집은 내일 아침에 가므로 나는 잠시 시간을 내서

옛 충혼탑을 다녀오기로 했다.


중학교 다닐때 두어번 올라갔던 충혼탑

충혼탑은 영동 읍내가 다 보이는 앞산 정상에

조성된 위령탑이다.



예전엔 달랑 충혼탑만 있었는데

지금은 시민들의 쉼터인 공원으로 조성돼 있었다.



해가 질 무렵, 능선 길을 먼저 돌고

만약 시간 여유가 된다면 가운데도 가 보련다.

우선, 좌측 계단 길로 진행



계단 길 중간에 갈퀴나물 꽃이 있었다.



얼핏 중앙동 철길 뚝방에 많은 것이 보였었다.

암튼 예전에 흔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나물이라 하는 것을 보면

어린 것은 식용을 하는 것 같다.



예전 70년대초 이곳엔 일부 밭이 있었고

나머지는 경사지였던 기억이고



그땐 매천리 쪽에서 올랐었다.

흔하지 않던 수풀과 나무가 이젠 흔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로 진학했을 때

영동역 부근에 석탄과 하께 나무들이 쌓여있었디.


당시 땔감이 얼마나 귀했는지

사람들이 끌 같이 생긴 도구들을 가지고 나와

그 껍질을 벚겨가는 걸 자주 봤었다.



그런 시절에 읍 근처 산에서

나무들이 크게 자랄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세상처럼 어찌 자랄 수 있었겠는가

암튼 고향의 흰 찔래꽃도 반갑고...




측백나무 얇은 잎사귀도 향긋한 내음으로 달려온다.

히미한 기억조차 정겹게 다가서는 듯 했다.


내가 중학생이던 그 시절엔

전기는 읍내에만 공급될 뿐 고향 용산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여 어쩌다 옷을 다리려면 숯을 피워

조심스레 무쇠 다리미 안에 넣는데...


그 다리미를 두는 곳에는 저 측백나무 잎을 깔았다.

우리집 여인들이 옷을 다릴때 보면 꼭 그랬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측백나무 푸른 잎이

뿌지직 거리며 연기를 낸다는....


하여 저 잎사귀를 보면

그 시절의 추억이 정겹게 다가선다. ㅎ



하찮은 민들레 마져도 퍽이나 곱게 느껴 진다는...




공원 저편에 무대가 보이고...



아카시아 어린 가지가 보인다.

예전에 저런 가지를 하나씩 들고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간 추억이 있을거다.


먼저 잎사귀를 다 따면 이겼던 기억...

주머니에 동전이라도 있으면 아이스케기 내기를 했었다.



윗쪽에 무대가 보이고 아랫쪽은 중앙 광장 같다.

더 아랫쪽은 입구이고 조심동 일 것 같다.



하찮은 참나무 새싹이 달리 보이는 날...



45년 만이니 그저 감개무량,

그 때 노을진 햇빛이 나무사이로 빼꼼히 비쳤다는....



에전의 경사진 다랭이 밭들이 있던 곳,

참 근사하게 변모했다.



벗나무 어린 것일까



저 어린 나무도 몇년이 지나면

꽃을 피울 것이다.




꽃양귀비 꽃이 지천이다.



아카시아 흰꽃에 날아드는 벌이 보인다.

그리고 향긋함에 취한다.




조각달이 둥실 떠 올랐네...^^



아랫쪽을 조망하며 계속 정상을 향해

걸음을 제촉했다.



길 옆에 뱀딸이 보인다.

뱀딸, 표준말은 아닌 것 같고 어릴 때,


뱀이 먹는 딸기라고 배웠기에

그냥 그리 기록 한 것일 뿐...ㅎ



드디어 충혼탑이 보인다.




진입로에서 보이는 것은 뒷면이었다.

저기 어딘가 사촌형님의 함자가 써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시 많은 분들이 목숨을 바쳤다.



탑 앞쪽으로 돌아가 잠시 묵렴을 드리고....



충혼탑은 나라와 겨례를 위해 몸바친 900여명의

혼을 기리기 위해 1959년 견립되었단다.



예전엔 충혼탑에 오르면 읍내 전경이 훤히 내다보였는데

나무들이 가려서 도저히 볼 수 가 없었다.


충혼탑이 세워진 언덕의

시내쪽 방향은 직벽에 가까웠으나 영동초등학교 부근에서


오를 수 있는 샛길도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이 안전상 패쇄한 것 같다.



그래도 시내쪽 능선길을 가다보면 어딘가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하산하는 길...

결국 보이진 않고 인공 연못에서 멈춰 섰다.




연못의 반영을 긴사진으로 담았다.



아카시아 향기는 가득했고 흰꽃잎이 길가며

물 위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그 부근에 멋진 얼굴상이 있었다는....




마가렛인지 아니면 데이지 일 것 같은

하얀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마가렛 보다.

사이즈가 큰 것이 아무래도 데이지 같다.



벚나무 열매사이로 흰꽃들이 비친다.



그 옆에는 매실이 주렁주렁....



영동읍에서 공원을 잘 조성해 놓은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산보하기 좋을 듯...



얼마 전까지 친근한 할미꽃도 보였겠다.



여긴 키가 더 큰 할머니꽃 흔적...



고맙게도 할미꽃 한송이가 남아 있었다. ㅎ



오르막 길을 걷는 중....



나와 반대편으로 산보하는 아낙이 보였고..



날씬한 여체 조각상도 보였다.



가까이서 윗쪽 생명의 윤곽을 느끼면서리...



아까부터 보이던 정자...



천천히 산보해도 좋을 길...



해넘이가 시작 됐니 보다.



그러나 나는 바삐 움직여 시내를 보았다.




정상부근의 충혼탑에서 내려댜 봐야 좋은 텐데...

오랫쪽 영동역 부근만 겨우 보였다.



저 산은 중화사 쪽이거나 황학산 부근일꺼야



더 당겨 보지만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다.




공원엔 산책객들이 가끔 보였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걷는 중에 구철초가 보였다.

공원은 가을에 걸어도 좋겠네...



흰아카시아 꽃에 노을빛이 닿은 듯...



스텔라 원추리 노란꽃



해가 방금 넘을 듯하다.



당겨보았더니 아주쬐끔 남아 있었나 보다.



노을 빛이 사라지자 아카시아 색상이 흰색으로 돌아왔다.




장미향이 그윽한 용두공원



내가 다닌 영동중학교

신관은 없어지고 양철 지붕에 마루바닦이던 낡은 구관은

삼층 스라브형 건물로 변모한 것 같다.


교실수가 많이 줄어든 듯한데...

아마도 학생들 숫자가 줄어 들기 때문 일거다.



60년대 말 내가 입학할때는

한 학년 5개 학급하여 300명을 뽑았던 것 같다.



읍내쪽 능선길(우측)을 다 걸었나 보다.

넓은 경사지(큰 바위?)가 나왔다.



그냥 차로 가긴 아쉽네...

기왕 온 김에 공원도 빠릿하게 휘리릭 돌아보자.



이팝나무 아래를 지나...



사과 조형물을 지나고....



중앙광장 부근을 가고 있다.




꽃창포가 핀 작은 연못이 보였다.



수초에도 노란 꽃이 피었다.



타일에 쓰거나 그려진 그림과 일기..바램 글귀들



그게 두물머리의 노래일까.

예전에 형님께서 영동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신적이 있다.


영동(永同)의 永(길 영)자를 뜯어 보면

二(두 이)자와 水(물 수) 가 합쳐진 글자란 거다.



동쪽 주곡리 방면에서 흘러 온 물과

남쪽 양강 남전리 방면에서 내려오는 물이 시내에서 합류하여

하나의 큰 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 뜻으로 영동이란 지명이 탄생했고

이수초등학교의 '이수'가 그런 뜻을 담고 있다 했다.



암튼 이런 저런 추억을 회상하며



고향의 충혼탑과 용두공원을 산책하여

또다른 의미를 가슴에 담았다.


^L^